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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후라이드'라고 해야 더 맛있는 것 같지?

[서평] 20년 가까이 외식 메뉴 1위, '닭'... <대한민국 치킨전>

등록|2014.09.02 11:07 수정|2014.09.02 14:00
20000원 안팎이면 4인 가족의 배가 부르고도 (삼겹살로 4인 가족이 배를 채운다고 생각해 보라), 입맛에 따라 '후라이드 반, 양념 반', '간장치킨','파닭', '오븐구이', '불닭'을 시킬 수도 있다. 조금 비싼 브랜드 치킨도 있지만 요즘은 세트 치킨인 '두 마리 치킨'가게도 많아서 양은 걱정할 것 없다. 어른들은 취향에 따라 맥주나 소주를, 아이들은 콜라를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치킨이야말로 끼니-안주-간식의 삼위일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메뉴, '치느님'이다. 그리고 다양한 치킨 메뉴 고르기도 귀찮다면 한마디만 외치면 된다. "반반 무 많이!"
- <대한민국 치킨전>일부

"그래 맞아, 맞아!"

맞장구치며 읽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치킨은 우리 집에서 밥 다음으로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 됐다. 어떤 날은 밥하기 싫어서, 또 어떤 날은 반찬이 마땅치 않아서, 그리고 갑자기 아이들 친구가 온다거나 아이들에게 뭔가 사주고 싶을 때 등등. 치킨을 먹을 작은 이유라도 생기면 시켜먹곤 하다 보니 이젠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만만하게 시켜 먹는 메뉴가 됐다.

▲ 한국인의 식문화로 자리잡은 치킨 ⓒ flickr


지난주 토요일 우리 가족이 치킨을 시켜 먹은 것을 알 리 없는 어머니가 다음날 우리 집에 오시며 닭강정을 사왔다. 어젯밤 치킨을 먹었음에도 남편과 두 아이는 닭강정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그러고도 영 아쉬운 눈치다. 두 마리는 기본으로 먹는데, 한 마리분 닭강정이었기 때문이다.

이틀에 걸쳐 치킨을 먹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 반찬이 마땅치 않거나, 몸이 피곤해 밥해 주기가 힘들 경우 등 이런저런 이유로 "치킨 먹을까?" 물으면 또 좋다고 반색할 것이다. 이어 "이번에는 어떤 치킨을 시켜 먹을까? 간장치킨 먹을까? 아니 파닭!"을 외치며 외식업소 안내책자를 가져다가 먹고 싶은 치킨을 고를 것이다.

십중팔구다. 아이들은 청소년기를 지나오면서 수해 동안 치킨을 사랑해 왔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다. 우리 가족뿐이랴. 아마 우리처럼 때로는 밥 대신, 때로는 간식으로 치킨을 시켜 먹는 집들이 많으리라.

한국인만의 치킨 본격적으로 다룬 책

우리가 먹는 치킨은 짭짤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데, 그 맛의 비결이 아마도 염지 과정이다. 35일령 브로일러종의 닭살은 염지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냥 퍽퍽한 살코기 맛만 나고 너무 쉽게 굳어진다. 그래서 모든 치킨은 반드시 염지과정을 거치는데, 염지액은 단순히 소금과 향신료만 넣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식품첨가물이 들어간다. 그 다양한 식품첨가물의 정체와 비율, 그것이 염지 방법의 핵심이다. 그리고 베터링은 전분류를 기본으로 여기에 독특한 향신료 등을 첨가한 일종의 프리믹스 가루를 혼합하는 과정이다. 이 가루를 물과 혼합해 염지 닭을 코팅해주지 않으면 육즙이 빠져나와서 닭고기가 퍽퍽해지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바삭한 튀김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 과정이 당연히 중요하다.
- <대한민국 치킨전> 일부

▲ 대한민국 치킨전 ⓒ 따비

<한민국 치킨전>(따비 펴냄)은 대표적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치킨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다. 저자 정은정은 국어맞춤법 외래어 표준 표기인 '프라이드 치킨' 대신 '후라이드 치킨'을 고집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것은 우리만의 '치킨'이기 때문이다.

책의 부제는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다.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닭을 튀겨먹기 시작했으며 어떤 변화들을 거쳐 오늘날 소울푸드가 됐는지 조목조목 들려준다.

250여 개(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새로운 치킨 프랜차이즈와 망하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에 육박하는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대박 신화'를 설파하면서 누군가의 퇴직금과 적금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속고 몰라서도 속으면서 일단 창업에 뛰어들게 된다. 인생, 치킨 아니면 떡볶이이니까... 현재 한국의 치킨점의 수는 3만 5000에서 5만여 곳으로 추정된다. 등록되어 있는 치킨점만 따진다면 3만여 개 정도지만 노점 형태의 닭강정이나 닭꼬칫집, 장작구이통닭 트럭까지 합치면 대체 몇 개의 치킨점이 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간략한 통계를 보자면 2002년에서 2012년 사이에 개점한 치킨점은 전국적으로 7만 4000여 개다.
- <대한민국 치킨전> 일부

책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신규 가입한 7만 4000여 개의 치킨점 중에서 5만여 개는 제대로 닭을 튀겨 보지도 못하고 문을 닫았다고 한다. 게다가 치킨점이 워낙 많다 보니 동네에 치킨점이 몇 개나 있는지 제대로 세지도 못할 정도고, 문을 열고 석 달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곳이 수두룩하다 보니 통계조차 뽑기 어려운 실정이란다.

오늘 우리가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치킨은 수많은 사람의 눈물이기도 한 것이다. 해외 토픽으로나 만나던 조류 독감이 우리나라에 처음 발생한 것은 2003년 12월. 그 며칠 전에 한 프랜차이즈 치킨점을 개업한 고향 친구가 그로부터 10개월 정도를 간신히 버티다 1억 가까운 빚을 지고 문을 닫은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다소 씁쓸하게 읽기도 했다. 물론 알기 쉽지 않았던 치킨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다.

그 친구는 "치킨처럼 프랜차이즈 의존율이 높은 업종은 가급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책은 250여 개나 된다는 치킨점 프랜차이즈의 현실과 진실을 제법 많은 분량으로 조목조목 들려주고 있다. 그러니 조만간 혹은 언제든 치킨점을 개업할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겐 매우 유용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1997년 이후 외식 메뉴 1위 고수

재밌게도 위에서 언급한 우리집의 치킨 이야기가 책에 그대로 나온다. 표현만 다른 우리 집의 이야기들이 말이다. 아마도 우리 가족처럼 밥하기 싫어서, 반찬이 마땅치 않아서, 아이들 친구가 와서, 먹고 싶어서 등과 같은 이유들로 걸핏하면 치킨을 시켜먹는 집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책에 따르면 치킨은 1997년 이후 한국의 외식메뉴 1위를 고수하고 있단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치킨'을 먹기 시작했으며 어떻게 대표적인 일상 음식이 되었을까? ▲ 1인 1마리 치킨 시대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많이 먹는다는데 우리는 대체 치킨을 얼마나 먹을까? ▲ 골목에 한두 개는 어김없이 있기 마련인 치킨집, 치킨집이 이렇게 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이제는 자연스런 일상용어가 된 '치맥'과 '치느님'이란 용어는 언제부터, 어떻게 생겨난 걸까?▲ 여러 형태의 치킨 튀김옷의 비밀은? ▲ 치킨의 유래는 흑인의 소울푸드? ▲ 우리나라 후라이드 치킨의 원조는? ▲ 후라이드 치킨에 쓰는 닭보다 양념통닭이나 닭강정에 저질의 닭을 쓴다? 등 그간 우리가 먹었던, 치킨을 둘러싼 흥미롭거나 씁쓸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우리 가족처럼 치킨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식문화를 둘러싼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대한민국 치킨전>(정은정 / 따비 / 2014. 9. 2. / 288쪽 /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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