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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 3주기... 이건 예의가 아니다

전태일 죽게 한 박정희 시대와 세월호 참사 부른 박근혜 시대

등록|2014.09.03 08:40 수정|2014.09.03 10:22

세월호 유가족 '제자리 삼보일배'세월호유가족들과 시민들이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로 세월호특별법제정촉구 서명지 135만여명 분을 전달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하던 중 경찰에 가로 막혀 있다. ⓒ 이희훈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박정희 정권의 노동착취에 분신으로 항거했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였던 이소선 어머님이 소천하신 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는 '하나의 우주'라는 자식을 화염 속에 떠나보내시고, 당신 역시 그로부터 40여 년 동안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가셨다.

오늘(3일)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다시 그분의 삶을 되돌아보는 건, 여전히 권력과 자본의 탐욕 때문에 자식을 잃은 수많은 부모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부모들은 자식들이 왜 그렇게 하릴없이 죽어가야만 했는지 알아야겠다고, 그래서 다시는 이런 비극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온몸으로 싸우고 있다. 현실은 44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이소선 어머니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노동착취에 전태일 열사를 잃으셨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의 딸 박근혜 정권하에서 이윤 극대화라는 자본의 탐욕과 국가권력의 책임방기로 인해 아이들을 잃었다. 이소선 어머니의 한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한이 오늘 다시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만난 것이다.

평범했던 이소선 어머니의 삶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그날부터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삶이 되어버렸다. 열사를 땅에 묻자마자 청계피복노조를 결성하여 노동운동의 전면에 나섰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되셨다.

어머니는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아들의 마지막 당부를 지키기 위해 열사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사셨다.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네가 원하는 걸 끝까지 하겠다"고 아들에게 한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이 땅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다, 결국 그리운 아들 곁에 영면하셨다.

먼저 간 자식을 대신해 세상에 나선 이소선, 그리고...

▲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지난 2011년 9월 7일 낮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앞 '전태일 다리'에서 열린 노제에서 고인의 영정사진이 아들의 동상 앞에 놓여 있다. ⓒ 권우성


이소선 어머니가 걸어오신 길의 출발점은 자식과 한 약속이었다. 지글지글 끓고 있는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타는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자기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달라고, 제발 약속해달라고 외치던 아들 전태일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약속 때문에 아들이 그렇게 소망하던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위한 간고한 투쟁의 길로 들어서신 것이다.

그 길을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막아서니 이들과 싸워야만 했고, 그 길을 탐욕스런 자본이 막아서니 또 이들과 싸워야 했다. 어머니를 누구보다 강하게 단련시킨 건 어찌 보면 독재 정권이었고 자본가들이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마음도 어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졸지에 영문도 모른 채 잃었는데, 왜 죽어야 했는지,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나중에라도 아이들을 만나면 손잡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것이 부모 된 도리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아이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가려 그 책임을 엄중히 묻고,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식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풍찬노숙도 마다하지 않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마음을 이념과 정치의 논리로 왜곡하고 보상금이나 특혜의 문제로 폄훼하는 인면수심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키워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1986년 이소선 어머니는 독재와 자본의 횡포에 맞서 싸우다 숨진 노동자 학생들의 가족을 모아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만드셨다. 전두환 정권 아래서 숱한 이들이 죽음으로 항거하던 때였다. 박영진, 김세진, 이재호, 변영진, 이동수…. 그리고 의문의 죽음도 많았다. 실종된 이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먼저 간 자식들을 대신해서, 더는 애꿎은 젊은 목숨들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유가족들이 나선 것이었다. 독재와 자본의 칼날에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 아버지들은 더 이상 겁날 것이 없었다. 이소선 어머니를 위시해 유가협 회원 어머니 아버지들은 독재에 맞서 그 누구보다도 맨 앞에서 치열하게 싸우셨다.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앞에서, 그리고 국회에서 노숙하는 세월호 유가족들도 더 이상 똑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더 이상의 두려움은 없다. 자식을 먼저 보낸 마당에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다만 두려운 것은 아마도 잊혀진다는 것일 것이다. 함께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것이 두려울 것이다. 언제까지고 이들 곁에서 함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세월호 부모들과 겹쳐진 이소선 3주기... 더욱 안타깝기만

▲ 청와대 앞 노숙 농성 11일째 이어가고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 도중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혀달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이소선 어머니에게는 이념도 사상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이의 마음에는 자식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있었을 뿐이었고, 그 연민과 사랑이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에게로 커져만 갔던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박정희·전두환과 같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도, 감히 이소선 어머니에게는 이념의 굴레를 덧씌우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 이 땅의 보수세력과 여당은 유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고, 오히려 불순세력의 개입이니 해가면서 유가족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유가족들의 특별법 제정 요구가 마치 나라를 망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양 여론을 호도하기에 바쁘다. 아무리 정권의 위협을 느낀다 해도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청계피복노조가 결성되고 나서도 사용자들이 단체교섭을 거부하자, 이소선 어머니는 대통령을 만나 담판을 짓겠다는 일념으로 한 달이 넘도록 청와대 앞에서 쭈그려 앉아 농성 아닌 농성을 하신 적이 있었다. 결국 박정희마저도 어머니를 만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딸 박근혜는 어떠한가? 세월호 참사 직후 유가족들에게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해놓고는, 이제 와서 청와대 앞으로 찾아간 유가족들의 면담 요구를 묵살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과 차벽으로 유가족들을 포위해서 다른 시민들과의 접촉까지도 막고 있다. 독재자였던 아버지보다도 못한 딸이라는 소리를 정녕 듣고 싶지 않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라도 유가족들의 슬픔을 공감하고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정성을 보여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8월 30일 KBS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국민들은 서서히 유가족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58.3%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38.6%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제 유가족들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뿐이다. 

이소선 어머니가 다시 우리 가슴을 휘젓고 있는 것은 단지 그이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으며 투쟁해왔던 분이라서가 아니다. 자식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이 땅 노동자 모두에 대한 사랑으로 키워오신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서 그런 것이다.

평생을 먼저 간 자식을 품고 사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과 겹쳐지면서, 3주기를 맞는 어머니의 기일이 더욱 애처롭고 안타깝기만 하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노숙을 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은 유가족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특별법 제정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은 단순한 정쟁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주와도 같다는 자식을 잃어버린 어버이들의 마음 그 자체인 것이다.

▲ 이소선 어머니 3주기 추도식 리플렛 ⓒ 전태일재단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태일재단 기획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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