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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 콩콩이, 루피... 세 자매가 모였다

[하부지의 육아일기 37] 20여년 만에 함께한 가족여행

등록|2014.09.05 14:30 수정|2014.09.05 14:30
언제부터인가 가족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정도로 회식, 여행 등 행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성장과 반비례했다. 고등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대입 준비 때문에 얼굴 보는 것도 쉽지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군 입대, 취업, 결혼 등으로 명절을 제외하고는 가족 행사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처럼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콩이와 콩콩이를 포함해서 10명이다. 이 정도의 인원이 움직인다는 것은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교통, 숙박 등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다. 우선 장소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여러 곳을 관람하는 것보다는 산책도 하면서 거니는 장소를 택하기로 했다. 여름 피서 겸 가족 단합대회, 제주도로 정했다.

제주도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지난 29일 오전 9시경,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걱정이 앞선다. 한 달 전부터 기획한 행사라 모두들 기대가 크다. 그간 서로 바삐 사느라 연락도 자주 하지 못한 처지다.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네와 합류했다. 11인승 승합차(렌터카)에 짐을 실었다. 10명의 대가족, 비좁지만 차에 타는 순간부터 '우리'가 되었다.

첫 번째 방문지는 녹차밭이다.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이 가능하다. 넓은 녹차밭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일품이다. 보성다원처럼 다랑이 밭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입체감이 없지만 나름대로의 색다른 풍경이다.

콩이와 루피모처럼 만난 탓인지 종일 손을 잡고 즐겁게 놀고 있다. 친구같은 자매 사이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문운주


콩이와 콩콩이, 루피가 잔디밭을 뛰어다닌다. 루피는 서울에 있는 아들 손녀딸이다. 두 자매가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모습부터가 이번 여행의 성과라면 성과다. 천연 재료로 비누 만들기 체험에 빠졌다. 두드리고 궁굴리면서 모양을 만든다. 흡사 도자기 모형을 만드는 것처럼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여 큰 비가 내릴 듯하더니,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 가족의 모처럼 만의 가족여행을 축복이라도 하는 것처럼. 점심은 갈치조림을 먹기로 했다. 이곳의 흑돼지 구이,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등은 별미다. 허기진 배를 맛깔스러운 이곳의 토속음식과 반찬까지 싹쓸이 채우고 나니 힘이 솟는다.

제주도의 여행 중에서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곳은 당연히 H 호텔 해변.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아 조용하다. 산책길이라 여유로움이 있다. 어렸을 때의 수학여행처럼 거쳐 가는 식이 아니라 걷다가 놀고, 피곤하면 쉬었다 가는 자유로움이 있다.

콩이와 루피끝없이 펼쳐지는 잔디 위에서 천방지축 뛰어 놀고 있다 ⓒ 문운주


끝없이 펼쳐지는 잔디밭, 콩이와 루피가 뛰어다닌다. 영화 <메리 포핀스>에서처럼 가족이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그런 모습, 한편의 뮤지컬이다. 이름 모를 야생화, 코스모스, 무궁화 꽃들이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가족사진해변을 한가로이 걷는다. 가족간의 소통 어렵지 않다. ⓒ 문운주


콩이와 루피둘이서 사이좋게 토끼를 바라보고 놀고 있다. ⓒ 문운주


S자형 산책길을 가족이 줄지어 걷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석양이 구름을 빨갛게 물들였다. 대형 풍차가 해변 바람에 금방이라도 서서히 회전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생태공원에는 울안에 토끼들이 아이들을 반긴다. 토끼와 노는 콩이와 루피, 자리를 뜰 생각을 않는다.

▲ 콩이, 루피, 콩콩이 가 다정히 앉아 있다. ⓒ 문운주


산등성이를 내려오니 그네가 걸려있다. 콩이와 루피가 나란히 앉아 그네를 탄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올랐다간 내려오고 다시 오른다. 천천히 걷기로 했지만 한 곳에서만 놀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며칠을 이곳에서 즐긴다고 해도 싫증은 나지 않을 것 같지만.

숙소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6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인근 수영장을 찾았다. 수영 경험이라고 해야 냇가에서 멱 감는 실력 정도지만 물속에서 물장구치고 노는 아이들을 보니 동심에 빠져들었다 첨벙첨벙 아이들과 같이 뛰어논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잠수를 해 봤다. 단, 30초를 견딜 수가 없다.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라는 말이 새삼 실감 난다.

다음 날 행선지는 섭지코지, 제주도 동쪽 해안에 볼록 튀어나온 섭지코지는 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언덕 위 평원에 드리워진 녹색의 잔디, 그리고 바위로 둘러쳐진 해안절벽과 우뚝 선 선바위 등은 전형적인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드라마 '올인'의 배경인 성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닷가 해변의 잔디 위에 성당은 조금은 생뚱맞기도 했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콩이와 콩콩이, 루피가 신이 났다. 천방지축 뛰어 다닌다. 선바위를 하얗게 때리는 파도가 등대와 함께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의 중국인이다. 제주도를 중국이 접수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단체로 온 듯 관광차의 안내 표지가 중국어로 표기되어 있다. 곳곳이 패여 물이 고인 웅덩이. 없어져 버린 드라마 속 성당 등의 관리가 소홀한 것이 내 탓인 양 미안하다.

낭떠러지 밑에 떨어지는 하얀 파도 등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점심은 빵과 우유로 간단히 때우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포식한 탓에 점심 생각들이 없는 모양이다. 여행은 타고 먹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콩이 조차 어른스럽게 동생들과 잘 어울린다. 말끝마다 '언니가 해줄게'를 강조한다.

언제부턴가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한 집안에서 오밀조밀 살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때와는 다르다. 사는 방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나만 있고 남은 보이지 않는다. 1980년대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단칸방에서 살을 부비며 살았다. 다섯 식구가 한 방에서.

그날 저녁, 초등학교 시절 동생과 싸우던 이야기. 이곳저곳 이사 다니면서 친구들이 부러웠던 이야기 등을 나누며 제주도의 밤이 깊어만 갔다. 막내 아들이 들려주는 이방 저 방 쫓겨 다녔던 서러운 사연. 맥주잔 서로 주고받으며 타임머신 타고 멀리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왜일까? 남에게는 잘하면서 제일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는 소홀히 하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가족여행은 소통, 체험,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멀리 집을 떠나 밖에서 하룻밤은 너무나도 당연한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콩이와 콩콩이도 또 다른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며 성장해 갈까.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여행, 우리 가족에게 정신적 힐링의  계기였음이 분명하다. 내가 생각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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