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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과 어머니

어머니께 투덜거린 속 좁은 내가 부끄럽다

등록|2014.09.13 11:14 수정|2014.09.13 11:14

▲ 칠순이 지난 노모가 의자 위에서 도토리묵을 쑤고 있다. ⓒ 이경모


"묵 한 조각 남았는데 먹을래?"
"아뇨, 어머니가 드세요."

오늘 아침 밥상에서 나눈 짧은 대화지만 내 말투는 아직도 퉁명하다. 며칠 전 추석날 만든 묵사건(?)의 불편함이 아직 남아 있다.

얘기인즉 이렇다. 추석날 고향 친구들과 모임을 일찍 끝내고 집에 왔다. 다음날 우리 집에 많은 손님들이 온다. 음력 8월 18일이 어머님 생신이어서 명절 인사 겸 생신상을 차리기 때문이다.

추석 상차림을 준비하는 것보다 다음날 점심을 준비하는 것이 더 어렵고 바쁘다. 아내의 손을 빌릴 수 없는 형편이어서 칠순이 넘은 노모가 추석 전 10여 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홍어를 얼큰하게 하려고 미리 사와 적당히 삭히기도 하고 식혜도 직접 만든다.

이날도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도와 드리려고 빨리 온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부엌에서 큰 그릇을 세 개 꺼내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어머니, 뭐 하세요?"
"도토리묵 쑬란다."
"예~"

나는 깜짝 놀랐다. 추석 제사상 준비하시느라 저녁에 주무시면서 끙끙 앓으신 분이 또 묵을 쑤시다니. 음식 준비하는데 쉬운 것이 하나도 없지만 묵 만드는 것은 만만치 않다.

묵 가루를 물에 잘 섞어 엉키지 않도록 잘 풀어야 한다. 그다음에 잘 풀린 묵 반죽을 큰 솥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주며 40분 정도 잔불에 눌러 붙지 않도록 천천히 한 방향으로 계속 저어줘야 한다.

땀이 등 뒤로 흐르고 어깨도 아프다. 아들 녀석과 교대로 저었지만 원망을 듣는 것은 고스란히 어머니 몫이었다. 그 소리가 듣기 싫으셨는지 어머니는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주걱으로 몇 번 저으셨지만, 우리 부자가 지켜볼 수 없어 다시 주걱을 받아 또 젖고 저었다.

그렇게 만든 묵이 오늘 아침에 냉장고에 한 조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누가 준 도토리 가루인지도 모르신다. 그래도 명절에는 묵이 있어야 한다고 늘 어머니는 생각하신 가 보다.

내가 어렸을 때도 몇 번 묵을 쓰실 때 도와드린 기억이 있다. 그때는 나무로 불을 피워가며 묵을 만들었다. 지금은 가스 불을 사용하니 많이 편해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묵 쓰는 것은 힘들다.

"어머니 그 묵 주세요. 제가 먹을게요."

안 먹겠다고 말한 지 3분도 채 안 되어 내 말을 바꿨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투덜거리고 있는 속 좁은 내가 부끄러웠고, 어쩌면 집에서 만든 완전한 도토리묵은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 묵 쓰느라고 고생했으니 아들이 더 먹소."

내 눈을 지그시 응시하는 노모의 눈빛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지천명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른스럽지 못한 내 나이를 거꾸로 세어봤다.

"어머니, 일흔다섯 번째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사랑합니다. 내년에는 어머니 더 많이 도와드릴게요. 그런데 묵은...."
덧붙이는 글 월간 첨단정보라인 10월호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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