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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같은 존재들의 삶은 더 진지하다

[포토에세이] 옥상 텃밭에서

등록|2014.09.15 13:23 수정|2014.09.15 13:23

개똥수박여름에 맛나게 먹고 버린 수박껍질에 붙어있던 씨앗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더니만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 김민수


'개똥참외'라는 것이 있다.

길가나 들 같은 곳에 저절로 자라서 열린 참외를 가리키는 말이며 참외보다 작고 맛이 없어 보통은 먹지않는다. 그들의 이름이 개똥참외가 된 이유는, 그렇게 길가나 들에 저절로 자라기 위한 매개체를 견공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일 것이다. 단순히 '개'자만 붙었다면 식물분류에 있어서 유사성은 있지만 다른 경우에 붙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똥'자까지 붙었으니 여기에서의 '개똥'은 분명히 길가나 들에서 볼일을 보는 견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옥상텃밭에 개똥수박이 열렸다. 개가 아닌 사람의 손을 탄 결과지만, 가꾸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자라서 열렸으니 '개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어도 될 것 같다.

신기하다. 꽃이나 피고 말 것이라 생각하며 그냥 두었는데 오늘 아침 물을 주다보니 탁구공만한 수박, 줄무늬도 선명한 수박이 열렸다.

개똥토마토익다가 상해서 버린 토마토 열매에서 자라난 방울토마토가 싹을 내더니만 이렇게 큰 열매를 맺었다. ⓒ 김민수


옥상텃밭이라야 스티로폼 상자와 화분과 제법 큰 다라이 같은 곳에 흙을 넣고 만든 것이지만 우리 식구 푸성귀 정도는 충분하게 나온다. 지난 봄 방울토마토 모종 다섯개를 심었는데 우리 식구가 먹기에는 너무도 많은 토마토가 열렸다.

시장에서 사는 껍질이 얇은 토마토에 익숙한 아이들은 옥상에서 햇볕을 받고 자라 껍질이 조금 단단한 토마토에 익숙하지 않아 옥상에서 거둔 토마토는 어른들의 몫이었다. 너무 많다보니 조금 흠이 있거나 문제가 있는 것들은 따서 거름이 되라고 다른 화분에 던져두곤 했었다.

그곳에서도 토마토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어찌되다 보자 했더니만 그중 몇 그루는 튼실하게 자라더니만 이전의 방울토마토만큼 양은 많지 않아도 제법 큼직한 토마토를 맺는다. 그것 역시도 저절로 자란 것이니 '개똥토마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똥참외나 수박과 다른 것이 있다면, 개똥토마토는 맛이 좋다는 점이다.

얼가리무우한 모종판에 심은 얼가리무우는 벌레들이 부지런히 먹어치운다. 벌레도 내가 원치 않았던 것이니 개똥벌레일까? ⓒ 김민수


그렇게 그냥 버려둔 것들은 잘도 자라는데 애써 가꾼 얼가리무우에 손님이 찾아왔다. 예ㅒ상치 않던 개똥같은 손님이다. 그들이 먹어치우는 양이 엄청나서 정작 심은 내가 먹을 것이없다. 그렇다고 농약을 칠 수도 없고...

그래, 콩 세알의 마음을 가져야지.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지.

얼가리무우다른 화분에는 벌레가 없으니 무럭무럭 잘자라준다. ⓒ 김민수


그렇게 넓은 마음일 수 있는 이유는 다른 화분에 심은 얼가리무우와 배추는 이렇게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 이것도 없었다면, 마음이 강퍅해 졌을지도 모르겠다. 얼가리무우와 배추의 화분은 모두 여섯개, 여섯개 중에서 하나를 벌레의 몫으로 준 것이니 '콩 세알'보다는 훨씬 많이 거두는 것이다.

호박옥상이다 보니 물을 걸르면 호박잎이 말라버리는 일이 잦다. 주인 잘못만나 고생이 많다. ⓒ 김민수


옥상 텃밭에 심겨진 것들 중 가장 미안한 것은 호박이다.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여름에 줄기부분만 남겨두고 줄기치기를 했다. 호박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에 이후에 어찌될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우더니만 가을 초입부터 호박을 맺기 시작했다.

맨 처음엔 작게 열렸다 떨어지곤 하더니만 선선한 바람이 불기시작하자 호박이 커지기 시작한다. 줄기치기를 해도 호박은 열린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그래도 물을 안줘서 저렇게 말라버렸으니 죽은 것은 아닐까?

호박줄기만 살아있으면 마른 이파리 너머로 초록의 이파리를 내고 꽃을 피운다. ⓒ 김민수


아니, 줄기만 살아있으면 새로운 줄기에서 이렇게 초록의 이파리가 나온다. 꽃을 피우고 호박을 맺는다. 신비스럽다.

부추꽃이것도 일종의 개똥부추꽃이다. ⓒ 김민수


나는 이 부추가 씨앗을 맺을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이 부추꽃이 왜 '개똥부추'인가 하면, 한여름이면 부추에서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시다시피 부추는 이파리를 잘라먹는다. 이파리를 자르면서 줄기도 잘랐는데 대부분은 장식용으로 옮겨져 화병에 꽂혔지만, 몇몇은 버려져 화분에 던져졌다.

그런데 화병으로 옮긴 것들은 이미 이 주일 전에 그 수명을 다했는데, 버려진 것들은 여전히 피어있다. 그것도 씨앗을 맺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까지 품은채로 말이다. 이런 개똥같은 존재들을 보면서 삶의 진지함 끈질김에 대해서 생각한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개똥'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그냥저냥 자기의 힘으로 자랐지만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들이지만, 그 삶은 참으로 진지하다.

맛이 없어도 그것으로 그들의 삶 충분히 의미있다. 그들의 삶이 인간을 위한 것일 필요는 없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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