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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민 계란 두 알..."고마워유"

박복했던 어린 날, 그래도 그가 있어 따뜻했다

등록|2014.09.17 14:46 수정|2014.09.17 14:50
천안(天安).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하다'는 의미의 지명을 가지고 있는 천안은 필자의 고향이다. 지금은 인구가 60만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내가 어렸을 적엔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허름한 도시였다.

당시 천안역 역사의 오른쪽엔 여행 장병 안내소(TMO)가 있었고 바로 그 앞엔 멋지게 늘어진 능수버들과 가락국수를 전문으로 파는 집이 있었다. 멸치와 다시마, 무 따위로 시원하게 우려낸 국물에 오동통한 가락 국수를 담고 고춧가루와 파, 김 가루를 뿌려냈는데 그 맛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맛이 오죽 시원했으면 전날 과음으로 속 아픈 주당 아저씨들이 무시로 찾는 단골이 됐을까.

당시 홍익회(현 코레일 유통)에 일하시면서 열차에 올라 삶은 계란 등의 온갖 주전부리를 팔던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그 당시 나는 박복한 삶을 이어가며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한 채 소년 가장이 됐다. 천안역 앞에서 구두닦이하며 하루 하루 살았다. 어느날 그 아저씨가 구두를 닦으러 오셨다. 첫인상이 마치 법 없이도 살 것처럼 온화했다. 아저씨는 한창 구두를 닦는 내게 주머니를 열더니 삶은 계란 두 알을 주셨다.

▲ 계란 두 알에 사람 사는 정을 느꼈다. ⓒ 홍경석


"어린 나이에 돈 벌기 힘들지? 아저씨 가고나면 이거 먹어라, 공짜여."
 "...!"

나는 주저없이 그 계란을 받아 구두닦이 상자 안에 밀어넣었다.

"고마워유~"

그게 인연이 되어 아저씨는 이후 내 단골손님이 됐다. 더불어 아저씨의 배려 덕분에 무임승차로 장항선에 올라 삼삼한 열차여행의 기분도 가끔 누릴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고비가 있는 법이여, 열심히 살면 반드시 그 끝은 좋은 거니께 앞으로도 착하고 성실하게 살거라, 이런 말은 니가 내 막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여, 알지?"

아저씨의 말이 지금도 귀에 아른거린다. 이제 칠순의 할아버지가 되셨을 그 홍익회 아저씨는 지금쯤 어디서 늙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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