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아내가 나를 멀리한 이유, 히말라야에서 깨닫다

[홀로 배낭여행 초보자의 인도여행기 ⑧] 히말라야 설산 올라보니...

등록|2014.09.23 21:09 수정|2014.09.26 16:09

▲ 히말라야 설산 ⓒ 송성영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돌아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젊은 친구와 함께 산행에 나섰다. 맥간 숙소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는 히말라야 설산을 좀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트리운드(triund. 2827m).

맥간에서 트리운드까지는 8킬로미터 정도의 코스. 3천 고지에 가깝긴 하지만 맥간 자체의 높이가 2천 고지 정도라 긴 코스는 아니다. 거기다 경사면이 거의 없는 산길이라서 등산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트리운드는 맥간에서 다람곳을 거쳐 올라간다. 다람곳은 한적한 산촌 마을인데 이미 오래 전부터 외국인 관광객의 쉼터로 탈바꿈했다. 외국인이 즐겨 찾는 게스트하우스 지역을 벗어나자 한국의 산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 유채꽃이 피어 있다.

▲ 트리운드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빨래터 아이들 ⓒ 송성영


맥간 시장은 한국인을 비롯해 동양인, 서양인 할 것 없이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 났지만 등산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돌담으로 둘러 쌓여 있는 곳에는 소들이 우물우물 풀을 뜯고 있다. 산비탈 마을 끝자락에 있는 빨래터에서 어린 여자아이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우리 일행이 들이대고 있는 사진기 앞에서 해맑은 웃음으로 반긴다.

빨래터를 지나치면서 제법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길이라 할지라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인도에 와서 줄곧 샌들을 신고 다니다가 맥간에서 새로 산 운동화 덕분에 산행길이 한결 가벼웠다. 트리운드 가는 길이 짧고 순탄한 산길이라는 말을 듣고 어지간하면 샌들로 산행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델리 파하르 간지에서 산 150루피짜리 샌들이 자꾸만 발가락을 압박해 어쩔 수 없이 운동화를 샀던 것이다.

▲ 트리운드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유채꽃 ⓒ 송성영


젊은이보다 앞서 올라간 나... 욕심은 금물

사실 맥간에서 산 운동화도 등산에 적합한 신발은 아니었다. 밑창이 판판한 그냥 가벼운 운동화에 불과했다. 그런 운동화를 사게 된 것은 등산화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쓸만하다 싶으면 2천 루피가 넘었다. 한국 돈으로 따지자면 4만 원도 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내 생활 방식에선 용납할 수 없는 큰 돈이었다. 그동안 나는 여름에는 고무신, 겨울에는 1만 원 안팎의 털신만 고집해 왔다.

샌들을 신고 가다가 발이 아프면 그냥 맨발로 산행을 시도해 볼까 했는데 친절한 주상씨의 걱정과 끈질긴 배려로 결국 맥간에서 가장 값싼 1천 루피짜리 가벼운 운동화를 샀다. 비록 산행에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였지만 발가락을 압박해 오는 샌들과는 비교할수 없을 만큼 산행 길을 한결 수월하게 해줬다. 마을을 벗어나 제법 경사진 산길로 접어들 무렵 일행 중 누군가 내게 말했다.

"힘들지 않으세요? 산을 엄청 잘 타시네요."
"내 별명이 뭔 줄 알어? 촌놈이여, 산에서 사는 촌놈. 여기 오기 전에 한동안 산에서 살면서 매일 아침 산행해서 괜찮어."

인도에 오기 전 이런 날이 올 것에 대비해 아는 스님이 비워 둔 허름한 토굴(옛날에는 말 그대로 땅굴이나 바위굴을 토굴이라 했는데 요즘은 스님들이 홀로 수행하기 위해 단지 먹고 잘 수 있는 단출한 집을 말한다)에서 반년을 보내며 거의 매일 같이 두 시간 정도 거리의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덕분에 젊은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가벼운 걸음으로 줄곧 앞장 서 걸을 수 있었다.

"아이구, 저희들은 숨 차 죽겠는데..."
"거시기 말여, 배꼽 아랫께, 단전이라는디 알지? 거기루 호흡하면서 올라가면 덜 힘들어."

자식뻘 되는 젊은 친구들에게 뒤쳐지지 않고 앞서 산행하고 있다는 것에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 기고만장의 힘으로 내 발걸음은 좀 더 속도가 붙고 있었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빨라진 만큼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못해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저만큼 뒤쳐진 동료들이 보였다.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추기 위해 무척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 자만감은 나뿐 아니라 나와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까지 숨차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 트리운드로 가는 길을 수놓고 있는 붉은 꽃잎들 ⓒ 송성영


걸음걸이를 늦춰 잠시 바위에 걸터앉았다. 숨차게 올라오고 있는 젊은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문득 나와 아내 사이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잘난 맛에 겨워 '탐욕스러운 부조리한 세상'이 어쩌니 해가며 소박한 삶을 앞세워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 엄마는 늘 힘든 걸음걸이로 뒤따라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누군가 신다가 버린 낡은 운동화, 값싼 고무신과 털신을 고집해온 내 삶이 그랬듯이 잠자리며 입고 먹는 것을 최소한으로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자 했다. 그게 탐욕으로 넘쳐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보의 길이라 여겼고 그 길이 또한 행복으로 갈 수 있는 출구라 여겼다.

하지만 남들처럼 좀 더 많이 벌어 누리고 싶어 했던 아이들 엄마에게는 그 길이 숨 막히게 다가왔을 것이었다. 결국 그 삶의 방식으로 20년을 함께 살아온 얼치기 진보주의자, 남편인 나를 거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젊은 친구들과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시간을 재보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대략 세 시간 정도의 산행 끝에 앞뒤 시야가 탁 트인 평평한 언덕 위에 올랐다. 탁 트인 눈앞으로 히말라야 설산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설산 주변으로 구름이 오락가락 있었다. 맥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과 또 달랐다.

▲ 히말라야 설산과 티베트인들의 염원이 담긴 오색깃발 '룽따'(혹은 '다르촉') ⓒ 송성영


▲ 오색깃발이 널려 있는 트리운드 반대편 산봉우리로 오르다가 만난 야생화 ⓒ 송성영


티베트 사람들의 염원 담은 '룽따'

"아! 좋다!"

사진기로 다 담아 낼 수 없는 웅장함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더 이상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저 설산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으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렸다. 땀에 절은 온몸에 달콤한 바람이 안겨 왔다. 메마른 목구멍에 넘긴 물 한 모금의 달콤함으로 넋을 놓고  설산을 바라봤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덕 위에는 산행자들의 쉼터인 게스트하우스 몇 채와 간단히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구멍가게가 있었고 그 주변에서 몇몇 외국인들이 나처럼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다. 산행자들의 쉼터가 있는 언덕 위에는 좌우로 두 갈래의 산길이 있다. 우리 일행은 잠시 지친 몸을 바람에 날려 버리고 설산을 코앞에서 마주볼 수 있다는 오른쪽 길의 종착점, 우리의 본래 목적지인 트리운드로 향했다. 트리운드로 향하는 길은 때론 가파르게 다가왔지만 대체로 완만한 산책길이나 다름없었다.

트리운드로 접어드는 길 한가운데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붉은 꽃들을 화사하게 피어 놓은 커다란 나무들이 보기 좋게 늘어서 있었다. 거기서 뚝뚝 떨어진 꽃잎이 우리들의 발길을 가볍게 해줬다. 하지만 나는 동료들과 함께 얼마쯤 걷다가 돌아섰다. 맨 처음 올랐던 언덕에서 왼쪽으로 접어드는 산봉우리에 눈길이 꽂혔기 때문이다.

▲ 히말라야 산기슭 저 아래 자리잡고 있는 아주 작은 암자가 보였다. ⓒ 송성영

"암만 해두 나는 저기로 가야겠어."
"어디로요?"
"저기 반대편 산봉우리."

내가 젊은 친구들에게 손짓한 산봉우리에는 온통 오색 깃발들로 뒤덮여 있었다. 오색 깃발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저 산봉우리에서 홀로 설산과 마주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젊은 친구들과 헤어져 산길로 되돌아 내려와 오색 깃발 찬연한 산봉우리에 올랐다. 산봉우리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이 곳곳에 피어 있었다. 가파르게 오른 산봉우리에는 형형색색의 오색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고 거기서 몇몇 티베트 사람들이 옷가지를 불사르고 있었다.

한국의 절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천도제를 지내고 천도제에 쓰였던 옷가지들을 불에 태우듯이 이들 또한 죽은 사람의 유품을 태우며 극락정토를 염원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사진을 통해서만 보아왔던 히말라야 설산과 오색 깃발들이 바람과 함께 내 주변을 감싸왔다. 황색, 백색, 홍색, 청색, 녹색의 이 다섯 가지 깃발을 티베트 사람들은 흔히 '다르촉' 혹은 '룽따'라 부르고 있다.

'룽따'를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람의 말'이라는 뜻으로 이 깃발 안에 새겨진 말(馬)을 얘기한다. 오색 깃발에는 불교 경전이 새겨져 있고 깃발의 여백에는 개인의 소원을 적어 놓기도 한다. '롱따'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달려 부처님의 말씀과 함께 개인의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죽은 자들과 산자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오색 깃발들, 매달아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깃발과 더불어 다 낡아 그 일부가 바람에 찢겨 나갔거나 색 바랜 깃발들로 뒤엉켜 있다. 사방팔방 산봉우리를 물들이고 있는 오색 깃발들이 마치 인간의 생로병사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듯하다.

제를 마친 티베트인들이 산을 내려가자 마침내 나는 혼자가 됐다. 눈앞으로 펼쳐진 히말라야 설산과 마주앉아 가만히 눈꺼풀을 내리고 숨고르기를 한다. 숨이 들어오고 나감을 느끼며 의식을 따라가 본다.

예민하게 열린 내 의식 속에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내가 있다. 머릿속에 뒤엉켜 있는 의식들을 꼬리뼈 아래로 내려 보내려 하지만 쉽지 않다. 혼란스럽기만 한 의식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다. 깃발마다 담겨진 수많은 염원들이 바람소리와 뒤엉켜 소란스럽게 내 귓전을 때린다.

▲ 오색깃발과 구름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히말라야 설산. ⓒ 송성영


"저 수많은 염원들 중에서 건강이나 제물, 극락정토보다는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모든 생명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는 깃발들은 얼마나 될까.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에 평화로운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내 염원을 담아 매달아 놓을 오색 깃발은 없었지만 나는 수많은 오색 깃발들 속에 파묻혀 내 안에 평화로운 마음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의식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열어 구름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히말라야 설산 아래로 내려간다.

도무지 길을 찾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외떨진 아주 작은 마을로 향하고 있다. 마을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몇 채의 집이 전부다. 저 집들 중에는 수행자가 살고 있는 암자가 있을 것이다. 내 의식은 겨울이면 온통 눈에 뒤덮여 길조차 끊어져 버릴 것만 같은 작은 암자에 시선이 멈춘다.

"저 암자에는 어떤 수행자가 살고 있을까. 무슨 농사를 짓고 있을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농사를 지어가며 저 곳에서 한 세월을 보내고 싶다."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감긴 눈 속으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 생각의 꼬리를 잡고 걸림 없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상상의 문을 열고 그 암자 앞에서 얼쩡거린다. 하지만 내 의식은 더 이상 암자의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암자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눈으로 내려다 보는 것과 달리 꽤 먼 거리다. 암자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해도 암자 근처에 다가가기도 전에 어두운 산속을 헤매고 다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히말라야 기슭의 외딴 암자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현실과 이상은 내가 앉아 있는 산봉우리와 저기 저 높다란 히말라야 기슭 아래 외딴 암자만큼이나 거리가 있었다.

▲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보고 피어 있는 야생화 ⓒ 송성영


몽환의 공간... 그 암자엔 누가 살고 있을까

현실과 이상 사이를 드나들고 있을 무렵 설산 주변을 오락가락 하던 구름들이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히말라야는 변화무쌍하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빗방울은 조급한 마음,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 산을 내려가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점점 굵어져 가는 빗물에 어깨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하늘이, 히말라야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내 고민을 단박에 해결해 준 것이다.

비가 내려도 젖지 않을 것 같은 히말라야 설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기분 좋은 꿈길처럼 산길을 내려서는 발걸음조차 가뿐했다. 좋은 사람들, 마음자리가 맑은 사람을 만나고 하산하는 길처럼 가벼웠다.

산아래 마을로 들어설 무렵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침침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듯 맑아졌다. 그 길목에서 새 한 마리를 만났다. 어깨에 걸쳐 맨 천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냈다. 망원렌즈가 없었기에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가 사진기를 들이대야 했다. 그럼에도 돌담 위에 멀쩡하게 앉아 날아가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는 "찰칵 찰칵" 명쾌한 소리와 함께 녀석과 나 사이의 평화가 사진기에 말끔하게 담긴다. 욕심부려 발짝 더 다가가 셔터를 누르자 녀석이 뽀르르 날아가 버린다.

▲ 마을로 내려오는 길목에서 만난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 송성영


"현실과 이상 사이는 물론이고 세상살이가 그러하질 않는가. 아무리 좋은 마음자리라 해도 욕심껏 너무 가까이에서 평화를 움켜쥐려 하면 그 평화는 깨지고 말 것이다. 부부 관계나 자식과 부모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살아갈 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변화무쌍한 히말라야,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새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