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풍전등화' 40대 좌절시킨 박근혜의 결정적 한 수

[공약점검③ : 세금] 대선 앞두곤 세율 인상은 없다더니... 속았다

등록|2014.10.01 20:38 수정|2014.10.01 20:38
반값등록금, 기초노령연금, 무상보육, 증세 없는 복지 증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쏟아낸 공약들 중 일부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지 1년 6개월여가 지난 현재 각 분야의 공약들이 어느 정도 이행됐으며 체감 지수는 어느 정도인지 세대별, 관심별로 나누어 알아봤다. [편집자말]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조재현


"딱히 결혼할 마음이 없어. 결혼을 안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혼자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혼자 생활해서 불편한 것도 별로 없어, 사실 집에 들어가면 씻고 몸 눕히기도 바빠. 이 나이에게 애 키우며 사는 것은 상상도 안 돼."

마흔을 넘은 지도 오래 전, 이제는 쉰을 코앞에 둔 친구는 아직 '미혼'이다. '결혼 안 하냐?'고 묻기도 주저되는 나이. 술자리 힘을 빌려 "눈높이를 낮춰라, 별다른 사람 없다"는 나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마자 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꼭 해야 할 당위성을 못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미혼, 아니 비혼이 팍팍한 현실에서 홀가분하다고 강변했다.

"사는 게 피곤하지 않냐? 너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 애들 키우고 사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여. 이 불경기에 애들 학원 보내고, 안 오르는 것 없이 다 오른 물가에 쩔쩔매는 친구들을 보면 '결혼이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도 들어. 담뱃값에 자동차세까지 오른다는데, 요즘 같아서는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해."

편의점을 하는 친구는 알바생 3명을 쓰면서 2교대를 한다. 그렇게 생활한 지 벌써 10여년이 넘었지만, 요사이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입에 붙었다. 새로 생기는 편의점도, 망해서 나가는 편의점도 주변에 부지기수다. 주변에 생긴 대기업 편의점까지 상대해야 하니 요즘은 사는 게 아니고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버티는 삶은 비단 그 친구뿐만 아니다. 초.중 학생을 키우는 나나, 조금 일찍 결혼해서 대학생 아들딸을 둔 친구도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는 게 아니라 버틴다... 어디 친구 혼자만 그럴까

세대의 허리라는 40대. 사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기대도 많이 했다. 야당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는 친구나, 여당인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는 친구는 술자리에서 만나 갑론을박하기 일쑤였지만, '이명박 정권과는 다를 것이다'라는 믿음은 같았다. 그리고 변화의 욕구와 믿음의 중심엔 '먹고 사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히려 민주화니, 정권의 정직성이니 하는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누구는 여당 후보에게, 또 다른 누구는 야당에게 표를 던졌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시 야당에 표를 던지긴 했지만, 박근혜 후보가 되더라도 지금보단  뭔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았다. '중산층 70% 재건'과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선거 때 의례적으로 한 번씩 내세우는 공약이라고 치부하더라도,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며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날을 세운 박근혜 후보는 조금이나마 서민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그건 막연한 기대일 수만도 없었다. 어렵게 빚을 내어 살림살이를 꾸리는 서민들의 절박함이 깃든 바람이기도 했다. 비록 당시 '같은 정치와 경제적 배경을 지닌 후보가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란 반론도 만만치 않았지만, 하루가 멀게 재래시장에서 상인들에게 손을 내미는 박근혜 후보의 모습은 서민들에게 '혹시나'란 기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내 주변의 40대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 2012년 대선을 앞둔 11월 16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마산시 회원구 합성동 동마산시장에서 상인대표들과 돼지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집집마다 소득은 늘고! 지출은 줄고! 가계부 쓸 맛이 납니다."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야당 후보의 공약보다 더 큰 조명을 받았다. 물론 언론의 편파성에 힘입은 바도 없지 않지만 세대별, 계층별 맞춤형 공약은 야당보다 선명했기에 많은 지지를 이끌어 냈다. 특히 40대에게 펼쳐 보인 공약은 강열했다. '소득이 늘고, 지출이 줄고!' 이 선전 구호는 공약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한 번쯤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최면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집권 1년 반이 지난 현재, 소득이 늘지도 지출이 줄지도 않았다. 집 걱정 없는 세상, 가계 부채 부담 줄이기 공약(公約)은 그야말로 한 번쯤 내뱉고 마는 공약(空約)이 되었다.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집값 띄우기 정책에 전셋값은 들썩이고 있다. 국민행복시대에 나는, 내 주변의 40대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그 누구도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흥얼거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각종 통계들도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24일 한국은행 등이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상용근로자 5인 이상 기업체의 노동자 1인 실질임금 상승률은 0.2%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의 경우, 오히려 줄어들었다. '소득을 늘리겠다는 공약'이 대기업과 부자에게는 지켜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민에게는 콧방귀 절로 나오게 하는 헛공약임에 틀림없다.

지출을 줄이겠다는 공약도 다르지 않다. 대기업과 부자에게는 기업 상속세를 면제해주고, 손주에게 주는 교육비조차 면세 한도를 대폭 늘리는 등 '부자들을 위한 혜택'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서민들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각종 간접세에 대해서는 국민 건강권, 비정상의 정상화란 문구를 앞세워 대폭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등 직접세에 대한 서민들의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 논란이 된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일각에선 '세금폭탄'이라고 했지만, 정작 종합부동산세를 내어야 할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돈을 번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 이어 정권을 이어받은 이명박 정부는 경제 침체 극복과 낙숫물 효과를 앞세워 법인세 인하 등 직접세 인하에 열을 올렸다. 자연히 그 혜택은 부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을 볼 때,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가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대선 전 목에 핏대를 세우면 외쳤던 '경제민주화'는 어디로 간 것일까.

반면 서민 삶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부가가치세, 주세 등 간접세는 계속 인상되어 왔다. 물론 부가가치세 요율이 변경되진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폭등한 물가는 부가가치세 부담을 계속 키워왔다. 부자들보다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서민들이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급하게 진행된 담뱃값 인상도 마찬가지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담뱃값 인상을 두고 오히려 '부자증세'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서민증세의 비난을 피해보자는 얄팍한 꼼수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40대의 위태로운 삶, 괜찮을까

"복권이나 한 장씩 사자. 1등 되면 7:3으로 나누기. 1등 되면 미련 없이 이 나라 떠나련다. 먹고 사는 문제, 앞날에 대한 희망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는 이 나라, 지긋지긋하다."

친구와 나는 복권을 한 장씩 샀다. 당장 월요일이면 허망하게 무너져버릴 헛된 꿈,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서민들에게 복권 한 장의 희망조차 주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처럼 간접세를 인상해 세수를 충당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세수를 충당하고 기업과 부자들을 먹여 살린다는 비난을 받을 만한 충분한 상황이라고 본다.

담뱃값과 주민세, 자동차세 등 몇 천 원의 인상이라고 하지만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 꼴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랑비에 젖은 옷을 말릴 태양이, 더 이상 서민들을 향해서는 비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1%가 아닌 99%에 속한 40대의 삶은 위태롭다. 가계부채에 부모봉양, 자녀교육비, 노후자금 마련까지... 대한민국 40대의 삶은 현재, 갈 길은 먼데 날은 어둡고 비까지 내리는 형국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