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집시의 두 얼굴, 과연 뭐가 진짜일까
[해외리포트] 플라멩코 속 집시 vs 도시 속의 집시
▲ 도시 곳곳은 비엔날레 플라멩코 공연으로 뜨겁다. ⓒ 홍은
플라멩코의 도시로 알려진 스페인 세비야는 요즘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로 북적인다. 매일 도시 곳곳의 공연장과 거리에서 다양한 플라멩코 공연들을 볼 수 있고, 단기 집중 플라멩코 강의도 많이 개설됐다. 지금 세비야는 공연을 보러, 플라멩코를 배우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플라멩코 마니아들로 정신이 없다.
'플라멩코'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바로 '집시'다. 붉은 플라멩코 의상과 머리에 꽃을 꽂고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 카르멘의 이미지를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스페인 안달루시아는 집시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인데, 대다수 사라믈은 '정열의 땅'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집시를 떠올린다.
플라멩코의 전설로 알려진 카마론 데 이슬라가 대표적 집시 플라멩코 가수의 모델이며 현존하는 아티스트의 수식어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역시 바로 히타노(집시)이다. 집시적인 것이 더욱 플라멩코적인 것이라는 이미지는 외국인뿐 아니라 이곳 사람들에게도 팽배해 있다.
하지만 플라멩코를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집시'란 단어와 도시 안의 구성원으로 이야기되는 '집시'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마약', '도둑', '사회부적응' 등의 이미지가 바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집시에 흔히 부여되는 또 다른 카테고리이다.
플라멩코 비엔날레가 한산했던 이유
내가 4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플라멩코 비엔날레가 열렸다. 작은 레코드숍에 붙은 플라멩코 공연 광고를 본 뒤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민센터로 갔다. 도착한 곳은 시내 외곽이어서인지 유난힌 한산했고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공연을 한다는 시민센터에 모인 관객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모인 사람들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힐끗힐끗 쳐다봤다. 마침 독일 아르떼 TV에서 취재를 나와 있었는데 리포터인 듯 보이는 여성이 다가와 물었다.
"여기에 어떻게 왔어요?"
"플라멩코 공연이 있다기에 왔어요."
"이 지역에 대해 몰라요?"
그리고 그녀는 이곳이 세비야 뿐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가장 우범지역으로 알려진, 집시 3000가구가 모여 사는 곳이라고 알려줬다. 그날 이후, 내가 그 지역에 다녀왔다고 하면 스페인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는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 시내의 화려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3000가구 지역 ⓒ 홍은
이 지역은 1977년 도시 정화를 목적으로 설립되어 일반 서민뿐 아니라 당시 움막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집시촌 사람들을 이주시켰으나 10년도 안되어 대다수의 가구들이 파괴되고 시설들이 도난당하는 등 복구가 불가능해지면서 점점 우범지대로 방치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이 지역에 스페인 전체 집시의 10분의 1이 살고, 세비야주만 봤을 때 반 이상의 집시들이 이 지역에 모여 살아, 집시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은 1990년대 이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도시 안에 자리 잡았던 집시들을 도시 외곽으로 추방하고, 이주시켰다. 세비야도 집시 밀집구로 알려진 트리아나 지구에 자리 잡았던 집시들을 '신개발지구'라 명명한 곳으로 이주시켰다. 스페인은 1992년 엑스포 당시에도 대대적 집시 이주 정책을 쓰면서 미처 이주시키지 못한 지역엔 큰 바리케이드를 쳐 집시들이 사는 곳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시들이 모여 사는 곳은 점점 고립되었고 마약, 범죄 지역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현재 '3000가구' 지역 중 가장 우범지구라 불리는 라스베가스(미국의 라스 베가스 지명과 비교하며 같은 지명과 다른 카테고리의 지역으로 비교되기도 한다)는 소방관이나 경찰들도 들어가는 걸 기피하는 우범지역이다.
공동체 생활 이어가는 집시들... "외부에선 이해 안 될 수도"
카르멘(32·여)은 아버지가 집시, 어머니는 집시가 아닌 절반 집시 집안에서 태어났다. 13세까지 3000가구 지역에서 산 그녀는 보통 타 지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미지와는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그 안에 살 때는 (타 지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하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시들은 흔히 거대 가족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모두가 가족이었고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는 '집시 이미지'에 대해 그녀는 "분명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건 사는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라며 "문제시되는 마약이나 범죄의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모든 집시들이 그 문제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도 가장 위험 지구로 알려진 라스베가스 지역에 가는 것은 엄격히 금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삶의 형태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딱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말한 그녀는 "예를 들어 정부에서 지은 주택에는 파티오(공동 뜰과 같은 공간)가 없지만 그 곳에 이주해온 집시들은 모두 단지 안에 파티오를 불법으로 만들었다"며 "그곳에서 함께 먹을 것을 나누고 파티를 하는 것이 그들에겐 삶이고 생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시들 대부분은 내일 먹을 빵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공동체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라며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런 것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집시는 집시... 그들이 집시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카르멘의 애인 역시, 그녀가 3000가구 지역 출신이라고 밝혔을 때 처음엔 잔뜩 경계를 했었단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몇 번 그곳을 방문한 이후로 그런 선입견이 없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나보고 그곳에 가서 다시 살라고 하면 살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다른 스타일의 삶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그곳의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들에게도 나는 이제 바깥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까지 애인 이외에 누구도 그 곳에 데리고 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자연스럽지만 분명 타인에게는 집시들의 삶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에 친한 친구라도 조금은 꺼려진다는 것이다.
<3000가구 지역의 예술>(도미니케 아벨, 2003)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이 지역이 가진 두 개의 얼굴, 우범지역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집시에 대한 두 개의 이미지는 모두 어쩌면 부정적 혹은 긍정적 선입견에서 오는 것 일 수 있겠다. 집시라고 해서 다 플라멩코를 추는 것이 아니며 모든 집시가 다 마약을 파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집시는 집시이다. 그들이 집시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사는 사회가 변화하고 그 안에서 어떤 잣대에 의해 그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이야기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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