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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 세월호 유족 간담회 불허... 정문 앞에서 열려

유경근 대변인 "예은아빠로 불리고 싶어... 좋은 자리 만들어주셔서 감사"

등록|2014.09.26 23:45 수정|2014.09.27 00:04

성균관대 불허, 야외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과 학생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 대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은 지난 22일부터 서울 시내 대학을 찾아 학생과의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지만, 성균관대학교는 세월호 유가족과 학생과의 간담회를 정치적 활동이라며 강의실 사용을 불허해 이날 행사는 정문 앞에서 열렸다. ⓒ 유성호





"유가족께서 오시는 간담회 자리가, 편안하고 따뜻한 강의실이 아닌 학교 정문이 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 학생들은 어떤 사안이든 대학 안에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불허하는 학교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정치라는 두 글자를 무서워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 (김동주 성균관대 사범대 학생회 교육국장, 21) 

성균관대 측이 재학생들이 신청한 '세월호 유족 간담회' 강의실 사용을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불허해 논란이 인 가운데, 성균관대 학생 70여명이 26일 오후 6시 학교 정문 앞에 모여 야외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23일 오후 성균관대는 세월호 유족과의 간담회가 열릴 장소였던 서울 종로구 인문사회캠퍼스 인문관의 강의실에 대해 '사용 불허'를 통보해 논란이 됐다. (관련기사: 성균관대, 세월호 유족 간담회 불허... 이유는?)

간담회를 준비하던 학생들은 이에 다음날인 24일 오후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등 즉각 항의했다. 이 날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 한 여학생은 '성균관대학교'라고 쓰인 돌판 옆에서 "대학 당국에 묻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가로막는 행위야말로 '저열한 정치행위' 아닙니까?"란 제목의 대자보를 들고 서 있었다.

간담회에서 학생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얇은 은박 비닐을 깔고 앉았다. 학생들 앞에는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잊지 않고 함께 하겠습니다"라 쓰인 노란 피켓과 미리 접은 커다란 노란색 종이배가 놓여 있었다. 종이배에는 '슬픔의 배에서 희망의 배로!'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린 아이를 안은 동네주민들도 자리에 함께했다. 야외에서 진행된 탓에 마이크나 조명 등 시설은 열악했지만 근처 사회과학서점으로 잘 알려진 '풀무질'에서 전기를 빌려줘 진행할 수 있었다. 은종복 풀무질 대표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준비를 돕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학생들이 이런 걸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날 연사인 유경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은 앞서 5시께 한 성균관대 교수의 요청으로 수업에 들어가 학생들을 만난 뒤 간담회에 참석했다. 유씨는 "아직도 대변인이라는 호칭이 굉장히 어색하다, 저는 예은이 아빠였고 앞으로도 '예은아빠'로 불리고 싶다"는 말로 간담회를 시작했다.

간담회는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뒤 유가족과 학생들이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지난 4월 16일 이후 전개된 세월호 참사 관련 내용,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오해와 진실 등 간담회는 3시간가량 진행됐다.     

학생들 "정치적 선동을 하려 만든 자리 아냐... 각자의 생각 확인하는 자리"

성균관대 찾은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참사 잊지 말아달라"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과 학생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 대변인이 "여러분들이 잊지 말아야 할 분들이 있다. 당연히 희생된 아이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반드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분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진도의 실종자와 가족들이 있다"며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 유성호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지켜보는 성균관대 관계자들성균관대학교가 세월호 유가족과 학생과의 간담회를 정치적 활동이라며 강의실 사용을 불허한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과 학생과의 간담회를 학교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유가족 발언에 앞서 간담회를 제안하고 기획한 성균관대 김영길 학생은 "저희가 정치적 선동을 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는데 저희는 어떤 (특정)정치성을 관철시키고 선동하러 온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각자의 생각과 정치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자리다, 힘들게 만든 만큼 좋은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여기서 세월호 유족들이 만든 '세월호 146일의 기록' 영상을 시청했다. 약 15분 길이의 영상에는 세월호 참사 당일 희생학생 부모들이 아이를 찾아달라며 절규하는 내용, 이어 '간부 막말 파문' 당시 여의도 KBS와 청와대로 영정을 들고 가 항의하던 모습 등이 담겨있었다. 간담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물론 카메라기자 등 취재진도 화면에 집중했다.  

약 5m 떨어져 담배를 피우며 다른 곳을 보던 유씨는, 영상이 끝나자 마이크를 잡고 "최근 대학을 돌며 영상을 매일 본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164일째 4월 16일이라는 사실에,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 모두 '유족 여한없이 하겠다'던 진상규명을 아직도 못 했다는 사실이 서러워 (영상)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당일 오전 세월호 사고 속보를 봤지만, 집으로 왔던 가정통신문에는 예은이가 '오하나마호'를 타고 간다고 써있어 아이가 사고 난지 몰랐다"며 안타까웠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을 남겨두고 살아나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단원고 생존학생들을 꼭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씨는 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에 대해서도 비유를 들어가며 쉽게 설명했다.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유가족에게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 진상규명기구의 독립성이 첫째, 충분히 보장되는 조사·수사 기간이 둘째, 조사를 하면 강제력 있는 수사도 할 수 있는 '연계성'이 셋째 원칙"이라며 "이 원칙들이 충분히 반영된다면 얼마든 다른 안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유가족들에 대해 '피해자가 직접 조사하는 게 말이 되냐'는 등 오해하시는데 그게 아니다"라며 "그 권한를 가진 특별검사를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배치하고 싶다는 거다, 그런 수사·기소권이 진상조사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가족의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약 30분 간 대화 이어져... 유가족 "제일 두려운 것은 모두에게서 잊히는 것"

'세월호 참사 잊지 않을께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과 학생과의 간담회에서 한 학생이 유가족들에게 직접 쓴 편지를 낭독한 뒤 유경근 대변인을 안아주고 있다. ⓒ 유성호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불허, '저열한 정치행위'성균관대학교가 세월호 유가족과 학생과의 간담회를 정치적 활동이라며 강의실 사용을 불허한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가로막는 행위야 말로 저열한 정치행위이다"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유씨의 이야기 뒤에는 약 30분 간 학생들이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언론에 나오는 얘기는 일부 유가족의 주장 아니냐"는 질문에 유씨는 "가족들이 500명이라 개인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매주 금요일 총회를 열어 의견을 정한다"고 답했고, "일부 국민들이 사고 초반과 달리 냉소적으로 변한 것 같은데 원인을 뭐라고 보냐"는 질문에는 "저희 잘못도, 생각의 차이도 있지만 사고에 대한 애통함과 슬픔은 변함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민감한 질문도 이어졌다. 간담회에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이라는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의 한 남학생은 "지난 여야 합의안에 대해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는 수용하겠다고 했는데, 왜 두 대책위가 갈리는 건지 궁금하다"면서 "최근 김무성 의원 사이에 생긴 일도 설명을 듣고 싶다"고 질문했다.

유씨는 "처음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의 연락처를 해경에 요청했는데 개인정보라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며 "국회에서 농성을 할 때도 그 분들과 함께 했다,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의) 2차 합의안 수용은 그게 최선이라서가 아니라, 그나마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무성씨가 (일반인 유가족들이 아닌)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 간부진들을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 글자를 썼던 사실은 맞다, 진실공방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서 더는 설명드릴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간담회는 학생들이 유가족들에게 직접 쓴 손편지를 낭독하고 전달한 뒤 끝났다. 김희연(21,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학생은 "아이가 없는 저는 100% 부모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무섭다"며 "미약한 힘이나 보태겠다"고 쓴 편지를 낭독한 뒤 유씨를 감싸 안았다.

유씨는 "제일 두려운 것은 아무도 저희를 기억하지 못하고 (사고) 잊히는 것"이라며 "죄송하지만 앞으로 계속 응원해주시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달라, 저희가 힘들어 보이면 와서 위로도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대학생 여러분을 보면 '우리 예은이도 2년 뒤면 대학생이 돼서 신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힘들었다, 지금도 사실 어렵지만 여러분을 만나면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가족들은 오는 27일 오후 3시께 도보행진을 한 후 5시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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