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해법? 국민연금을 '철밥통'으로
[주장] 공적연금의 근본 철학과 취지 잊지 말아야
▲ "연금개혁 해체" 외치는 공무원노조국회에서 22일 오전 열릴 예정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 정책토론회가 공무원노조의 저지로 무산됐다. 한국연금학회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 예정이었지만, 공무원노조 지도부와 노조원 200여 명이 토론회장에 대거 참석해 "연금개혁 해체", "새누리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소란을 피워 결국 토론회를 취소했다. ⓒ 남소연
교무실에는 '연금박사'가 꼭 한둘씩 있다. 연금 활용법이나 문제점에 대한 분석은 전문가 수준이다. 금융 컨설턴트가 따로 없을 정도다. 그런 그들이 유난스러워 보였다.
교사는 공무원이니 공적연금인 공무원연금 적용을 받는다. 공적연금은 국가가 법을 통해 국민들의 노후를 보장해 주는 제도다. 일정한 부담금을 내면 노후에 법적으로 정해진 연금을 받는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최소한의 노후 보장이 담보된다. 굳이 연금박사가 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최근 나도 연금박사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부쩍 자주 든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논란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정부 여당의 방침은 공무원연금을 '많이 내고 덜 받는' 시스템으로 바꾸려는 것인 듯하다. 급여 보장 수준을 대폭 깎는 방식을 통해서다. 장기적으로는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처럼 만들겠다는 의도도 갖고 있는 것 같다.
공무원 연금, 왜 '특혜'로 오해 받을까
국민연금은 대표적인 공적연금이다. 국가가 법을 통해 국민들의 노후를 보장해 주는 게 핵심이다.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할까. '소득대체율'이라는 용어가 있다. 연금액이 개인 생애평균소득의 몇 퍼센트나 되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소득대체율이 50퍼센트라면 연금 가입 기간 평균 소득의 절반 정도라는 뜻이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 당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70퍼센트였다. 안락한 노후 보장을 위한 소득대체율은 대략 65~70퍼센트 사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초창기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성은 양호한 편이었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007년에 40퍼센트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한 소득대체율 수준에 크게 못 미치게 된 것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노동계는 정부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제도를 '개악'해서 안전성이 깨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공적연금의 하나인 공무원연금 '개혁'이 수면 위로 떠오른 된 것이다. 정부는 공무원연금의 심각한 재정 적자를 추진 이유로 들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올해 2조 5천억 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0년 뒤에는 누적 적자만 53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그 이유를 공무원들이 연금을 많이 받고 있는 데서 찾는다. 이른바 '공무원연금 특혜론'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공무원 노조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부담금 대비 수익률은 같다. 일반 국민이 매월 10만 원을 납부해 연금을 18만 원 받는다면, 공무원도 부담금을 매월 10만 원 납부하고 18만 원을 받는다. 국민연금이든 공무원연금이든 낸 만큼 돌려받는 것이다.
그런데도 '특혜'로 오해받는 이유는 뭘까. 국민연금보다 큰 연금액 규모 때문이다. 이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시스템 자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연금은 보험료 본인 부담률이 4.5퍼센트다. 공무원연금은 7퍼센트다. 국민연금보다 약 1.6배 많다. 부담률이 큰 만큼 돌려받는 연금액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의 연금액이 커지는 데에는 퇴직금 처리 문제의 특수성도 깔려 있다. 공무원은 퇴직금이 없는 대신, 받지 못한 퇴직금이 공무원연금에 0.3퍼센트 가산되어 지급된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일반인들이 받는 퇴직금을 공무원연금 가입자들은 연금으로 받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들과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일반 국민의 차이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먼저 급여 차이가 있다. 하위직 공무원인 9급 초임 연봉은 1900만 원이 채 안 된다고 한다. 한 해 평균 3700만 원 정도를 받는 대기업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2400여 만 원을 받는 중소기업 노동자에 비해서도 500여 만 원이 적다.
현재 일반직 공무원의 임금 수준은 100인 이상 기업 임금의 77.6퍼센트, 일반직 대졸 임금의 69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공무원 월급이 많이 '현실화'했다고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공무원이 퇴직수당이라는 명목으로 받는 퇴직금도 기껏해야 민간 기업의 39퍼센트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10년이면 연금 수급이 가능한 국민연금 가입자와 달리 공무원은 20년 이상 재직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기초연금은 물론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결국 신분상 제한에 대한 보상, 긴 납입 기간에 따라 늘어나는 기여금 등을 고려할 때 공무원연금 가입자들이 일방적으로 특혜를 받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적연금의 '하향평준화'
사정이 이런데도 공무원연금 특혜론은 일반 국민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재정 적자에 수조 원의 국민 세금, 곧 정부 보전금이 투입되고 있는 데 대한 반감이 결정적인 배경이다. 그런데 공무원연금의 재정 적자 문제는 그 역사적인 맥락까지를 함께 고려해서 봐야 '진실'에 이를 수 있다.
공무원연금이 도입된 1960년과 지금은 상황과 여건이 많이 다르다. 도입 당시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수명은 52세에 불과했다. 현재는 82세다. 무려 29년이나 늘어났다. 가입자 1인당 연금을 받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필요 재원이 급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부 책임도 크다. 공적연금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1만여 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퇴직급여를 4조7천억 원 지출했다. 그밖에 정부는 철도청 공사 전환에 따른 퇴직수당 2200억 원, 정부가 공무원연금에서 무이자로 빌려쓴 돈 4700억 원 등 현재가로 24조 원이 넘는 재정 손실을 가져왔다. 모두 정부가 갚아야 할 돈이라고 한다.
새누리당이 이끄는 공무원연금 개혁의 향방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비판론자들은 개혁의 절차와 방식, 방향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핵심 당사자들이 배제된 밀어붙이기식 밀실 논의와 공적연금의 하향평준화 논란 때문이다. 특히 문제되는 것이 하향평준화다.
공적연금의 하향평준화 문제는 근거 없이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현직 공무원의 경우 부담률이 현재 기준 소득월액의 7퍼센트에서 2016년에 8퍼센트로 인상된다. 2026년에는 10퍼센트까지 올라간다. 현재보다 40퍼센트 이상 인상되는 수준이다.
반면 연금액 규모는 크게 내려간다. 가입기간 33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소득대체율을 현재 63퍼센트에서 국민연금 수준인 41퍼센트로 낮춘다는 게 이번 개혁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혁안의 목표가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으로 전환해 최종적으로는 이를 없애는 데 있다고 보기도 한다.
'더 내고 덜 받는' 시스템에 공적연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공적연금은 국가가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다. 정부가 소득대체율을 일정한 수준에 맞춰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장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마땅하다. 100세 시대가 머지 않은 지금, 노후 보장 문제야말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지속가능성을 가늠케 하는 핵심 지표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적연금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압도적인 세계 1위다. 2010년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47.1퍼센트다. 오이시디(OECD) 평균 12.8퍼센트보다 4배나 높다. 2010년 65세 이상 노인 10명당 자살자 수도 80.3명으로 오이시디 평균 20.9명보다 4배가 많다.
하지만 현재 대표적인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1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현재 63퍼센트 정도인 공무원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용돈'으로 전락한 국민연금 수준에 맞추겠다며 벼르고 있는 것이다. 공적연금의 '수호천사'여야 할 정부가 그 기본 위상과 기능을 스스로 차버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더욱 유감스럽게도 정부와 여당은 일반 국민과 공무원을 '이간질'하는 식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표면적인 연금액 차이를 부각하면서 일반 국민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을 향해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연금 개혁 작업에 동참하라고 을러댄다. 우리 정부의 공무원연금 재정 부담률은 외국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까지 낮다고 한다. 그런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말일까.
흔히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한다. 나는 공무원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단단한 '철밥통'을 꿰차게 된다면 좋겠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들의 실질적인 노후 보장이 가능하도록 국민연금 급여액을 크게 올리는 식의 공적연금 상향평준화를 추진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공적연금 전체를 '쪽박'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는 작금의 시도는 즉각 멈추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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