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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우산 써주던 그 소녀... 곁에 있어줘 고맙소

김건모 <빨간 우산> 들으면 그 시절 '파란 우산'이 생각난다

등록|2014.10.01 14:50 수정|2014.10.02 12:11
비 오는 날 아침은
언제나 내 맘을 설레게 해
우연히 내 우산과
똑같은 빨간 우산을 쓴 소녈 봤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건넨 말
저 어디까지 가세요
때마침 저와 같은 쪽이네요
우산 하나로
걸어갈까요

▲ 김건모의 빨간우산 가사 속에 등장하는 그녀, 아내를 생각하게 한다 ⓒ openclipart


가수 김건모의 <빨간 우산> 가사 중 일부다.

한창 혈기장장했던 시절, 나는 모 호텔의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는 매일 호텔에 투숙한 손님들이 남긴 숙박계를 자정까지 해당 파출소에 가져가서 담당 경찰관으로부터 사인 내지 도장을 받아야 했다.

때론 지겨운 일이었지만, 비 오는 날은 달랐다. 노래 <빨간 우산> 가사처럼 나도 함께 우산을 쓸 애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잠깐 불러내 같이 우산을 쓰고 파출소를 들리는 재미가 있었다.

파란 우산의 시린 기억

그 시절의 달콤함과 달리 소년 시절의 내게 우산은 또 다른 가슴 시린 기억이 남아있다. 지독한 가난에 원하지 않은 소년 가장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비가 잦은 여름날엔 우산 장사를 했는데 당시에 내가 팔았던 파란 비닐 우산은 한 개에 500원이었다. 당시 우산을 하나 팔면 200원이나 남았다.

행인들이 우산을 미처 챙겨 나오지 못할 확률이 높은 소나기가 내릴 때 가장 좋았다. 우산을 많이 파는 날엔 무려 50개씩 파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엔 내가 마치 명량해전에서 왜선을 무찌르고 개선하는 이순신 장군처럼 으쓱했다.

그런 날엔 건강이 안 좋아 두문불출하시는 홀아버지를 위해 구멍가게와 푸줏간에 들러 아버지 드실 소주와 담배, 돼지고기 한 근을 사곤 했다.

▲ 소나기에 더 잘팔렸던 우산 ⓒ wikimedia


<빨간 우산>의 노래는 이어진다.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파란 보랏빛 꿈결 같은 기분이야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까 아름다운 그녀
오! 세상은 아름다워 그래 그래서 다들 살아 가나봐
저 하늘이 날 도운 거야 꿈이 아니길 바라

이제 며칠 후면 결혼 33주년 기념일을 맞는다. 약 40년 전 같이 우산을 쓰고 파출소에 간 그녀가 바로 지금의 아내다.

건강이 안 좋아 외출이 힘든 아내.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여행을 계획하기도 무리다. 저녁이나마 근사하고 맛난 걸로 대접하고 싶다. 어쨌거나 일편단심해 준 아내를 만나 부부가 된 것이 나로서는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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