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강아지가 두려운 사람들... 이상하다고요?

[유기견 입양기18] 동물이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

등록|2014.10.05 15:01 수정|2014.10.05 15:01

가을의 인간 공포아무리 여러번 본 사람일지라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 박혜림


비좁은 보호소에서 10년을 살아온 나의 반려견 가을이는 보이는 모든 것이 공포의 대상이다. 19개월째 함께 살고 있는 나에게도 천천히 마음을 열었고, 규칙적인 산책으로 세상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지만, 아직 멀었다. 벗어놓은 양말이 무섭고 잡채를 빨아먹는 소리가 무섭다.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이 무섭고 꺄르륵 웃는 아이들이 무섭다. 어른 인간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는 말해봐야 입이 아프다.

그런데 산책을 나가면 이런 가을이를 끔찍한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 가을이에게 '제가 더 무섭습니다' 띠를 해주고 싶은 적도 있었다. 절대로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는 가을이나, 순하디 순한 가을이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사람들, 나는 양쪽 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동물 공포의 대명사인 지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단박에 거절당했다. "공포란 떠올리기조차 싫은 것"이라면서. 조금 더 노력하여 세 명의 '동물 공포자'들을 섭외했다. 다음은 그들과 나눈 일문일답.

7살, 이웃 강아지의 '으르렁'...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 자유로운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여섯 살 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30대 주부입니다."(이하 '주')
"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가끔 진지하게 고민하는 40대 여성입니다."(이하 '고')
"평생 동물을 무서워하면서 살아온 20대 아기엄마입니다."(이하 '아')

- 우선, 동물이 싫으신가요, 무서우신가요?
: "무섭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동물과 감정적으로 교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싫다는 표현은 좀 심한 것 같고, 무서워하다 보니 애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 "모든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설치류와 고양이, 파충류, 조류를 싫어해요. 그 외의 동물은 보는 건 좋아하는 편입니다. 동물 다큐멘터리는 바쁘지 않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챙겨 보지요. 하지만 만지는 건 절대 싫어요."

- 언제부터 그렇다(동물이 무섭거나 싫다)고 자각하셨는지요?
: "고등학교 생물 시간이었어요. 교과서에 쥐 그림이 나왔죠. 사진도 아니고 그림인데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어요.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리고. 쥐가 그려진 종이조차 만질 수 없었죠. 결국 짝꿍이 넘겨줬어요.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 본격 트라우마가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경험담을 상세히 묘사해주실 수 있는지요?
: "일곱 살로 기억합니다. 그 때 골목길 안쪽에 있는 집에 살았는데, 친하게 지내던 이웃에 발바리 강아지가 있었어요. 엄마 심부름으로 그 발바리가 있던 집에 무언가 건네주러 갔는데, 평소에는 늘 묶여 있던 발바리가 그 날 갑자기 저에게 덤벼 들었습니다. 물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심하게 짖으며 으르렁거렸어요.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너무 무서워 그 길로 도망쳐 왔는데 발바리가 저희 집 까지 쫓아왔습니다. 대문 앞에서 기절해서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이 마당에 칠면조를 풀어놓고 키웠어요. 수돗가에 가려면 칠면조들의 장벽을 뚫어야 했지요. 나는 작은 어린아이였고, 칠면조는 거대하고 생김새도 너무 징그러웠어요. 문만 열고 나가면 그 애들이 달려들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끔찍하네요. 어쩌면 그래서 닭이 싫은지도 모르겠어요. 부리와 벼슬과 발은 정말 끔찍하거든요."
: "어릴 때 시골에서 툇마루에 있다가 뒤로 떨어져 강아지들이 모여 먹고 있는 밥그릇으로 머리가 빠져 정말 놀란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원래부터 강아지들을 무서워했던 거 같아요."

"밀폐된 공간에 목줄 없는 개와 함께 있을 때, 두렵다"

가을의 천둥 공포비가 오기 시작하면 가을은 천장이 낮은 곳을 찾아 몸을 숨긴다 ⓒ 박혜림


- 혹시 동물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 "전 늘 노력해요. 기억하고 있는 노력으로는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강아지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어요. 최소한 그 친구의 강아지는 좋아하려고 수시로 생각했지요. 또 동생이 새끼 강아지를 몰래 집에 데려왔던 날 왠지 돌봐주고 싶은 마음에 잘해보려고 하기도 했었고요. 특히 요즘은 더 고민이에요. 제 아이가 저처럼 강아지를 무서워할까봐. 이거 정말 불편하거든요."

-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지구상의 다양한 동물입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동물을 싫어하는 도시인은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새, 특히 비둘기를 잘 피해 다녀야 합니다. 비둘기가 먹이를 먹느라 내 앞길을 가로막을 때가 가장 난감한데요. 동행인이 있으면 그 사람 뒤에 숨어서, 혼자일 때는 다른 길로 우회해서 지나갑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길로 갈 때도 있고, 옆 골목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강아지가 지나가면 귀엽다 싶지만 막상 그 애가 내 발을 킁킁대려고 하면 재빨리 피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어요. 그들더러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내 쪽에서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수밖에요."

- 그럼에도... 어쩌다 한 번은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때도 있지 않을까요?
: "대부분의 동물은 보기만 할 때는 귀여워요. 자기 배 위에 조개를 올려놓고 돌멩이로 깨서 먹는 수달은 얼마나 귀여운가요!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는 매의 모습에서는 경외감마저 듭니다. 코끼리 무리가 이동하다가 죽은 코끼리를 발견하자 묻어주는 모습을 TV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그런 장면에서는 목이 메이기도 해요. 생존을 위해 딱 필요한 만큼만 자연으로부터 가져가고 자연과 융합해 살아가는 동물이, 욕심 때문에 자연과 지구를 망치는 인간보다 훨씬 낫다고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설치류와 조류, 파충류는 단 한 번도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요."

- 특히 이럴 땐 정말 싫다, 이런 상황은 못참겠다 하는 경우는 언제인가요?
주 : "엘리베이터처럼 밀폐된 공간에 목줄을 하지 않은 개와 함께 있는 경우 정말 힘듭니다. 공간이 좁아 어디 피할 곳도 없는데 보호자가 안지도 않고 그대로 풀어 놓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무섭습니다."
고 : "저는 경우에 따라서는 심한 정도의 결벽증이 있는데요.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는 건 참기 힘들어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발을 닦이지도 않은 채 식탁이나 의자에 올려놓는 행위, 화가 납니다. 깨끗하지 않은 상태로는 반려동물이든 보호자든 제 식기와 음식을 건드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전 아마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겁니다." 
 : "활동적이고 뛰어다니는 강아지요. 언제 가까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특히 공원 같은 곳에서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면 미칠 것 같아요. 심장이 막 뛰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제일 어려운 건 저는 숨이 넘어가는데 "에이, 괜찮아요" 하면서 무심하거나 심지어 만져보라고 할 때죠. 강아지에게도, 그 보호자에게도 미안한 일이지만 나도 좀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는 사랑과 함께 책임도 동반"

- 자제분이나 어린 조카들에게 자신의 공포의 대상에 대해서 교육하실 일이 생기면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 "어릴 때 시골에서 산 경험이 있어요. 우연히 남자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아서 기다란 꼬챙이에 끼워 나열해 놓은 장면을 목격했어요. 그건 그야 말로 학살이었습니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라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해요. 내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혹시 싫어하는 대상이라도 그것의 생명을 거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죠.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주어진 생명을 온전히 마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회가 있다면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요."

- 좋아서 죽고 못사는 수많은 동물애호가들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방법이 있으신가요?
 : 우리 모두는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좋아할 수 없고, 좋아하고 싶지도 않지만 다른 사람은 좋아할 수 있죠.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굳이 이해하려고 애쓸 이유조차 없다고 생각해요. 마음껏 사랑하세요.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할 필요 없습니다. 눈치 보지도 마세요. 내가 특정 동물을 싫어할 자유가 있듯 동물애호가들은 동물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갈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 혹시 과거에 비해 마음이 조금은 유해졌다 싶으시다면 어떤 연유일까요? 아님 그 반대(점점 더 싫어!)일까요?
 :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는 사랑과 함께 책임도 동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애정을 갖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주변 사람의 취향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그 점은 점점 싫어지네요."
고 : "제 경우, 싫은 동물은 점점 더 싫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박물관에서 박제된 악어 가죽을 만지기도 했어요. 학교 뒷산에서 도마뱀을 발견하면 신기하고 즐겁기도 했죠. 그때는 비둘기를 질색하지도 않았어요. 생각해보면 흙과 멀어진 뒤로 싫은 동물에 대한 감정이 나날이 악화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깨끗하고 쾌적한 것, 세련된 것이 좋은 한편, 흙 속에 섞여 있을 병균, 오물들이 싫고 염려됩니다. 내 안에서 커져가는 결벽증이 흙(자연)과 친한 동물들을 밀어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가을의 동물 공포개도 개를 무서워한다. 서로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다 ⓒ 박혜림


- 마지막으로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점 허심탄회하게 해주세요.
 :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저처럼 무서워한다고 해서 동물을 혐오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야 할 기본적인 애정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지 않는다=싫어한다'는 너무 이분법적인 판단이잖아요. 좋아할 권리를 존중 받기를 원한다면 무서워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 받았으면 합니다."
 : "흠.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이 특별한 건가요? 싫은 사람이 피하고, 무서운 사람이 조심하면 될 일입니다. 동물이 좋아서 함께 사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특별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당신들에게 소중한 존재잖아요. 당당하게 사세요."
 : "동물을 자식처럼 여기는 분들께 미안한 심정이지만 공포는 그저 정말 공포, 논리로도 이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어요. 엄마가 아기를 돌볼 때처럼 주변에 방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돌아봐주세요. 동물 출입 금지 구역도 지켜주시고 목줄 꼭 부탁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에겐 무엇이 이 정도의 공포일까? 물. 생명에겐 없어선 안 될 정말이지 소중한 물이었다. 난 여름휴가를 가지 않는다.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 이후 세숫물도 두려울 때가 있다. 누군가 장난으로 물에 빠트리기 장난 같은 것을 하면 나는 그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리라, 공포는.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