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은 모르는 백화점 속 '스태프 온리' 들어가봤더니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③] 오래 일하고, 조금 쉬고, 많이 아픈 백화점 노동자들
편리한 시설과 다양한 브랜드, 친절한 서비스까지. 백화점은 쇼핑하기 참 좋은 곳이다. 그렇다면,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에게 백화점은 어떤 일터일까. 고객이 느끼는 것만큼 편리하고 쾌적한 공간일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은 지난해 열 명의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를 인터뷰하여 그녀들이 어떤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2014년, 시민들과 함께 '우리가 간다! 바꾼다! 우다다 액션단'이란 이름으로 '일터'로서의 백화점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다다 액션단은 직접 백화점을 방문해 노동환경을 점검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백화점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모았다. 인터뷰와 우다다 액션단 활동을 통해 알게 된 화려한 백화점의 이면을 전하려 한다. - 기자 말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의 1주간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하루에 8시간이 한국의 법에서 정한 적정 노동시간이지만, 우리가 노동하고 있는 현실은 법조문과 다르다. 칼퇴근 한 번 하려면 눈치 봐가며 긴장해야 하고, 열심히 일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자발적으로' 야근해야 한다.
길게 일하고 짧게 쉬는 백화점 노동자
백화점 노동자도 참 길게 일한다. 백화점의 '공식적인' 영업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다. 순수 근무시간만 9시간 30분이다. 그러나 백화점 노동자는 영업 시작 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해서 매장 청소, 조회, 판매 준비를 하고 매장 정리를 하느라 마감 시간보다 더 늦게 퇴근한다.
2012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31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동시간 및 점심시간 활용 실태'에 따르면,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는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평균 49.9시간을 일하고 있다. 주5일로 계산하면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10시간 가량 일을 하는 셈이다.
"근무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10시까지 일해요. 오후에 출근하는 날은 낮 12시 40분부터 오후 10시까지고요. 한 달에 보름은 12시간 넘게 일을 하죠."(E씨, 의류매장, 19년 근무)
"아침엔 9시까지 출근을 하고 퇴근하는 시간은 오후 8시 30분 정도예요. 거의 12시간을 일하죠. 행사를 크게 하면 다음날 행사 준비를 미리 해둬야 수월하고 출근도 한 시간 일찍 하는 경우가 생겨요. 집중기간인 1월, 5월, 9월에는 집에서 3~4시간만 겨우 자고 출근해요."(D씨, 화장품매장, 1년 6개월 근무)
근무시간이 긴 것도 문제지만, 틈틈이 쉬기는 하는 걸까? 백화점 노동자는 남들처럼 주말마다 쉬는 걸 바라기 어렵다. 손님이 많아 바쁜 주말은 꼼짝없이 일해야 하니 평일에 쉬어야 하고, 세일기간에는 10일 연속으로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밤 늦게 퇴근하고 주말엔 쉬지 못하니 가족, 친구들과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다. 쉬는 날엔 여가를 즐기기는커녕 지친 몸을 회복하느라 쓰러져 자기 바쁘다.
"휴무도 일정치 않아요. 10일 연속으로 근무하고 갑자기 3일 몰아서 쉬고 그래요. 하루에 12시간 일을 하는데 10일 내내 일하고 나서 쉬면 그냥 자기만 하는 거죠. 체력으로 버티는 것도 신기해요."(D씨, 화장품매장, 1년 6개월 근무)
백화점 노동자는 일과 중에도 충분히 마음 놓고 쉴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다. 근로시간 중간에 휴식시간이 주어지도록 근로기준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직장인은 보통 1시간의 점심시간을 가진다. 점심은 뭘 먹을까, 잠깐 산책이라도 할까 고민하며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이렇듯 오후에 다시 집중해 일하기 위해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점심시간이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백화점 노동자는 점심시간에 마음 편히 밥 한 끼 챙겨먹기도 쉽지 않다. 각 매장은 최소 인원으로 돌아간다. 이 때문에 점심시간 한 시간을 내가 다 사용해버리면 매장에 남아있는 동료는 그동안 혼자 남아 고객 응대해야 한다. 더구나 점심시간은 고객이 많이 몰리는 때다. 그래서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마신다"고 표현한다.
2012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31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시간 및 점심시간 활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백화점 노동자가 하루에 사용하는 식사시간은 평균 37.7분이었다. 25분 미만으로 사용하는 비율은 19.8%에 달했다. 그나마 있는 점심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할 정도이니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아픈 다리를 잠시라도 쉬게 할 짬도 안 난다.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 간식시간 40분이 있는데 바쁘면 못 쉬죠. 밥만 먹고 바로 올라와야 해요. 월초에 행사를 몰아서 하니까 너무 바빠서 그때는 점심이고 간식이고 없고 내내 일하는 경우가 한 달에 한 번은 있어요. 아예 간식시간이 없는 매장도 있거든요. 그런 데는 점심시간도 40분 밖에 되지 않아 빨리 먹고 와야 하죠."(D씨, 화장품매장, 1년 6개월 근무)
고객은 모르는 노동자의 공간 '스태프 온리'의 실태
고객이 모르는 노동자의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져 있을까? '스태프 온리(staff only·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두꺼운 문 여러 개를 힘껏 밀고 들어가면 노동자에게 활짝 웃으라고, 허리 숙여 인사하라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라고 요구하는 서비스 라인을 마주치게 된다.
두꺼운 문 너머는 각종 조명으로 반짝이는 매장과 달리 침침하고 어둡다.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던 매장과 달리 냉난방,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피부에 바로 와 닿는다. 그렇게 들어간 직원용 공간은 휴게실도 화장실도 모두 고객용 공간과 다르게 허름했다. 좁고 몇 칸 없는 허름한 화장실엔 재고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직원용 공간은 대체로 구석에 위치해 있고 통로를 여러 번 거쳐서 들어가야 하니 매장에서 굉장히 멀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고객용 화장실은 이용하지 않는 게 규정이다. 매장을 비우더라도 멀리 있는 직원용 화장실로 가야하니 계속 참게 된다. 고객용 화장실을 잠깐 이용하는 게 그리 무리한 요구일까? 화장실 하나 마음대로 못가서 눈물이 날 때까지 참게 만드는 일터에서 백화점 노동자는 스스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을까.
온종일 서서 일하는 백화점 노동자에게 잠시라도 다리 쭉 뻗고 쉴 공간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우다다 액션단이 눈으로 확인한 직원 휴게실은 열악했다. 한 층의 노동자가 모두 이용하는 휴게실은 매장 하나보다도 작은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컨테이너 박스를 가져다 놓고 휴게실로 만들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휴게실 안도 쾌적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장판만 깔려 있거나 낡은 소파, 정수기 정도만 가져다놓은 곳도 있었다. 인터뷰한 백화점 노동자는 휴게실 냉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고 했다.
노동자 수에 비해 휴게실이 좁으니 자리경쟁이 치열해 마음 놓고 쉬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짧은 쉬는 시간에 앉을 곳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다. 우다다 액션단이 백화점에 방문했을 때도 비상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쉬는 노동자를 여러 번 마주칠 수 있었다.
"휴게실이 따로 있는데 백화점 규모나 직원 수보다 턱없이 부족하죠. 자리 찾다가 시간 다 보내요. 쉴 공간이 없어서 계단에서 보내는 분들도 많죠. 직원들이 쉴 휴게실이 따로 없어가지고 건의를 계속 하니까 컨테이너 박스로 하나 만들어 주긴 하더라고요. 그런 휴게실조차 없는 데가 많아요."(E씨, 의류매장, 19년 근무)
우다다 액션단이 고객이 아닌 노동자의 눈으로 백화점의 노동환경을 직접 점검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백화점은 고객에게만 깔끔하고 편리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물건을 사기 위해 방문했던 백화점과 노동환경을 점검하기 위해 방문한 백화점은 확연히 달랐다.
백화점은 종합병원, 안 아픈 노동자가 없다
길게 일하고, 내내 서서 일하고, 잘 쉬지 못하니 안 아플 리 없다. 하루 종일 서 있으니 백화점에서 일을 하다보면 하지정맥류는 기본으로 생긴다. 무거운 박스를 계속 나르니 어깨, 허리, 무릎도 성할 날이 없다. 계속 서 있다 보면 자궁이 아래로 처져서 유산하는 경우도 많다.
"걷고 있으면 괜찮은데 10분이라도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무릎이 찌릿찌릿해요. 비오는 날에도 아프고요. 발 사이즈도 230이었는데 지금 235로 늘어났어요. 2년 이상 일하면 하지정맥류는 당연히 걸리는 것 같아요. 2년 이상 근무한 선배들 중에 하지정맥류 없는 분이 없어요. 산재로 보상해주는 건 거의 없고요."(F씨, 잡화매장, 1년 4개월 근무)
"계속 서 있어야 하니까 임신도 잘 안 되고 유산도 많이 돼요." (J씨, 의류매장, 9년 근무)
"박스 들고 나르니까 어깨랑 허리가 진짜 아파요. 하루 종일 서 있는 거니까 다리는 당연히 아프고 거의 매일 몸이 성할 날이 없어요. 서 있는 것 자체가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자세잖아요. 구두를 신으니까 더 아프죠. 그리고 응대할 때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여야 돼요. 안 숙이면 이것도 걸려요."(D씨, 화장품매장, 1년 6개월 근무)
우다다 액션단이 백화점에 방문했을 때도 매장 내에서 앉아서 쉬는 노동자는 단 두 명밖에 없었다. 백화점 노동환경 모니터링 활동에 참여했던 우다다 액션단원은 직접 노동환경을 점검해보니 자신에게 백화점은 "다리 아픈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백화점 노동자는 고객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항상 서있어야 한다. 항상 서서 웃으며 고객을 맞이하는 것을 친절한 서비스라고 여기기 때문에 노동자의 몸이 병들어간다. 그렇다면 고객인 우리가 먼저 앉아서 일해도 된다고, 노동자가 골병 들어가며 제공하는 친절은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어떨까.
"매장에 고객용 소파가 있지만 절대 앉을 수도 없고 벽에 기댈 수도 없어요. 손님이 없어도 꼿꼿하게 서 있어야 해요. 고객이 직원이 앉아 있는 걸 보기 안 좋다고 하면 매장에 직원용 의자를 비치할 수 없죠. 고객이 백화점 직원들 힘드니까 앉게 해달라고 하면 괜찮은데 일방적으로는 불가능하죠."(G씨, 잡화매장, 아르바이트 2년 근무)
백화점 노동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백화점 노동자가 앓고 있는 직업병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화점 노동자는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창고에 자주 들어가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많이 앓는다.
의류매장에 있는 노동자의 경우, 호흡기 질환은 더 심하다. 그러나 매장에선 물 한 잔도 마실 수 없게 되어 있다.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하니 방광염에 걸리는 노동자도 많다.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하게 먹고, 항상 급하게 먹다보니 위장 질환 비율도 높다. 하루 종일 환한 조명 밑에서 일하다보니 안과 질환도 많이 걸린다.
"저는 비염이 심해지고 기관지가 많이 약해졌어요. 되게 건조해요. 겨울 같은 경우에는 털이 붙은 옷이 많기 때문에 먼지가 많이 쌓여서 대부분 감기를 달고 살아요."(J씨, 의류매장, 9년 근무)
"자꾸 참으니까 방광이 안 좋아졌어요. 중간에 화장실 다녀오면 안 좋아하잖아요. 바쁠 땐 손님이 계속 들이닥치는데, 응대를 하다가 화장실에 갈 수가 없죠. 이 고객 응대하고 있는데 옆에 다른 고객이 서 있으면 빨리 또 해야 하니까. 참다 참다 정말 눈물이 날 때까지 참는 경우는 가서 앉으면 안 나와요. 너무 참으니까.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G씨, 잡화매장, 아르바이트 2년 근무)
고객을 응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도 심각하다. 일하다가 아픈 건데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사실 가장 큰 문제다. 쉴 수 없으니 병원 한 번 가기도 어렵고 아픈 몸은 낫지 않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술과 담배다.
"요즘은 우울증도 많아요. 나는 잘 한다고 하는데,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고 근무를 계속 해야 되나 우울감이 오는 거예요. 동료들 보면 이전에 비해 정신적 질병이나 압박감이 더 많아진 거 같아요."(B씨, 화장품매장 6년 근무)
"스트레스 받을 때는 화장실에서 울기도 하고 동료들이랑 술 한 잔도 하는데 이렇게 푸는 게 일시적이잖아요. 오늘 술 먹었다고 잊는 게 아니거든요. 계속 쌓여만 가고 점점 더 힘들어지기만 하는 거예요. 술, 담배로만 풀고 싶지는 않아요."(G씨, 잡화매장 아르바이트 2년 근무)
서 있는 게 힘들 거라고, 고객응대가 피곤할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기저기 아픈 몸을 이끌고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고, 짬이 나 잠시 쉴라치면 앉을 자리는 찾아 헤매야 하는 백화점 노동자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일하는 곳이고 시설도 좋은데 정작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건 없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백화점 노동자는 너무 오래 일하고, 조금 쉬고, 많이 아프다. 백화점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는 적정 노동시간과 휴게시간만큼은 제대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
* 한국여성민우회가 진행하는 서비스·판매직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 만들기 시즌1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는 아름다운 재단의 2014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시민들과 함께 '우리가 간다! 바꾼다! 우다다 액션단'이란 이름으로 '일터'로서의 백화점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다다 액션단은 직접 백화점을 방문해 노동환경을 점검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백화점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모았다. 인터뷰와 우다다 액션단 활동을 통해 알게 된 화려한 백화점의 이면을 전하려 한다. - 기자 말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의 1주간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하루에 8시간이 한국의 법에서 정한 적정 노동시간이지만, 우리가 노동하고 있는 현실은 법조문과 다르다. 칼퇴근 한 번 하려면 눈치 봐가며 긴장해야 하고, 열심히 일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자발적으로' 야근해야 한다.
길게 일하고 짧게 쉬는 백화점 노동자
▲ 백화점 영업시간백화점 영업시간은 보통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9시간 30분이다. 백화점 노동자는 영업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 한국여성민우회
백화점 노동자도 참 길게 일한다. 백화점의 '공식적인' 영업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다. 순수 근무시간만 9시간 30분이다. 그러나 백화점 노동자는 영업 시작 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해서 매장 청소, 조회, 판매 준비를 하고 매장 정리를 하느라 마감 시간보다 더 늦게 퇴근한다.
2012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31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동시간 및 점심시간 활용 실태'에 따르면,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는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평균 49.9시간을 일하고 있다. 주5일로 계산하면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10시간 가량 일을 하는 셈이다.
"근무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10시까지 일해요. 오후에 출근하는 날은 낮 12시 40분부터 오후 10시까지고요. 한 달에 보름은 12시간 넘게 일을 하죠."(E씨, 의류매장, 19년 근무)
"아침엔 9시까지 출근을 하고 퇴근하는 시간은 오후 8시 30분 정도예요. 거의 12시간을 일하죠. 행사를 크게 하면 다음날 행사 준비를 미리 해둬야 수월하고 출근도 한 시간 일찍 하는 경우가 생겨요. 집중기간인 1월, 5월, 9월에는 집에서 3~4시간만 겨우 자고 출근해요."(D씨, 화장품매장, 1년 6개월 근무)
근무시간이 긴 것도 문제지만, 틈틈이 쉬기는 하는 걸까? 백화점 노동자는 남들처럼 주말마다 쉬는 걸 바라기 어렵다. 손님이 많아 바쁜 주말은 꼼짝없이 일해야 하니 평일에 쉬어야 하고, 세일기간에는 10일 연속으로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밤 늦게 퇴근하고 주말엔 쉬지 못하니 가족, 친구들과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다. 쉬는 날엔 여가를 즐기기는커녕 지친 몸을 회복하느라 쓰러져 자기 바쁘다.
"휴무도 일정치 않아요. 10일 연속으로 근무하고 갑자기 3일 몰아서 쉬고 그래요. 하루에 12시간 일을 하는데 10일 내내 일하고 나서 쉬면 그냥 자기만 하는 거죠. 체력으로 버티는 것도 신기해요."(D씨, 화장품매장, 1년 6개월 근무)
백화점 노동자는 일과 중에도 충분히 마음 놓고 쉴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다. 근로시간 중간에 휴식시간이 주어지도록 근로기준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직장인은 보통 1시간의 점심시간을 가진다. 점심은 뭘 먹을까, 잠깐 산책이라도 할까 고민하며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이렇듯 오후에 다시 집중해 일하기 위해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점심시간이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백화점 노동자는 점심시간에 마음 편히 밥 한 끼 챙겨먹기도 쉽지 않다. 각 매장은 최소 인원으로 돌아간다. 이 때문에 점심시간 한 시간을 내가 다 사용해버리면 매장에 남아있는 동료는 그동안 혼자 남아 고객 응대해야 한다. 더구나 점심시간은 고객이 많이 몰리는 때다. 그래서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마신다"고 표현한다.
2012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31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시간 및 점심시간 활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백화점 노동자가 하루에 사용하는 식사시간은 평균 37.7분이었다. 25분 미만으로 사용하는 비율은 19.8%에 달했다. 그나마 있는 점심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할 정도이니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아픈 다리를 잠시라도 쉬게 할 짬도 안 난다.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 간식시간 40분이 있는데 바쁘면 못 쉬죠. 밥만 먹고 바로 올라와야 해요. 월초에 행사를 몰아서 하니까 너무 바빠서 그때는 점심이고 간식이고 없고 내내 일하는 경우가 한 달에 한 번은 있어요. 아예 간식시간이 없는 매장도 있거든요. 그런 데는 점심시간도 40분 밖에 되지 않아 빨리 먹고 와야 하죠."(D씨, 화장품매장, 1년 6개월 근무)
고객은 모르는 노동자의 공간 '스태프 온리'의 실태
고객이 모르는 노동자의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져 있을까? '스태프 온리(staff only·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두꺼운 문 여러 개를 힘껏 밀고 들어가면 노동자에게 활짝 웃으라고, 허리 숙여 인사하라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라고 요구하는 서비스 라인을 마주치게 된다.
두꺼운 문 너머는 각종 조명으로 반짝이는 매장과 달리 침침하고 어둡다.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던 매장과 달리 냉난방,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피부에 바로 와 닿는다. 그렇게 들어간 직원용 공간은 휴게실도 화장실도 모두 고객용 공간과 다르게 허름했다. 좁고 몇 칸 없는 허름한 화장실엔 재고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 고객용 화장실(왼쪽)과 직원용 화장실(오른쪽)빛나는 대리석으로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고객용 화장실과 달리 직원용 화장실은 칸 수도 부족하고 박스가 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 한국여성민우회
직원용 공간은 대체로 구석에 위치해 있고 통로를 여러 번 거쳐서 들어가야 하니 매장에서 굉장히 멀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고객용 화장실은 이용하지 않는 게 규정이다. 매장을 비우더라도 멀리 있는 직원용 화장실로 가야하니 계속 참게 된다. 고객용 화장실을 잠깐 이용하는 게 그리 무리한 요구일까? 화장실 하나 마음대로 못가서 눈물이 날 때까지 참게 만드는 일터에서 백화점 노동자는 스스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을까.
온종일 서서 일하는 백화점 노동자에게 잠시라도 다리 쭉 뻗고 쉴 공간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우다다 액션단이 눈으로 확인한 직원 휴게실은 열악했다. 한 층의 노동자가 모두 이용하는 휴게실은 매장 하나보다도 작은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컨테이너 박스를 가져다 놓고 휴게실로 만들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휴게실 안도 쾌적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장판만 깔려 있거나 낡은 소파, 정수기 정도만 가져다놓은 곳도 있었다. 인터뷰한 백화점 노동자는 휴게실 냉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고 했다.
노동자 수에 비해 휴게실이 좁으니 자리경쟁이 치열해 마음 놓고 쉬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짧은 쉬는 시간에 앉을 곳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다. 우다다 액션단이 백화점에 방문했을 때도 비상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쉬는 노동자를 여러 번 마주칠 수 있었다.
"휴게실이 따로 있는데 백화점 규모나 직원 수보다 턱없이 부족하죠. 자리 찾다가 시간 다 보내요. 쉴 공간이 없어서 계단에서 보내는 분들도 많죠. 직원들이 쉴 휴게실이 따로 없어가지고 건의를 계속 하니까 컨테이너 박스로 하나 만들어 주긴 하더라고요. 그런 휴게실조차 없는 데가 많아요."(E씨, 의류매장, 19년 근무)
우다다 액션단이 고객이 아닌 노동자의 눈으로 백화점의 노동환경을 직접 점검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백화점은 고객에게만 깔끔하고 편리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물건을 사기 위해 방문했던 백화점과 노동환경을 점검하기 위해 방문한 백화점은 확연히 달랐다.
▲ 고객 휴게공간(왼쪽)과 직원 휴게공간(오른쪽)푹신한 의자, 정수기, TV가 있는 고객 휴게공간에 비해 노동자를 위한 휴게공간은 부족하고 열악하다. 우다다 액션단은 백화점 방문시 비상계단에 비치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쉬는 노동자를 볼 수 있었다. ⓒ 한국여성민우회
백화점은 종합병원, 안 아픈 노동자가 없다
길게 일하고, 내내 서서 일하고, 잘 쉬지 못하니 안 아플 리 없다. 하루 종일 서 있으니 백화점에서 일을 하다보면 하지정맥류는 기본으로 생긴다. 무거운 박스를 계속 나르니 어깨, 허리, 무릎도 성할 날이 없다. 계속 서 있다 보면 자궁이 아래로 처져서 유산하는 경우도 많다.
"걷고 있으면 괜찮은데 10분이라도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무릎이 찌릿찌릿해요. 비오는 날에도 아프고요. 발 사이즈도 230이었는데 지금 235로 늘어났어요. 2년 이상 일하면 하지정맥류는 당연히 걸리는 것 같아요. 2년 이상 근무한 선배들 중에 하지정맥류 없는 분이 없어요. 산재로 보상해주는 건 거의 없고요."(F씨, 잡화매장, 1년 4개월 근무)
"계속 서 있어야 하니까 임신도 잘 안 되고 유산도 많이 돼요." (J씨, 의류매장, 9년 근무)
"박스 들고 나르니까 어깨랑 허리가 진짜 아파요. 하루 종일 서 있는 거니까 다리는 당연히 아프고 거의 매일 몸이 성할 날이 없어요. 서 있는 것 자체가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자세잖아요. 구두를 신으니까 더 아프죠. 그리고 응대할 때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여야 돼요. 안 숙이면 이것도 걸려요."(D씨, 화장품매장, 1년 6개월 근무)
우다다 액션단이 백화점에 방문했을 때도 매장 내에서 앉아서 쉬는 노동자는 단 두 명밖에 없었다. 백화점 노동환경 모니터링 활동에 참여했던 우다다 액션단원은 직접 노동환경을 점검해보니 자신에게 백화점은 "다리 아픈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 서울지역 유통 여성 판매직 노동자 업무상 질병 유경험(단위:%)출처 : 2012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3,1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시간 및 점심시간 활용 실태’ 자료 ⓒ 김종진
백화점 노동자는 고객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항상 서있어야 한다. 항상 서서 웃으며 고객을 맞이하는 것을 친절한 서비스라고 여기기 때문에 노동자의 몸이 병들어간다. 그렇다면 고객인 우리가 먼저 앉아서 일해도 된다고, 노동자가 골병 들어가며 제공하는 친절은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어떨까.
"매장에 고객용 소파가 있지만 절대 앉을 수도 없고 벽에 기댈 수도 없어요. 손님이 없어도 꼿꼿하게 서 있어야 해요. 고객이 직원이 앉아 있는 걸 보기 안 좋다고 하면 매장에 직원용 의자를 비치할 수 없죠. 고객이 백화점 직원들 힘드니까 앉게 해달라고 하면 괜찮은데 일방적으로는 불가능하죠."(G씨, 잡화매장, 아르바이트 2년 근무)
백화점 노동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백화점 노동자가 앓고 있는 직업병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화점 노동자는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창고에 자주 들어가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많이 앓는다.
의류매장에 있는 노동자의 경우, 호흡기 질환은 더 심하다. 그러나 매장에선 물 한 잔도 마실 수 없게 되어 있다.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하니 방광염에 걸리는 노동자도 많다.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하게 먹고, 항상 급하게 먹다보니 위장 질환 비율도 높다. 하루 종일 환한 조명 밑에서 일하다보니 안과 질환도 많이 걸린다.
"저는 비염이 심해지고 기관지가 많이 약해졌어요. 되게 건조해요. 겨울 같은 경우에는 털이 붙은 옷이 많기 때문에 먼지가 많이 쌓여서 대부분 감기를 달고 살아요."(J씨, 의류매장, 9년 근무)
"자꾸 참으니까 방광이 안 좋아졌어요. 중간에 화장실 다녀오면 안 좋아하잖아요. 바쁠 땐 손님이 계속 들이닥치는데, 응대를 하다가 화장실에 갈 수가 없죠. 이 고객 응대하고 있는데 옆에 다른 고객이 서 있으면 빨리 또 해야 하니까. 참다 참다 정말 눈물이 날 때까지 참는 경우는 가서 앉으면 안 나와요. 너무 참으니까.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G씨, 잡화매장, 아르바이트 2년 근무)
고객을 응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도 심각하다. 일하다가 아픈 건데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사실 가장 큰 문제다. 쉴 수 없으니 병원 한 번 가기도 어렵고 아픈 몸은 낫지 않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술과 담배다.
"요즘은 우울증도 많아요. 나는 잘 한다고 하는데,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고 근무를 계속 해야 되나 우울감이 오는 거예요. 동료들 보면 이전에 비해 정신적 질병이나 압박감이 더 많아진 거 같아요."(B씨, 화장품매장 6년 근무)
"스트레스 받을 때는 화장실에서 울기도 하고 동료들이랑 술 한 잔도 하는데 이렇게 푸는 게 일시적이잖아요. 오늘 술 먹었다고 잊는 게 아니거든요. 계속 쌓여만 가고 점점 더 힘들어지기만 하는 거예요. 술, 담배로만 풀고 싶지는 않아요."(G씨, 잡화매장 아르바이트 2년 근무)
서 있는 게 힘들 거라고, 고객응대가 피곤할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기저기 아픈 몸을 이끌고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고, 짬이 나 잠시 쉴라치면 앉을 자리는 찾아 헤매야 하는 백화점 노동자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일하는 곳이고 시설도 좋은데 정작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건 없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백화점 노동자는 너무 오래 일하고, 조금 쉬고, 많이 아프다. 백화점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는 적정 노동시간과 휴게시간만큼은 제대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
* 한국여성민우회가 진행하는 서비스·판매직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 만들기 시즌1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는 아름다운 재단의 2014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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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