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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에도 열정 쏟는 문해교사들, 지자체 관심 불렀다

울산 남구 문해교육기관 '울산푸른학교'... "기부천사 도움 커"

등록|2014.10.08 16:16 수정|2014.10.08 16:16

▲ 지난 7일 '울산시티투어' 를 한 결혼이주여성들. 이들은 문해전문기관인 울산푸른학교 학생들로 시티투어는 문해교육의 한 과정이다 ⓒ 울산푸른학교


지난 7일 오전 9시. 울산시청 햇빛광장에는 '울산시티투어' 차량에 탑승하는 여러 명의 결혼이주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확인 결과, 이들은 시청 인근 울산 남구 신정3동에 있는 문해교육전문기관인 '울산푸른학교' 한국어센터에서 공부하는 주부 학생들이었다.

발길을 '울산푸른학교' 로 향했다. 이곳은 학교장 외 20여 명의 자원봉사자 교사들이 이들 이주여성을 포함한 지역 비문해자들을 대상으로 한글뿐 아니라 산수(수학), 한문, 기초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비롯해 부설 문화센터에서는 노래교실, 한국무용, 스포츠댄스 등 다양한 취미활동도 겸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점은, 문화활동이 울산푸른학교에 있는 너른 교실이 아니라 인근에 따로 마련된 문화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 하나하나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비문해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여전...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사업 확대 고무적

문화센터가 따로 떨어져 있는 데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이하형 울산푸른학교 교장(50)은 "울산에도 많은 문해교육 대상자들이 있지만 이들이 떳떳하게 학교를 드나드는 것이 여전히 불편한 실정"이라며 "사회적인 편견도 그렇고, 문해교육에 대한 홍보가 안돼 있는 실정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울산푸른학교 문화센터에는 문해교육 대상자들 외에 일반시민들도 섞여 취미활동을 하는데, 비문해자들이 학교에서 문화센터를 같이 운영하면 한글 배우는 것을 시민들에게 들킬까 조심스러워 해 다른 장소로 마련했다는 것이다.

울산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해 지난 9월 15일 오후 울산시청 본관 2층 시민홀에서 열린 '울산광역시 평생학습포럼'에서 전은경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교수는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 중 문해교육대상인구는 630만여 명으로 전체 16%, 울산은 11만여 명으로 12.4%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전체 성인 인구 중 10%가 훨씬 넘는 사람이 한글을 비롯해 계산 능력 등 문해교육을 받아야 할 처지 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못하다.

그나마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2006년부터 저학력 비문해 성인들이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도록, 제2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을 시행하면서 사업폭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 각 시도에는 거점 문해교육기관을 중심으로 문해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울산의 경우 울산시민학교(교장 김동영)를 거점 기관으로 해 남구지역을 담당하는 울산푸른학교 등 2곳이 문해교육 전문기관으로 인정받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5년 문해교육전문기관으로 개교한 울산푸른학교는 이하형 교장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교육을 담당하면서 현재 성인문해교실 1~3단계 반과 성인중학졸업반, 성인고등졸업반, 영어왕초보반, 결혼이주여성 한국어반(3단계)을 운영하고 있다.

▲ 문해교육전문기관인 '울산푸른학교' 에서 수업에 열중인 학생들 ⓒ 박석철


문해교육을 담당하는 이들 자원봉사자 교사들은 교통비 정도의 실비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지만 다행히 문해교육 자격증을 모두 이수한 상태다. 따라서 울산푸른학교는 내년부터 지자체 교육청 단위로 시행될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 지정기관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은 전국 최고의 공업도시로 성장하면서 부자도시로 불리며 외국 이주자들이 대거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울산 남구에는 석유화학공단 등 최대 공단이 자리잡고 있어 이주여성들의 증가폭이 빠르다. 울산 남구청 통계에 따르면 남구 관내의 결혼이주여성만도 약 1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정의 주부로, 학부모로 자리매김하면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자신이 먼저 한글과 지역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교육열이 일고 있다. 이들 이주여성들은 울산시민학교와 울산푸른학교 등 전문 기관 외에도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 곳곳에서 지금도 한글을 배우고 있다.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지역 초등학교의 다문화가정 학생 수는 941명으로 전체 학생 수(6만6330명)의 1.4%를 차지하는 것을 비롯해 중학생 190명, 고등학생 77명 등 모두 1212명의 다문화가정 학생이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전체 학생수는 줄어드는 반면 다문화가정 학생 수는 2012년 566명(0.7%)에서 2013년 714명(1.0%), 올해는 941명(1.4%)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이 시급히 한글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울산 남구 문해교육 전문기관 울산푸른학교는 어떻게 개교했나

▲ 울산 남구 신정3동에 있는 문해교육전문기관 '울산푸른학교'에 학생들의 시화작품이 걸려 있다 ⓒ 박석철


이처럼 문해교육의 필요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막상 사회적 편견과 교육기관 부족 등으로 인해 비문해자들의 교육 욕구를 충족시킬 장치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울산 남구의 경우 최대 공단이 자리잡은 데다 인구가 35만여 명으로 울산 기초지자체 중 최대 규모라 그만큼 문해교육 대상자가 많다. 하지만 그동안 문해교육기관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전국야학연합회 등에 따르면 울산푸른학교는 이같은 남구의 현실에서 문해교육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울산푸른학교를 설립한 이하형 교장은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지역언론 기자로 활동하던 2002년, '성인인구의 10%가량이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완전 비문해자'라는 보도자료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교장은 "우리나라에는 비문해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국가적 정책이나 제대로 된 교육시설이 없다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반드시 이 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문사를 그만둔 그는 그 후 문해교육 거점기관인 울산시민학교에서 3년간 교통비 정도만 받는 자원봉사 교사로 활동하다 2005년 울산 남구에 울산푸른학교를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때마침 그 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전국 문해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소외계층평생교육프로그램' 지원사업을 시작했고, 울산푸른학교도 응모했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이 교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교육청과 지자체간 문해교육에 대한 상호 업무연계가 미흡했다"며 "지자체와 교육청 간 공문이 왔다갔다 하는 등 업무에 혼선이 많았다"고 상기했다. 하지만 울산푸른학교는 다음해인 2007년 다시 공모해 이 프로그램 진행 기관으로 선정됐고, 이후 8년째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프로그램에 선정됐다.

이같은 문해교육기관의 꾸준한 교육열은 문해교육에 생소하던 지자체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로 작용하기도 했다.

울산푸른학교는 매년 70~80여 명의 성인학습자가 수료하고 있고, 올해는 25명의 이주여성을 비롯해 90여 명이 문해교육을 받고 있다. 올해는 또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일반운영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울산푸른학교는 인근 별관에 50평 규모의 문화센터를 운영하면서 비문해자들이 한글 외에도 다양한 문화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남구지역 문해교육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올해 중으로 남구 야음동에 45평 규모의 또 다른 학습공간을 열 계획이다.

자원봉사 교사들은 비록 박봉이지만 문해교육에 대한 사명감으로 열정을 쏟고 있다. 학교건물 임대료와 봉사 교사들의 수당 등 매월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면서 어려운 점이 많지만 다행히 지역의 보이지 않는 기부천사들이 월 5천 원의 기부를 하면서 숨통이 다소 터였다.

울산푸른학교 조남순(72)씨는 '2014 대한민국 문해의달 선포식과 성인 문해 시화전'에서 우수상인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상을, 나상연(57)씨는 울산시화전에서는 울산시의회의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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