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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킷 감청' 허가 부인 않는 법원... "집행 방법은 모른다"

[법원 국정감사] 이춘석 "사생활 침해 명백... 법원이 백지수표 내준 것"

등록|2014.10.08 17:59 수정|2014.10.08 18:24

▲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가 7일 공개한 국정원의 카카오톡 통신제한조치(감청) 요청 문건. 지난해 8월 수사 대상자의 한 달간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감청해 보안 메일로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 김인성


텔레그램(Telegram) 열풍으로 상징되는 소위 '사이버 검열' 논란이 사회문제화 된 가운데, 법원이 패킷 감청 허가 여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법원은 "(통신제한조치) 영장 신청이 들어오면 발부하지만, 실제로 그 영장을 가지고 어떠한 방법으로 집행하는지는 알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구체적 방식을 인식하지 않는 법원의 영장에 의해, 검찰과 국정원 등 수사기관이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큰 패킷 감청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패킷 감청은 인터넷 통신망에서 전송을 위해 잘게 쪼개진 데이터 조각인 '패킷'을 이용해 감청하는 방식으로, 단말기가 아니라 통신망에 직접 접속해 이루어진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감청 대상자가 방문한 인터넷 사이트는 물론, 검색, 채팅, 전자우편, 인터넷 뱅킹 등 거의 모든 사이버 활동을 실시간으로 몰래 들여다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킷 감청은 영장에 제시된 감청 목적 이외의 다른 사항도 무차별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 해당 회선을 이용하는 다른 사람의 활동까지 노출된다는 점, 해킹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 등 부작용이 커서 법적·기술적으로 논란이 크다.

실제 김인성 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한 국가보안법 피의자 홍아무개씨에 대한 '통신제한조치 집행조서'에 의하면, 국정원이 감청한 방식이 패킷 방식이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문서는 위 이미지 참고). 문서에는 국정원이 "유선전화와 인터넷 회선은 전용회선을 구성하여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채록"했다고 되어 있다.(관련 기사 : "국정원, 카카오톡 대화 내용 한 달간 감청")

8일 서울 서초동 법원에서 열린 서울고등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법원의 패킷 감청 허가 여부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법원의 입장은 '알지 못한다'였다. 다음은 이 의원과 법원장들의 일문일답이다.

이춘석 "패킷 감청 허용은 백지수표"

▲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8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회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 권우성


- 서울중앙지법원장에게 묻겠다. 지금 사이버 망명이 대거 이뤄지고 있다. 나도 망명했다. 더 큰 문제는 사이버 감청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신제한조치 중 패킷 감청에 대해서 분류해 통계를 제출해달라고 했더니 그렇게 작성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통신제한조치를 통해 카톡 실시간 모니터링이 되고 있는가 없는가.
=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 "거기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

- 수원지방법원장에게 묻겠다. (문서를 들어보이며) 이게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가 올린 홍아무개씨에 대한 국정원의 통신제한조치 집행조서다. 여기를 보면 통신제한조치, 즉 감청을 한다. 대상자의 (카톡) 아이디가 다 나온다.

이것은 2012년 8월 16일 수원지방법원에 의해 발부된 통신제한조치 허가서에 의해 실시했고, 그 내용이 전부 나오는, 국정원 수사관이 통신제한조치를 받아서 집행했다는 조서다. 영장을 발부한 사실을 인정하는가.
= 성낙송 수원지방법원장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안이다."

- 지금 법원장들이 다 모르겠다고 하는데, 현재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카톡 측은 (대화내용 저장 일수를) 3일 내로 줄여서 대화내용 압수수색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상 실시간 압수수색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버 압수수색은 서버만 갖고 가서 내용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런데 통신사 설비, 인터넷 설비에다가 직접 설치해가지고 실시간으로 다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패킷 감청이다. 이거 실제로 법원에서 영장 발부 하고 있는가.
= 이 서울지법원장 "영장 신청이 들어오면 발부하지만, 실제로 그 영장을 가지고 어떠한 방법으로 집행하는지는 법원장으로서는 알고 있지 않다."

- 흔히 이야기하길, 통신사 장비에 직접 꽂는 것은 법원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걸 뒤집어보면 실제 청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실제 허가된 사례가 있다는 것 아닌가. 다시 묻는다. 이 패킷 감청 허용하고 있는가 아닌가.
= 이 서울지법원장 "(제시한 사례는) 우리 법원 사례가 아닌 것 같고, 실제 범죄 확인 내지 수사에 청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알고 있다."

- 패킷 감청 압수수색 영장은 따로 (통계를) 집계 하는가 안 하는가.
= 이 서울지법원장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카톡은 이메일이나 문자보다 훨씬 더 내밀한 대화가 오가기 때문에 이게 그대로 노출되면 훨씬 더 사생활 침해가 심하다. 감청이 허가되는 영장 발부 기준이 있는가.
= 이 서울지법원장 "특별히 따로 기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인 압수수색 영장 발부 요건에 따라."

- 통상적인 압수수색은 압수 대상과 범위를 특정해서 가져오지 않는가. 그래서 서버를 가져오는 거다. 그런데 패킷 감청은 회선에 직접 꽂아서 듣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모든 것을 다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압수수색 영장과 달리, 법원이 백지수표를 내주는 거다. 그 사람에 대해, 다 들여다봐라, 이거다. 사생활 침해가 명백하다. 그런데 지금 법원장이 답하길, 압수수색 영장 발부는 하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발부만 했다? 어떻게 이렇게 답변할 수 있는가.

곤혹스러운 법원 "우리는 알 수가 없다"

▲ 8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국회법사위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법원 관계자는 패킷 감청 논란에 대해 "통신제한조치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영장은 국가보안법 등 극히 일부에 대해 제한적으로 허가하고 있다"면서 "패킷 방식이냐 아니냐는 감청 방법의 영역이어서 신청서에 기재되어 있지도 않고 법원으로서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패킷 방식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은 법원도 알고 있고, 일부 연구도 진행한 바 있다"고 말했다.

통신제한조치란 우편물 검열과 전기통신 감청을 의미하는 것으로, 압수수색 영장과 달리 과거 내용뿐 아니라 미래 대화 내용까지 요청할 수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의 허가요건)에 의하면 형법과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등에 규정된 범죄와 관련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최대 2개월까지 통신제한조치를 허가할 수 있다.

법원 자료에 의하면, 통신제한조치는 2012년 125건 신청해 106건이 발부됐고(발부율 84.8%), 2013년 신청 160건-발부 150건(93.7%), 올해 6월까지 신청 93건-발부 88건(94.6%)으로 점점 신청과 허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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