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닐거라 믿었는데... 친구도 무서워 은둔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공장에서 평택지원까지 3보1배... "법원, 빨리 결정 내려야"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8일 오전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에서 평택법원까지 약 3km 3보1배를 하며 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조정훈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8일 오전 평택공장 정문에서부터 법원을 향해 3보1배를 하며 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한 가운데 가족들이 현수막을 들고 맨 앞장서 걷고 있다. ⓒ 조정훈
"며칠 전 이사를 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면서 쌍용자동차 조끼를 발견했어요. 그걸 본 아들이 '아빠 쌍용자동차 다시 다녀?'라고 묻길래 '지금은 다니지 않지만 앞으로 꼭 다시 다닐거야. 약속할게'라고 말하면서 울 뻔 했어요. 우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아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을 등지고 60여 명의 해고노동자들이 줄을 섰다. 해고노동자의 가족들이 맨앞에서 현수막을 들었다. 이들은 북소리를 신호로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세 걸음 걷고 절을 했다. 가을 햇살이 오전부터 따가웠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8일 오전 평택공장 정문에서부터 수원지법 평택지원까지 3km를 걸으며 3보1배를 했다. 벌써 엿새째다. 이들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은 간절했다.
이들은 지난 2월 7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열린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2009년 187명 정리해고는 회사가 경영상 긴박한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았고 해고회피 노력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고등법원은 '해고무효', 대법원 묵묵부답
하지만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는 이들에게 지급하라는 임금의 일부를 지급하지 않고 공탁을 걸었다. 153명의 해고노동자들은 결국 지난 5월 9일 평택지원에 '쌍용차 근로자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들이 쌍용차 소속 노동자임을 확인해주고 회사한테 부당해고 기간에 주지 않은 임금 일부를 지급하라고 명령하면 되지만, 5개월이 넘도록 아무런 판결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들은 빠른 판결을 촉구하며 판결이 날 때까지 매일 3보1배를 하기로 했다.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60여 명이 8일 오전 평택공장에서부터 법원까지 약 3km 3보1배를 하며 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요구했다. 공장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이 모은 두 손을 통해 전해진다. ⓒ 조정훈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3보1배를 하는 조현철 신부의 얼굴이 온통 땀방울로 범벅이 됐다. ⓒ 조정훈
이날 3보1배에는 전국에 흩어져있던 옛 동료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단 하루라도 참석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기분이라고 했다.
해고된 후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택배일을 하고 있다는 전정선(51)씨는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3보1배를 하러 왔다"며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라도 함께하지 않으면 동료들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해고노동자 고동민씨의 아내 이정아(41)씨는 "회사는 고등법원의 판결이 났는데도 묵묵부답이다"며 "우리가 이긴 싸움인데, 왜 법원이 판결을 미루고 눈치를 보는 것이냐"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평택에서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는 조재형씨도 3보1배에 함께 했다. 조씨는 "1988년 입사해 A/S 파트에서 9년 일했다"며 "정리해고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가정경제가 무너지고 가족이 흔들릴 때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절대 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해고자가 빨갱이냐?"
▲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법원까지 약 3km 3보1배를 마치고 한 노동자가 장갑을 벗어 아스팔트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이 장갑은 공장에서 기름때 묻혀가며 열심히 일하는데 쓰여져야 하지 않을까? ⓒ 조정훈
▲ 가을의 따가운 햇살에 3보1배를 마친 한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윗옷에 하얀 소금꽃이 피었다. ⓒ 조정훈
이들은 50여분 동안 3보1배를 한 뒤 10분 쉬었다. 물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에 긴 한숨이 섞여 나왔다. 타들어가는 담뱃재처럼 복직을 기다리는 마음도 함께 타들어가는 듯했다. 10분간의 휴식이 짧게 느껴졌다.
김정운 수석부지부장은 "우리가 3보1배를 한다고 해서 얼마나 알아줄지 모르지만 우리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다"며 "힘들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내리쬐는 햇빛을 희망삼아 걷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15년 일하고 총무팀 문서수발실에서 15년 일했어요. 우리 팀에 4명이 있었는데 3명이 나가고 나 혼자 남았었죠. 그래서 나는 절대 안 잘릴 거라고 믿었어요. 쌍용차 다닐때는 자부심도 있었는데 해고되니까 친구들 보기도 두려워 지금은 은둔생활을 하고 있어요."
이정훤(58)씨는 자신이 처음 입사할 때 받았던 신분증의 사원번호를 똑똑히 기억했다. 자랑스러워 가슴에 꼭 품었었다. 이제는 복직되더라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옛 동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절을 했다.
이정훤씨는 "아들이 토익 점수도 괜찮고 공부도 잘 했는데 취직이 되지 않았어요. 처음엔 이유를 잘 몰랐죠"라며 "아들이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아버지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라고 하니까 어느 회사도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엄청 울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해고 노동자가 빨갱이는 아니지 않느냐"고 절규했다.
▲ 8일 오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법원까지 3보1배를 끝낸 한 노동자가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고 앉아 있다. ⓒ 조정훈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3보1배에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있는 조현철 신부도 함께 했다. 조 신부는 이들과 3일째 3보1배를 하면서 법원의 빠른 판결을 요구하고 있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에 가득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노동자가 자긍심 갖고 일하게 해줘야"
조현철 신부는 "일할 권리가 정당하다고 법원에서 판결을 했으니 회사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면서도 "이 분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전기를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3보1배는 법원에서 100m 떨어진 곳에서 끝이 났다. 법원 100m 이내에서는 시위와 집회를 금지해야 하는 법 때문에 더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멀리 법원 건물을 바라보던 한 노동자가 "우리가 호소하고 싶어도 법원 앞까지 못 가게 하는 법이 무슨 법이냐? 이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은 법원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매일 3km를 3보1배 한다는 것이 힘들지만 우리는 절박함을 알리려는 것"이라며 "법원이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우리는 6번의 여름을 보내고 6번째 겨울을 앞두고 있다"며 "우리는 절박하지만 회사는 외면하고 있다. 우리가 6년 전 함께 흘렸던 눈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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