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왜 그렇게 해가 늦게 지는 걸까
고2 조카와 함께하는 2주간의 유럽여행 <3>
▲ 빅벤의 두 얼굴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는 영국의 날씨. 런던하면 우산을 들고 있는 영국 신사가 떠오르지만, 실제 영국신사들은 그냥 지나가는 비 일 뿐이라며 우산도 안쓰고 그냥 맞고 다녔다. ⓒ 우현미
2014. 08. 19 오전 8시 00분.
영국에서의 첫날.
한인숙소에서 잘 차려진 한식을 배불리 먹고 조카와 함께 길을 나선다. 첫 일정이라고 숙소 사장님은 친히 복스홀 역까지 우릴 데리고 나오셔서 큰 그림을 그려주신다. 영국 지하철의 특징, 동네의 특징, 숙소에서 랜드마크까지의 관광정보 등.
사장님은 그렇게 약 10분간 설명해 주시곤 잘 둘러보고 저녁에 들어오면 맛있는 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센스 있는 말씀과 함께 싱싱한 재료 구입을 위해 장을 보러 가신다.
이제 우리만의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둘러보고 싶은 곳은 너무 많고 조카에게 가능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이 이모의 저질체력이 머릿속에 무차별하게 떠다니는 계획들을 착착 정리시킨다.
일단 오늘은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템즈강을 따라 20~30분 걸어가면 볼 수 있는 국회의사당과 런던 아이,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버킹검 궁까지를 오늘의 일정으로 잡았다. 오늘 볼 이 명소들은 도보로 이동할 예정이기 때문에 체력을 잘 안배해 다녀야 한다. 사실, 국회의사당과 런던아이, 버킹검 궁은 외관만 볼 것이고 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상당한 체력을 요했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 빅벤앞에서 진혁이번 여행의 첫 일정인 빅벤 앞에서 조카는 기쁨의 미소를 마음껏 날리며 셀카를 찍고 있다. ⓒ 우현미
일단, 런던 엽서에 항상 찍혀 있는 국회의사당과 런던 아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그 다음에 노점상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구경하고 엽서도 몇 장 산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세인트 폴 사원과 함께 왕실의 대관식과 결혼식을 담당하는 영국의 얼굴이자 유럽 고딕양식을 대표하는 유명한 성당이다. 이 곳은 유명인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을 비롯하여 선교사 리빙스턴, 위스턴 처칠, 헨리 5세 등. 사람이라기보다 신화 속 인물 같이 느껴지는 위인들이 묻혀 있다.
우선 기다랗게 줄서 있는 사람들의 끝으로 가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왔다. 성인 입장료가 18파운드로 한화 약 3만2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난 이 금액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난 돈이 많지도 않고 조카 등에 업혀 온 철 없는 이모다. 하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역사를 머금고 있는 이런 공간에 들어가는 돈이 아깝단 생각은 그 동안의 여행 일정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처럼 국가의 보물을 너무 쉽고 싼 가격에 별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문화가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원래 유적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전시·박물관 디자인을 업으로 해서인지 전시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에 간다. 그런데 유물 구경은 하지 않고 단체로 와서 정신없이 뛰어 다니는 어린 아이들과 학생들을 보면 조금 심난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참 많았다.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길 바라지는 않는다(나도 자주 가야하므로 ^^;;). 하지만 국가적 보물은 보물답게 관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원 내부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큰 규모에 압도됐다. 그리고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예술적으로 표현한 섬세함에 놀라움을 나는 금치 못했다. 일단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는 오디오 가이드를 받으러 갔다. 약 10개 정도의 언어가 제공되는데 한국어가 포함된 것이 못내 뿌듯하고 어깨까지 슬쩍 올라가기까지 한다. 오디오 가이드는 구석구석 위치해 있는 번호를 입력하면 그 공간에 대한 안내가 나오는 형식이었다.
▲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조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원을 다 둘러보고 중정으로 나오니 이런 분위기 좋은 곳이 있다. 사원 내부는 촬영 금지라 사진이 없다. ⓒ 우현미
열십자 평면 구조로 되어 있는 사원엔 위인들의 무덤을 비롯해서 중간 중간 예배당과 헨델의 비문까지 정말 다양한 공간이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구석구석 살펴볼 때엔 그곳을 모두 이해할 순 없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내가 그곳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내가 좀 멋진(?)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우스울까?
조카 진혁이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관람을 한다. 구석구석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보는 중에 조카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릴적에 꿈꾸던 꿈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번 여행은 조카를 위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그런 조카를 통해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넓고 다양한 생각과 영역을 발견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사원을 나와 오늘 마지막 일정인, 유명세에 비해 너무 볼거리가 없었던 버킹검 궁까지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 일정을 접기엔 이른, 오후 5시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의 여행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이모(나)의 저질체력으로 더 이상은 걷기 힘들었다. 일단 그렇게 후퇴하고 저녁을 먹은 후 템즈강의 야경을 보러 가기로 조카와 합의를 하고 나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저녁을 먹고 내심 조카 진혁이가 피곤해서 나가지 말자고 하길 바랐지만, 이 녀석은 빨리 못나가서 안달이다. 조카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이쁜 생각은 템즈강에 흘려보낸 지 오래. 아... 너무 피곤하고 춥고.. 졸리다... 8월 중순인데 영국은 너무 춥다. 심지어 야경을 보러 나갈 때는 숙소 사모님께 패딩 점퍼를 빌려서 입고 나가기까지 했다. 그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야경을 보러 나왔는데... 9시가 다 되도록 해가 지질 않으니 정말 죽겠다.
▲ 템즈강의 야경이거 보려고 참 오래 기다렸다. 영국의 국회의사당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날씨에 따라 낮과 밤에 따라 또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 ⓒ 우현미
빨리 해가 져야 후딱 야경을 보고 들어가 쉴 텐데, 이건 무슨 백야도 아니고.. 하...
우리나라가 이렇게 해가 길었다면 더 열심히 일해서 지금의 영국보다도 선진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퇴근 시간만 더 늦어졌을라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빅벤이 9시를 알리는 종을 울린다. 그 때서야 어설프게 야경을 보는 느낌이다. 이미 체력 방전이 된 내가 툴툴 거리며 한마디 한다.
"에이~ 갑천(대전) 야경이나 여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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