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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찢어죽이겠다"는데... 법원, 남편 편들며 한 말이

[10만인클럽리포트 -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③]여성 피해 보지 못하는 법원

등록|2014.10.14 09:04 수정|2014.10.14 12:03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는 한국여성의전화(http://www.hotline.or.kr/)와 함께 진행하는 기획입니다. [편집자말]


"좀 더 참지 그랬어요?"  


23년간 남편에게 구타당한 여성에게 이 말은 어떻게 들렸을까. 수십 년 맞았으니, 앞으로 더 맞으라는 것일까? 수십 년 이어진 주먹질과 몽둥이질을 참다못해 남편을 살해한 이아무개 여인에게 판사가 공판 중 한 발언이다. 1994년 1월의 일이다.

20년 전 사건이니 현실과 너무 먼 이야기라고? 작년에 발생한 윤필정씨 사건을 논하기 전에 잠시 2000년도에 일어난 사건을 한 번 보자.

김아무개씨는 1987년 남편 강아무개씨와 결혼했다. 남편의 폭력은 1992년부터 시작됐다. 술을 마시면 남편은 김씨를 주먹과 발로 구타하고 칼을 들고 협박했다. 실제 칼로 김씨의 몸을 긋기도 했다. "찢어 죽인다. 갈아 먹어버린다" 등의 언어폭력은 수시로 있었다.

김씨는 몇 차례 친언니 집과, 친정 등으로 도망갔다. 남편은 친정으로도 찾아와 살림을 부수고 김씨를 때렸다. 김씨의 언니와 이웃 등이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가정사니 두 사람이 잘 얘기하라"며 돌아갔다.

이혼 요구에 폭력으로 답한 남편

▲ 자료사진. ⓒ sxc


김씨는 1998년, 1999년 각각 합의이혼을 신청하고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친정에서 나와 두 자녀와 함께 살림을 차렸다. 그 집으로 남편이 갑자기 찾아왔다. 공포에 휩싸인 김씨는 부엌에 있는 칼부터 침대 밑에 숨겼다.

남편은 이혼소송을 취소하라며 김씨를 때렸다. 김씨는 집 밖으로 도망가려다 머리채를 잡혀 방으로 끌려 갔다. 김씨 예상대로 남편은 부엌에서 칼부터 찾았다. 칼이 보이지 않자 남편은 가위를 들었다. 남편은 "이혼 소송을 취소하라"며 가위로 김씨 목을 쿡쿡 찔르고 종아리를 그었다.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남편은 김씨의 뺨을 때리고 강제로 옷을 벗겨 성관계를 강요했다. 김씨는 거부했다. 침대에 누운 남편은 가위로 위협하며 "죽고 싶냐, 빨리 올라와!"라고 소리쳤다. 남편이 가위로 김씨를 찌를 듯이 상체를 일으킬 때였다. 김씨가 먼저 침대 밑에 있던 칼로 남편을 찔렀다. 김씨는 알몸으로 부엌으로 도망쳤고, 잠시 뒤 경찰에 신고했다.

"사람을 죽였어요. 무서워요."

이 사건은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계에게 큰 무게감을 줬다. 남편의 폭력과 강간을 모면하려는 대결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검찰도 살인보다 죄가 가벼운 '상해치사'로 김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항소했다. 항소이유서의 한 부분은 이렇다.

"(남편은) 당시 피고인(김씨)으로 하여금 이혼소송을 취하케 하여 재결합할 의도로 피고인을 찾아온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피해자는 가정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중략) 또한 피해자(남편) 형제들의 진술 등에 따르면 피해자는 평소 유약하고 피고인을 마음 깊이 사랑한 평범한 가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위를 들고 아내를 "찢어 죽여, 갈아 마신다"고 협박하며 아내강간을 시도한 남편은 "유약하고 아내를 깊이 사랑한 평범한 가장"으로 묘사됐다. 김씨의 초등학생 딸은 검찰과 다르게 생각했다. 딸은 재판 증인 심문 때 "아빠는 한 달에 15일 정도 술을 마셨고, 엄마를 많이 때리고 아프게 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게) 잘못된 것 같지 않다, 아버지가 두려웠다"고 말했다.

딸의 증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1년 5월, 2심 재판부의 판결문도 검찰 쪽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해자(남편)가 작성한 별거 기간 동안의 일기장 내용을 보더라도 피해자는 어린 두 자녀를 만나지 못하여 가슴 아파하고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다정한 아버지, 그리고 피고인(김씨)과의 헤어짐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 재결합을 간절히 원하고, 그러면서도 피고인을 크게 원망하지 아니하는 마음 여린 남편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21세기 대한민국 법원은 가정폭력 남편에게 감정이입을 잘 한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살인 이외의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이 사건을 도왔던 정춘숙 당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현 상임대표)은 책 <성폭력을 다시 쓴다>에 이렇게 적었다.

극한의 폭력... "다른 길 찾으라"는 법원

▲ 자료사진. ⓒ sxc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은 성인-비장애인-남성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화하는 남성 권력의 실천일 뿐이다."

김씨 사건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가해자 살해 사건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앞서 말한 대로 '드디어' 정당방위 판결이 내려질 수도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매 맞는 여성도 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일까?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참 많은 걸 요구한다. 평소에는 따뜻한 모성으로 가정을 지켜야 하고, 남편이 때리면 알아서 도망가야하며, 가위를 들고 발가벗긴 채 때리며 강간하려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자각하고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2000년대 초반도 훌쩍 지났으니 요즘은 좀 달라졌을까? 25년 동안 자신을 때린 남편을 살해한 윤필정씨에게 1심 법원은 "장기간 반복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해왔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윤씨)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이전에 이혼을 하는 등 (중략)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25년간 마음대로 때려... 남편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이런 한국 법원의 변함없는 태도에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지난 7일 인터뷰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무리 판례를 따른다고 하지만, 어떻게 (법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발언할까. 지금까지 폭력 당했으니 더 참고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그 말은 '그냥 너가 죽지 그랬니?'라는 말과 똑같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은) 자신이나 자식이 죽을 것이라 판단했기에 마지막 선택을 한 거다. 안정성을 위해 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해도, 인권감수성 등 달라진 시대를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나라의 정당방위 사례를 갖다 줘도 달라지는 게 없다."

형법 21조 제1항은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행위"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막는 행위가 적절했느냐(상당성)는 점이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가해 남편 살해 사건은, 대개 자신을 때린 남편이 잠들었거나 다른 일을 할 때의 '비대결 상황'에서 발생한다. 남녀의 신체와 물리적 힘 차이 탓에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는 순간에 아내가 '적절한 반격'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이유 때문에 정당방위 판결이 잘 내려지지 않는다. 일각에서 "정당방위가 성인 남성의 힘과 능력을 중심으로만 해석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살펴본, 김씨 사건은 남편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김씨의 행위가) 방위행위의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어 정당방위나 과잉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윤필정씨의 상황은 어떨까? 사건이 벌어진 당일(2013년 9월), 남편은 망치를 책상에 강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내 손에 죽는 날이야. 우리는 여기까지야. 기다려. 너 오늘 이 망치로 대갈통을 부셔 버릴거야."

그러면서 조명 스탠드를 깨버렸고, 주먹으로 윤씨의 머리를 때렸다. "오늘 정말 죽겠구나"하고 느낀 윤씨는 먼저 노끈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남편의 목을 졸랐다. 변호인 측은 윤씨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사회적 통념'... 도대체 실체가 뭘까

"피해자(남편)가 등을 돌려 앉아 있는 상태에서 뒤로 다가가 목을 졸라 살해한 점 등 (중략) 어떤 가치보다 고귀하고 존엄한 인간의 생명이라는 법익이 침해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행위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행위나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사회통념상 상당성이 있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

매맞는 아내가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사회통념상 상당성이 있는 행위'란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형법상 정당방위는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가 많기에 신중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럼에도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저서 <형사법의 성편향>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김씨 사건의) 판결문에서 왜 피고인의 행위의 공격성의 정도가 자기의 생명, 신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 평가하기 어려운지, 그리고 어떠한 측면에서 방위행위의 한도를 넘어 섰기에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인지... (중략) 보다 중요하게는 대법원이 상정하는 '사회통념'이 어떠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사회통념'을 벗어난 가정폭력에 수십 년 시달려도, 여성의 반격은 가부장사회가 규정하는 '사회통념' 때문에 늘 발목이 잡힌다. 가정폭력 남편을 살해한 여성의 반격은 한국에서 단 한 번도 정당한 행위로 인정받지 못했다.

조국 교수는 위의 책 맺은말에서 이런 의문을 던진다.

"우리가 아는 '정의의 여신'의 모습은 두 눈을 눈가리개로 가리고 한 손에 칼과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든 모습이다. 이 눈가리개는 법의 추상성, 중립성, 공정성 등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이는 동시에 법과 정의에 대한 여성의 관점을 배제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 않을까? 그 눈가리개는 스스로 한 것일까, 아니면 강요된 것일까. 그리고 그 가리워진 여신은 자신의 저울이 남성편향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여성의전화는 2심 재판에서 윤필정씨가 정당방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여러분들도 서명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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