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상인은 정직하고 신용이 있어야 한다"

예고개 선산 대추밭에 삼대가 모여 대추 따던 날

등록|2014.10.14 20:36 수정|2014.10.15 09:28

대추를 담을 상자를 나르는 아들우리집안의 선산이 있는 예고개는 영주와 안동과 봉화의 세갈래 길이 위치한 곳에 있다. ⓒ 김도형


화창한 날씨에 가을 하늘이 무르익어가는 공휴일인 한글날에 우리집 선산이 있는 영주와 안동 사이의 예고개를 다시 찾았다.

지난주에도 대추를 따러 왔지만 몸이 불편했던 관계로 그다지 많은 일을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어, 이날은 아내와 아들과 딸을 모두 데려와 제대로 따 볼 요량이었다. 다쳤던 다리도 어느정도 회복되 일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우리가 오기 전 날에도 아버지께서는 혼자서 작업을 많이 한 관계로 이날 하루 부지런히 노력하면 대추밭의 남은 대추를 모두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과 나이가 엇비슷한 대추나무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게 잘 자라서 대추를 따기에 안성맞춤인 상태로 자라 있다.

아들과 딸에게는 대추나무를 털면 대추를 줏어 담는 임무를 맡길 생각이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손주인 아들에게 대추나무를 함께 털 수 있는 영광을 부여하셨다.

손주를 극진히 아끼고 좋아하는 아버지께선 나와 같이 일할 땐 무뚝뚝했던 표정도 어느새 함박꽃 웃음으로 변해계신다.

대추나무를 터는 나의 아버지와 아들아들이 태어나던 해에 심은 대추나무라서 의미가 더욱 깊은 곳이다. ⓒ 김도형


아들은 나의 아버지에겐 웃음보약과 같은 존재다.

아버지께서 긴 장대로 대추나무를 털게 되면 수많은 대추들이 순식간에 떨어진다. 그리고 잔가지 정도는 부러트려도 아무렇지도 않은게 대추나무라서 사정없이 털다보면 대추가 달린 잔가지와 잎이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지게 된다.

나의 임무는 바닥에 미리 깔아놓은 그물 위로 대추가 수북히 쌓이게 되면 잎과 대추를 분리해 상자에 담아 나르는 일.

아들과 딸에게 대추를 함께 줏어담자고 얘기하면 "예! 알겠어요!"라면서 씩씩하게 대답하곤 대추를 좀 줏어 담다가 이내 둘이서 장난 치기에 바쁘다.

대추나무에는 탈피한 뒤 남아 있는 곤충모양을 그대로 간직한 곤충껍질들이 간간이 붙어 있어서 딸아이는 이들을 수집하는데 온통 관심이 쏠렸다.

아들은 의젓한 모습으로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 다니며 작은 나무막대로 대추나무를 곧잘 털었다.

신나게 대추나무 터는 아들한번 탁 치면 우수수 떨어지는 대추나무 털기, 의외로 신나고 재미있는 작업이다. ⓒ 김도형


온 사방으로 떨어지며 그물밖으로 뛰쳐나간 대추들을 일일이 허리 굽혀 줍다보면 허리가 뻐근해져 와, 그리 쉽지 않은 일이 대추 수확하는 일이다.

그나마 몸이 가볍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일이 편해질까 싶어 궁리했던 나의 작전이 생각보다 힘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푸른 자연에 파묻힌 듯 일하는 것도 나름 행복한 일이었다.

오후 5시까지 일을 한 뒤 대추를 한 곳에 다 모았더니 꽤나 많은 양이 쌓였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어제께 수확한 대추는 영주고등학교에 몽땅 갖다 팔았고, 이날 딴 대추들은 선영여자고등학교에 갖다 줄거라고 하셨다. 선영여자고등학교는 아버지께서 2004년도에 정년 퇴임한 학교였고 그 이전에는 같은 재단인 영주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재직하셨다.

깔아 놓은 자리 위에서 품질이 우수한 대추들을 선별해 됫박에 가득채워 준비된 망에 담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수확한 대추를 상품화 시키는 아들과 딸일하면서 상인의 정직과 신용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 김도형


내 생각에는 딴 대추들 모두가 잘 익었는지라 보기 좋아 아무렇게나 담아도 될 것 같았지만, 아버지께서는 파는 것들은 상품들로 잘 선별에 담으라고 주문하셨다.

아들에게 대추를 됫박에 가득담는 작업을 하도록 했고, 나는 망에다 대추를 잘 담을 수 있도록 받들어 주는 일을 했다. 대추 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아들과 나에게 아버지께선 특유의 진지한 목소리로 한말씀 하셨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정직하게 일해야 하고 늘 한결같이 신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에 또 팔 수 있다."

하루 종일 일하며 노동에 대한 의미를 깨우쳐 가는 아이들아이들의 노동력도 제법 쓸만하다는 것을 안 날이다. ⓒ 김도형


아버지께서는 한 망에다가 두 되를 가득담도록 상품을 만들어 놓으라고 주문하셨고, 팔때는 시중의 반값도 안되는 헐값에 파신다. 팔고나면 그동안 대추밭에 들어간 퇴비 비용과 노동력에는 턱없이 모자랄 정도로 팔곤 하시는데, 그 이유는 이윤을 남기는게 목적이 아니라 수확한 기쁨을 나누기도 하고, 오랫동안 함께 일해왔던 후배 선생님들과 정이 든 학교를 위해 기부하는데 목적이 있으신 것이다.

부모님께서 예고개에서 대추밭외에도 이것 저것 다양한 1년 농사를 짓느라고 쉽지 만은 않으셨겠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땀흘려 부지런히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어 행복한 곳이 바로 예고개다.

밭에서 이따금 일하시느라 다소 힘드실 수도 있겠지만 난 아버지의 건강 척도를 밭에서 일하시는 모습에서 찾는다.

난 매년마다 변함없이 정정하게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속으론 안심하고 흐믓한 마음으로 구미로 내려가곤 한다.

밖에서 마음껏 활동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한 것을 의미하기에 예고개 선산에서 일하는 것이 사실 그다지 싫지 만은 않다. 부모님께서 나이 드시도록 일만하게 방관만하는 불효자일수도 있겠으나, 나의 생각은 100세가 되셨을 때도 정정히 대추나무를 터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래본다.

삼대가 모여 대추를 딴 이날, 손주와 아들을 장사꾼으로 만드실 것도 아닌데 장사꾼의 신용론에 대해 일갈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니 아들에게 정직과 신용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

다리에 벌레가 물려도 불평않고 맡은 일을 잘하는 아이들아이들과 함께 일하며 수확의 기쁨도 맡보고 땀흘려 일하는 보람도 알게 된 날이다. ⓒ 김도형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유통신문>과 <한국유통신문>의 카페와 블로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