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전봇대 오르다 죽어요"...A/S기사의 눈물
[거절된 산재①] 인터넷·전화 설치 기사들의 일터, 위험한 전봇대
산재보험이 생긴 지 올해로 50년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일터는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기획 '거절된 산재'를 통해 열악한 노동 현장의 실태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LG 쌍둥이빌딩 앞에서 농성 중인 LG유플러스 설치 및 A/S 기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였습니다. 이분들은 경기도 광주·하남지회와 용인지회를 중심으로 한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노동자들로, 지난 9월 19일부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지난 3월, LG유플러스에 노동조합인 비정규직지부가 처음 결성된 이후 센터 사장이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센터를 폐업해 버리는가 하면, LG와 새로 위탁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조차 이분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함에 따라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네요. 비슷한 상황이 다른 지역에서도 계속되자 LG유플러스 설치 및 A/S 기사들이 자신들의 진짜 사장 LG유플러스 앞에서 농성을 하고, 불법 파견된 노동자이니 책임을 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LG유플러스 설치 및 A/S 기사들에게 전봇대란...
▲ 작업 중에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전기원 노동자들. ⓒ freeimages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저는 이 자리에서 3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이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는 소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사람이 대화에 불쑥 끼어들어 위의 말을 한 것이지요.
지난해 전기 2만2900볼트가 흐르는 전깃줄을 만지며 일을 해야 하는 한전의 하청 전기원노동자를 취재한 적 있었습니다(관련기사 :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 전깃줄 지키는 노동자를 생각한다). 그때 전깃줄을 잘못 만졌다가 전신주에서 떨어져 온몸이 타버리는 일도 있었다던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재빨리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장마 때였어요. 비만 엄청 퍼붓던 게 아니고, 천둥도 치고 있었어요. 낮이어도 어둠이 깔려 있었어요. 아시죠? 어두컴컴한 대낮. 어느 전신주가 번개를 맞았는지 전화기로는 계속 콜이 오고 있었어요. 빨리 인터넷 되게 해달라고 고객센터로 걸려오는 A/S 요청들이었지요. 낙뢰가 치면 5분에서 10분 사이에 100개에서 500개까지 콜이 쌓여요. 기가 막히죠. 외면하고 싶었죠 당연히. 비만 와도 무서운데, 번쩍번쩍 하니까. 그런데 우린 전봇대에 올라가야 하고…."
올해 서른이라는 그는 원래 대형마트에서 인터넷 설치를 권유하는 영업일을 하던 20대 청년이었습니다. 인터넷 비용을 1000원~2000원 깎아준다며 지나가는 어머니를 붙들고 가입신청서를 내미는 그 일에 어느날 회의가 들더랍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는 그는 인터넷을 뒤지다가 인터넷 설치기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처음 이쪽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그래도 기술을 가지고 일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하겠다고 생각했다면서요.
"한 선배가 저를 데리고 가더니 전봇대에 오르는 시범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날 잠도 못잤어요. 그때는 전봇대가 그리 무서운 것인 줄 제대로 몰랐을 때인데도 겁나더라고요."
이야기를 듣던 분들이 갑자기 이구동성으로 전봇대 경험담을 쏟아놓습니다. 진정시키고, 그날 있었던 일부터 듣기로 했습니다.
"아, 비가 오던 그날… 어쨌든 안 가면 제 월급에서 차감되니까 가긴 갔어요. 그게 4년 전이었는데, 그 고객은 빨리 인터넷이 되게 해달라고 냉정하게 말했죠. 오락을 해야 하는데 칼을 주워야 한다던가, 하여튼 그랬어요. 그래서 고객에게 사정을 했어요. '고객님, 저 죽어요. 비 오는 날 전봇대 타면 온몸이 찌릿찌릿 해요. 감전 당해서 죽을 수도 있고요.' 그 고객은 '제 알바 아니에요'라고 했어요. 화가 났죠.
결국 그 고객에게 각서를 받았어요. 사고가 나면 고객이 책임진다 이렇게요. 써주더라고요. 전봇대 앞에 섰어요. 비오는 날은 전봇대에서 지직지직 소리나는 게 더 크거든요. 무서워서 30분 정도 그렇게 비를 맞고 서 있었어요. 내 인생에 대한 생각도 하고, 이걸 해야 하나 그만둬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얼마나 들었겠어요. 그렇게 있으니까 고객이 그냥 가라고 하더라고요. 거의 울지경이 돼서 돌아섰죠 뭐. 여기 전봇대랑 그런 경험 없는 사람 한 명도 없어요. 다들 목숨 걸고 탄다고요."
옆에 있던 서울 광진구 기사가 말을 이어갑니다.
"아이고, 얼마 전에 티브로드에서 전봇대 타다가 떨어져서 돌아가신 기사님 있잖아요. 그런데 그 분 산재보험 처리나 되었을까 모르겠네요. 대부분 못 하니까 그분도 아마 못 했을 거예요(언론보도에 따르면, 실제 하청업체와 원청 모두 "법적인 책임이 없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 편집자말). 남의 일이 아니에요. 센터에서 안전을 위한 장비는 다 우리더러 사래요.
오죽하면 노조 만들고 첫 번째 요구가 안전장비 지급해 달라는 거 아닙니까. 이런 걸 사람들이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끼고 아끼느라 헐거워진 장비들도 많이 쓰죠. 센터마다 다르기는 한데, 오래된 거 돌려 쓰는 지역도 있고 그래요. 어떤 분은 좀 오래된 안전띠를 메고 전봇대에 올라가 선을 만지는데 아… 손바닥이 선에 붙더래요. 감전을 당한 거죠. 10분인가 가만히 있었대요.
그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겠어요. 근데 옆 전봇대에 KT 기사님이 일을 하러 오셨다가 그 분을 발견한 거예요. 하늘이 도운 거죠. 그런가하면 감전 당한다는 느낌이 딱 오면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전봇대에서 뛰어내리는 기사님들도 있어요. 어떤 분은 떨어져서 척추가 나갔는데,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아, 빨리 회사에 전화해서 수리 일정 조정해야겠다'였대요. 우리는 다 그렇죠. 병원보다 센터에 먼저 전화해요."
그럼 산재신청은 잘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모두가 억울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쏟아내는 이야기는 한결같습니다. "산재신청을 하면 센터에 불이익이 오니까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산재보험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우산'되어 주겠다는 산재보험, 실제로 없더라
▲ '노동자들의 우산'이 되어주겠다는 산재보험, 50년 동안 뭐가 달라졌을까. ⓒ 근로복지공단
난간 하나 없는 아파트 옥상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도 보고, 옥상 문을 열어주지 않는 집들 때문에 목숨을 걸고 옥상에서 옥상으로 뛰어야 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지하실이 없어 맨홀 뚜껑을 열고 20~30m를 기어가는 일도 있답니다. 바퀴벌레와 이름모를 벌레들이 득시글하던 도시의 바닥을 이 악물고 기어가는 일도 있다네요. 설치를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니, 매번 설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그렇게 기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맨홀 아래로 들어갔던 한 노동자가 질식해서 사망한 일도 있었습니다. 비가 와서 감전을 당하는 일도, 눈이 많이 온 날엔 미끄러져 떨어져 죽을지 모르는 일도 그냥 감수해야 했습니다. 어떤 설치노동자는 겨울이 막 지난 봄에 담벼락을 탔는데, 그냥 무너져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다친 건 애써 참을 뿐, 무너진 담벼락 비용을 고스란히 물어야 했다고 하네요.
믿기 힘든 이런 업무환경에서 이분들은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신분은 다 다릅니다. 어떤 센터에서는 개인사업자라 하기도 하고, 어떤 센터에서는 하청의 하청을 거쳐 고용된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보험이 노동자들의 우산이 될 수 있을까요?(근로복지공단은 올해 산재보험 50년을 맞아 근로자의 우산이 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3년 전 전봇대에서 떨어져서 척추가 나간 마포구 센터 김아무개 기사도 일을 안 하면 패널티를 부여하고 일감을 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갔다고 그날을 회상했습니다. 전봇대에 올랐고, 그날따라 발 딛는 곳이 헐거웠는지 부러지면서 안전벨트가 끊어져 떨어진 것입니다. 바로 응급차를 불렀고, 차 안에서 회사에 스케줄 조정 전화부터 했는데 돌아온 센터장 대답이 가관입니다.
"다치면 어떻게 해."
마치 수리 기계가 고장이 나면 '어머 어떻게 해' 하는 것처럼, 인간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없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보험 처리 좀 해달라고 하면, 센터 사장들은 "문 닫아야 된다"고 공통적으로 얘기한다고 합니다. 김 기사 역시 그랬고요. 개인적으로 하자고 많이 설득을 당했고, 결국 김 기사는 산재신청은커녕 서비스센터로부터 단 한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보호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사에게 딱 하나 제대로 해주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해피콜'입니다. 어떤 고객이 인터넷이 다 설치된 뒤 홈시어터를 연결해달라고 기사님에게 요구를 했습니다. 홈시어터를 써본 일도 없고, 그건 본인의 업무가 아니었던 데다가, 빨리 다른 집으로 일을 하러 가야 했던 기사님은 정중히 고객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고객은 딱 한 마디를 했습니다.
"해피콜만 와봐라."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기사들이 그놈의 '해피콜' 때문에 해야 했던 일은 참 다양했습니다. 장롱도 옮기고, 냉장고도 옮기고, 어떨 때는 '야동'을 다운받아주기도 하고, 포털사이트 아이디를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기사님들은 고백합니다. 이력서를 대신 써줬던 분도 있고, 애초에 안 되던 컴퓨터를 그저 기사님이 눌러 봤다는 이유로 고장난 컴퓨터 비용을 통째로 물어주기도 했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해피콜'때문입니다. 해피콜이 뭔지, 기사님들에게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기사님들의 서비스가 이뤄지고 나면, 본사(본사가 지정한 하청업체)가 고객에게 전화를 겁니다. "서비스에 얼마나 만족하셨냐"는 질문에 고객들은, 100% 만족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별 생각없이 10점 만점에 9점을 주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LG유플러스센터 자료에 따르면, 만족도 평가 기준은 100점, 99.1점 미만~98.1점 이상(5만 원~15만 원 차감)/ 98.1점 미만~97.1점 이상(5만 원~20만 원 차감)/ 97.1 미만~ 96.1 이상(10만 원~30만 원 차감)/ 96.1 미만(15만 원~40만 원 차감)입니다. 당신이 별 생각없이 1점만 깎아도, 그런 사람이 1명 이상만 되어도 기사님의 월급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해피콜, 정말 이름 한 번 잘 지었습니다.
간혹 어떤 기사님이 몇 시에 오기로 약속을 했는데 안 온다고 서비스센터로 전화를 걸 수도 있겠죠? 그런 전화 한 통 당 기사에게 5만 원의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그것 말고도 벌금 형식으로 내야 하는 돈들이 쌓이면, 기사들은 아예 일을 놓아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적게는 5년에서 20년까지 이 일을 하신 분들이 직업을 바꾸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온갖 스트레스에 억눌리고, 해피콜에 짓이기는 이분들의 감정노동은 대체 어찌 보듬어야 할까요? 몸이 아파도 못 받는 산재보험, 마음이 아파도 못 받는 산재보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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