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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일 못하는 줄 알았는데, 여긴 다 그렇대

[인터뷰] 페이스북 공개그룹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여정훈씨

등록|2014.10.17 10:56 수정|2014.10.17 15:52
[기사수정 : 17일 오후 3시 51분]

뜨겁던 지난 여름, 같이 밥을 먹던 후배가 말했다. "언니, 여기 너무 웃긴 곳 같아요." 페이스북 공개그룹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여기에 가입한 누리꾼들은 일하다가 자신들이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들에 대해 토로했다.

회원들은 그를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고, 토닥이며 위로했다. 이곳을 찾은 자칭 '일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깨닫고 위안을 받아 갔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몇 명이 되지 않았던 멤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16일 현재 회원수가 500여명이 훌쩍 넘어버렸다.

지난 10월 초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그룹을 만든 여정훈씨를 신촌에서 만났다. 그는 지하철역과 백화점 사이 통로에 있는 의자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멋쩍게 새로 산 노트북인데 끄는 법을 모른다며, 'ctrl+alt+Del' 키를 눌러 시스템을 종료했다.

일 못하는 데 대한 자괴감을 재미로 승화하기

▲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여정훈씨 ⓒ 강서희


- 왜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만들었나?
"단체에서 하던 일을 그만 두면서 '나는 정말 일을 못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페북에 썼다. 일을 잘하려면, 상사의 요구에 대처하는 능력도 있어야 하고, 일에 대한 프로세스 설계도 잘해야 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또 그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자본을 끌어오는 능력도 있어야 하더라.

이렇게 생각하니 '일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소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담벼락에 일 못함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친구들이 자기의 사례들을 쓰며 호응했다. 그리고 아예 개인 담벼락이 아니라 그룹을 만들어 보자며 개설했다. 소개에 그런 말을 써두었는데, '일은 못 해도 이런 건 잘 만든다'고. 가입한 지 2, 3일 만에 100명 정도가 가입한 것 같다."

- 일 잘 하는 사람은 가입 승인을 안 해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 못하는 사람이 승인하는데 그럴 리가. ^^;"

- 사람들이 올린 글들을 보면 일을 못 하는 것에 자괴감이 묻어나는 것 같다.
"일 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재미있지 않나? 일상에서 자신의 일 못함에 대한 재미 말이다.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는 말에 다른 사람은 '2호선을 한바퀴 돌았다'고 대답을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그런 실수를 하는 게 나만이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이버 공간에서) 회사로 돌아가면 나만 버벅거리는 존재가 된다. 한국의 직장 문화를 보자.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기 검열을 한다. 더 좋은 기획서를 쓰기 위해 자신에게 채찍을 가한다. 모든 사람들은 일에 대해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 사람들이 호응하는 이유

-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 가입한 사람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20~40대까지 다양하게 있다. NGO 실무자들도 있고, 일반 사무직인 사람들도 있고, 대학원생들도 있다. 나중에는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가입해서 모르겠지만 다양한 직업,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남녀 비율은 비슷하다."

-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이 계속 올라온다는 것은 일 못함의 서러움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엑셀 파일을 날렸다는 이야기가 올라오면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기도 하고, 파일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주기도 한다. 서로 그렇게 위로한다.'

-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만든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나?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통해 '일 못함의 문제가 노동권에 대한 이슈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받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것은 일을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계약의 문제일 뿐이다. 결코 일 못함의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월급을 사장이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상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한다. 일 못하는 사람들도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에서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일, 왜 잘해야 하지? 모르겠습니다

▲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여정훈씨. ⓒ 여정훈


- '일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의 근본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노동의 형태가 제한되면서 필요한 인재가 획일화되고 있다고 본다. 한 사람이 모든 종류의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아이디어는 많지만 지구력이 부족한 편이어서 직장 생활을 하기가 힘든 편이다. 소수 인원으로 최대의 작업물을 뽑아내려는 한국 사회의 노동 환경은 스펙이 많고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선호한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인 것을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이 있을까?
"'소득의 균등한 분배'와 '경쟁보다는 협력'이 그 대안이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는 직종이 곧 계급이 되어버렸다. 기본소득이나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조건에서는 사람들이 일에 대한 선택의 폭이 커질 것이다. 또한 인센티브보다는 결과물의 완성도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 경쟁보다 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최근 지하철 사고가 있지 않았나. 실수없음(일 못함)에 대한 요구가 사회의 안전성을 낮추고 있다고 본다.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이라는 목표에서는 노약자나 장애인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경쟁보다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 앞으로 계획이 있나? 오프라인 모임을 생각해볼 만하기도 하겠다.
"이 그룹을 만들면서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별 계획을 가지고 만든 게 아니었으니까. 개인적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목표를 이루는 것을 잘하지 못하고 상황이 생겨야 대응책을 세우는 스타일이다. 기획력이 없어서 오프모임을 할 수 있을까?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인데? ^^

그런데 전국에서 일 못하는 사람 대회같은 건 해보고 싶다. 경연대회가 아니라 노동자대회, 어떠면 성토대회일 수도 있는. 그리고 일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읽어주고 공감하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다. 잘못 만든 음악을 틀어주고 실패한 작업물을 경품으로 주는 그런 프로그램 말이다. 그런데 일을 잘 못하니까 언제할지는…. ^^;"

인터뷰를 마치며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 올라온 두 개의 글을 소개할까 한다. 하나는 인터뷰에서 잠시 언급된 지하철 사고와 관련된 글이고, 다른 하나는 여정훈씨가 그룹을 만들면서 쓴 글이다. 이 글을 보며 드는 생각. 우리는 왜 일을 잘하고 싶어할까. 당신은 혹시 타인에 의해 일을 잘할 것으로 강요받고 있지는 않나. 코 앞에 닥친 일이나 해야겠다.

최근 지하철 관련 사고 소식을 몇 가지 들으며, 프란츠 부케티츠가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에서 일본 고속철 사고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부케티츠는 고속철 탈선으로 인한 인명피해의 원인으로 운전자에게 주어진 압박을 지목합니다. 회사와 승객들에 의해 정시도착에 대한 압박을 느낀 운전자는 과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빠르고 정확한 일처리'는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덕목일 것입니다. 그러한 목표를 위해서는 신체나 정신적 조건 때문에 맨 뒤에 오는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맨 뒤의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혹은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속도와 정확도에 대한 요구를 조금은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일 못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들도 행복할 것입니다. 완벽에 대한 압력은 사라지고, 공동작업을 통해 서로의 일을 도우며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권장되는 사회가 바로 일 못하는 사람들의 사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별세한 이에게는 평화가, 고통 받는 이에게는 위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 여정훈, 9월 30일,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 게시

1. 원시 사회에는 일 잘하는 사람이 없었다.
2. 신석기 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일 잘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일 못하는 사람들이 소외를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3. 산업혁명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었는데, 집적된 기술은 일 못하는 사람이 익힐 수 없는 것이 되었다.
4. 대다수의 인류는 일 못하는 사람이나, 일 잘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자신과 타인을 평가함으로써 이 모순을 고착화 시키고 있다.
5.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모르겠다.
- 여정훈, 7월 15일,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 게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서희 님은 알바연대·알바노조 홍보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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