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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과 이세호 장군

[미운 오리새끼의 월남참전기 3]

등록|2014.10.16 19:22 수정|2014.10.16 19:22

▲ <베트남전쟁과 나> 표지 ⓒ 팔복원

대단히 어쭙잖은 이야기지만 이런 주제의 글을 쓴 사람은 한국역사에서 내가 최초인 것 같다. 왜냐하면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지난 해 작고했고 아직은 역사적 평가를 하기에 이르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고 이 시점에서 분명히 평가되어야 한 부분이 있는데 아무도 용기 있게 나서지 않아 고발을 하는 마음으로 감히 나섰다.

국군의 8년여의 월남 참전 기간 동안 채명신, 이세호 두 사람의 사령관이 재임했었다. 나는 이세호 장군이 주월남사령부 사령관이었던 시기에 파병이 되었었기에 초대 사령관인 채명신 장군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월남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일 때문에 채 장군과 장시간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시드니 방문 때는 몇 일간 수행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때 이미 출판되었던 그의 자서전 <베트남 전쟁과 나>라는 책을 일부러 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누가 나에게 주었던 책마저 우리나라 군 출신들이 쓰는 뻔한 자기 자랑의 책을 내 서가에 꽃아 놓고 싶지 않아서 버렸다.

실제로 나는 어느 퇴역 장군의 자서전을 대필해준 적이 있는데 군인 특유의 자기 성찰이라고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없는 기술 방식에 아예 질려 버렸었다. 그런데 그 후 채 장군의 자서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읽지 않은 전우들이 여러 명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온라인에서 만난 한 전우는 2006년 서점가에서 채 장군이 미소 지으며 지휘봉을 들고 있는 책의 표지를 보고서 "이 양반이 정말 전쟁을 지휘한 장군인가? 내가 저런 사람의 작전 지휘를 받고 정글 속에서 고생을 했다는 말인가?"하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책을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전우는 참전전우회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내 글을 접하고서야 다시 채 장군의 책을 주문해서 읽은 다음 표지에서 미소 짖고 있는 모습과는 다르게 나름 고뇌하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전우는 "천으로 만든 실내 모자에 지휘봉을 들고 웃는 모습을 볼 때 심장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왕이면 전쟁터에 나간 장군답게 철모에 방탄 쪼기의 무장 모습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백 년 후 우리의 자손들이 월남 전쟁 채명신 장군의 모습을 보고 월남전을 어떻게 평가할까? 선조들의 전쟁 모습을 겪지 않은 후손들이 갑옷에 큰 칼 옆에 차고 의연히 서 있는 장군의 동상을 대할 때 우리들이 느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6.25 전쟁 중 미국 맥아더 장군에 인천 상륙 작전 중 망원경을 들고 전운을 살피고 있는 모습과 비교를 해보자. 월남전 당시 찍은 사진이 수없이 많을 터인데 월남전을 상징하는 사진이 그것 밖에 없었나? 열 마디 글보다 단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데……. "라고 뼈가 아플만한 지적을 했다.

나는 처음 그 책을 보았을 때 그 전우만큼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닌데 별 셋의 중장의 모자에 30대 청년 같은 채 장군의 얼굴이 전혀 전쟁터와 어울리지 않는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자서전을 채 장군이 직접 기획했을 리는 만무한 일이기에 "어떤 놈이 기획을 했는지 책을 전쟁의 'ㅈ'자도 모르는 놈이 기획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중에 채 장군을 만났을 때 책에 대한 내 소감을 이야기 했더니 출판에 대해서 잘 몰라서 누구한테 맡겼더니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연재를 하기 위해서 채 장군의 책을 꼼꼼히 읽어 보았지만 처음 내가 가졌던 선입관에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새롭게 알려질 만한 비사도 없고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만한 귀중한 증언도 없는 그저 국방부 전사 보관소에나 보관하면 적당할만한 평범한 책이었다. 서두에 베트남전과 관련된 국제정세의 변화 등에 대해 상당히 길게 언급되어 있지만 여전히 객관적이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군인들의 전쟁회고록은 당사자들의 얘기이기 때문에 사실적이고 흥미진진한 법이다. 물론 자서전은 자기 자신을 항변하거나 자신이 했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설파하려는 가능성이 농후한 법이다. 그러나 훌륭한 책은 자신이 이루어 놓은 잘 알려진 업적을 자랑하기 보다는 어떻게 큰 실수를 저지를 뻔하고 또한 저질렀으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가 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회고록인 만큼 오히려 더 냉철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비판하며 '그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어야 했다.'라는 내용이래야 후손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책은 한낱 홍보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채 장군의 책은 자신의 생각은 원래 이러해서 그 뜻을 그렇게 관철시켰으며 난 그렇게 생각했지만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변명조의 내용들이 간간히 섞여 있고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나 잘못된 판단과 결정, 간과했던 사항들은 거의 없었다. 채 장군의 회고록 안에 펼쳐진 인간 채명신은 너무 완벽해 보여서 왠지 믿음이 덜 갔다.

그런 면에서 롬멜 전사록의 경우와는 매우 비교가 된다. 그 책도 물론 롬멜이 직접 쓰지는 않았고 롬멜의 아들이나 부관, 참모들이 그 상황에서의 주석을 달아 놓은 책이다. 그러나 그의 책에는 앞에 말한 그런 기록들 때문에 오히려 더 믿음이 간다.

채 명신 장군은 사령관직에서 물러난 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철저히 견제를 당했고 생을 마칠 때까지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살았다. 후임 이세호 장군은 개인적으로 박 정희 대통령과 친구사이이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 치하에서 4년 7개월 최장수 육군 참모총장을 지내고 나서 자신의 옛 부하였던 전두환으로부터 나락으로 떨어지는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흥미 있는 일은 두 장군들의 개인적인 인격의 차이에 대한 평가와는 전혀 상관없이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할 일이 우연하게 발생했다.

그것은 이 세호 장군이 2012년 04 월18일 오전 07시 30분~09:00까지 서초동 전자랜드 12층 에서 실시된 어울리지 않게 통일교의 2대 교주 문국진(문선명 아들)의 강연에 축사를 하는 들러리를 서는 자리에서 한국군 병사 1 인당 봉급을 매월 500달라(당시 US 달라) 를 미국 측으로 부터 받았으나 그 돈의 50 달라만(병장기준) 지급 하고 나머지 450달라는 국고에 귀속시켜 버렸다고 천기(?)를 누설해버린 것이다. 정부는 그 돈을 가지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 새마을사업, 국가 기간산업에 투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 발언을 한 다음에 꼭 1 년 후 사망 했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가 좁기 때문일지는 모르겠으나 월남 참전 전우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이 받았던 채명신 장군에 비해서 이 세호 장군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채 장군은 나 자신을 포함해서 파월 전우들 모두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고 있지만 수십 년간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가 삥땅을 친 일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 있는 답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다가 갔다. 그러나 비록 세상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비록 실수로라도 진실을 알게 만든 이 장군의 역할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의 실언으로 역사의 진실의 한 부분이 밝혀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날 행사의 정황상으로 볼 때 이세호 장군의 이 날 발언은 전혀 본인이 사전에 계획했던 것이 아닌 당일 행사에 참전군인들이 많이 참석한 분위기에서 나온 즉행적 발언이라고 본다. 그가 그렇게 중대한 발언을 하려고 했다면 통일교 집회 같은 음성적인 모임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선명이 직접 등장하는 자리를 비롯해서 통일교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취재를 목적으로 몇 번 참석을 해본 내 경험으로 볼 때 통일교 행사란 주로 주류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인사들을 돈을 듬뿍 주고 초청하는 자리이거나 그럴듯한 명분을 걸어놓고 둘러치기 식으로 행사를 치르는 자리이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가 진심으로 국가로서 언제인가는 해결해야 할 엄청난 숙제에 대하여 사실을 밝히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보다 더 공식적인 자리에서 명분을 가지고 했을 것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위야 어떠하든 사실이 확인되었으니 국가로부터 삥땅 뜯긴 돈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야말로 가스통 부대가 해야 할 일이었다. 엉뚱한 곳에 가스통을 들고 다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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