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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이야기

[책 읽어 주는 여자 9]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등록|2014.10.25 17:08 수정|2014.10.25 17:08

▲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뜨인돌 ⓒ 박현희

이 책을 읽기 전에 '동화(童話)'의 사전적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 또는 그런 문예 작품. 대체로 공상적·서정적·교훈적인 내용이다.

그럼 이 책의 저자는 우리 사회가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책으로 담은 것인가?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고등학교 사회 교사로 현직에 있는 박현희 저자는 학교에 대해,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의문과 의심들을 동화로 풀었다. 

세계 명작 동화는 학교와 아주 비슷한데 우리 사회가 미래 세대에게 바라는 것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동화의 메시지와 학교의 메시지는 아주 유사하다. 거짓말을 하면 대가를 치르게 되니 항상 정직하라(피노키오 이야기), 공든 탑이 무너지랴(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등 동화를 읽고 자라나면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획일적인 이야기를 학습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수월하게 통제하기 위한 수많은 금지 규범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그 규범들의 공통점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두발자유화'가 시행되고 있지만 내가 다닐 때만 해도 머리 길이 귀 밑 3cm로 정해져 있었다. 학생은 자고로 단정해야 하고 꾸미는 것은 성인이나 하는 것이며 머리가 길면 공부 못 하는 아이로 낙인 찍어 버리면서 학생들의 자유를 뺏어 가는데 성인들은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두발자유화가 힘을 발휘한 것은 "왜?" 라는 질문을 하면서부터다. 구성원들이 자꾸 이유를 물어보기 시작하면 대답은 점점 궁색해지고 규범은 힘을 잃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회 유지에 필요한 강제 규범을 확립하는 데 동화가 깊이 관여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명작 동화에 의해 사회화 되었고 그에 대한 해석권은 언제나 교과서, 아니면 어른이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교훈을 이식받았을 뿐이다. 그것이 어른으로 자란 우리로 하여금 획일화된 구조, 부조리함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지 않았을까.

하지 말라는 짓을 계속해서 연거푸 곤경에 빠지는 백설공주, 너무 멍청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백설공주가 정말 멍청해서 그랬을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일곱 난쟁이들이 백설공주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구 하나 없이 하루 종일 갇혀 살면서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세상에는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해 백설공주 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계속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백설공주가 너무 외로운 나머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주었으며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또 열어 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조건 잦은 만남이 많아진다고 해서 좋은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갑내기 친구들을 만나서 같은 고민을 나누고 헤어졌는데 고민이 더 커져 버릴 때도 있다.

그건 서로가 마음속 말을 나누고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하는 이야기를 대신해서 떠들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이 말하는 취업 대란, 인터넷에서 취업 풍자 카툰...나와 일치시키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말이 내 맘인 줄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즉, 우리는 맘에 있는 말을 나누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남의 말을 나누고 돌아온 대가로 커피값 혹은 밥값을 지불한 것이다.

이런 백설공주와 같은 현대 사람들을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대전에 위치한 지역품앗이 '한밭렛츠' 가 선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http://www.tjlets.or.kr/)

돈의 단위를 '원'에서 '두루' 라고 통칭하여 지역 내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를 통해 회원들이 노동과 물품을 거래하는 것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노동과 물품을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고 자신도 받을 수 있는 품앗이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공동체적 연대의식을 높이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에 빗대어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결핍, 관계의 부족, 상상과 일탈, 연대, 우정 등을 이야기한다. 미심쩍은 동화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어린 시절 품고 있었어도 어른이 되어 잊어버린)과 신선한 해석은 관용의 마을, 일탈의 마을, 지혜의 마을에 사는 주인공들에게로 이어진다.

첫 번째 관용의 마을에는 '어른'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거나 가르침대로 했는데도 곤경에 처한 주인공들이 산다.「여우와 두루미」의 여우, 거짓말을 계속한 양치기 소년, 학교 가기를 거부한 피노키오, 대충대충 집을 지었다는 누명을 쓴 <아기 돼지 삼형제>의 두 형이 이 마을에 살고 있다. 전형적인 동화 속 사고뭉치들이지만 저자는 건강한 의심의 시선으로 말 없는 이들을 변호한다.

두 번째 일탈의 마을에는 규범을 벗어던진 이들이 산다. 게임 도중에 잠을 잠으로써 불공정한 규칙에서 빠져나온 토끼와 토끼의 일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거북이, 끊임없이 딴 길로 새는 바람에 사람들이 숲 속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해준 빨간 모자 소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제 손으로 죽여 버린 농부, 금기를 넘어 분홍신을 신고 춤추다가 쓰러지기를 택한 소녀가 있다. 저자는 이들이 '물론'의 세계에서 벌인 일탈 덕분에 우리의 선택지가 다양해졌다고 믿는다.

세 번째 지혜의 마을에는 관계 맺는 데 서툴러 불행한 공주와 왕비가 산다. 답답하게도 자꾸 왕비에게 문을 열어 준 백설공주, 주구장창 왕자만 기다린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기껏 잘 기른 머리카락을 왕자에게 바친 라푼젤, 거울하고만 얘기하다가 불행해진 백설공주의 새 엄마 등이 사는 마을이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좋은 관계, 우정과 연대가 삶에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는지를 배운다.

어린 시절 옳고 그름을 가르는 지표가 되었던 동화 속 주인공들을 불러 모아 묻는다. 어째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 했냐고. 혹은 왜 세상 사람들이 현명하기 그지없는 당신을 오해하게 놔두었냐고. 우리는 동화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다스리는 자의 욕심과 음모와 편견, 경계 밖으로 나간 이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본다. 하지만 이 세상은 일탈한 자들, 규칙을 조롱한 자들에게 빚지고 있지 않나?

이 책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동화의 결말에 경쾌하게 발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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