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죽이는 농업, 이렇게 바꿔볼까요
[짱짱의 농사일기 2] 지속가능한 농사 위해 흙의 침식 막는 것 중요
▲ 흙의 침식을 막기 위해 마른 풀을 덮어둔 밭에서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 오창균
작물 수확이 끝난 들녘에는 가을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녹색의 물결로 일렁이던 풀들은 다음 세대를 잇기 위한 씨앗을 바람에 날려보내며 사그라졌다. 한여름 태양 아래서 창과 방패처럼 공방전을 벌였던 풀 한 포기, 잎 한 줄기가 아쉬운 요즘이다.
"어르신, 들깻대 안 쓰면 제가 좀 가져가도 될까요."
"뭐에 쓸라고? 필요하면 가져가요."
들깨를 털고, 한쪽에 쌓아놓은 깻대(줄기)를 얻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찾고 있는 것은 맨살을 드러낸 흙 위에 덮어줄 유기물(불에 타거나 자연분해 되는것)이다. 농사에서 흙 위에 무엇인가 덮어주는 것을 멀칭(mulching, 덮개)이라고 한다. 유기물 멀칭 재료는 흙의 양분이 되기도 하고, 미생물을 증식시키는 데 도움이 되며, 농사에 여러 가지 이로운 장점들이 매우 많다.
흙이 사라진다
빗물, 바람 등의 자연 현상에 의해서 지표면의 흙이 사라지는 침식을 농사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작물의 양분이 되는 유기물은 흙의 바깥쪽에 위치한 표토층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농업 방식은 가장 중요한 표토층의 흙을 화학 농약과 비료를 사용해 죽이는 농사를 하고 있다. 그렇게 맨살이 드러난 표토층의 흙은 조금씩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표토층은 지구의 속살을 보호하는 피부에 비유되기도 한다. 피부에 상처가 생기면 병원균에 쉽게 감염되는 것처럼, 겉흙이 사라지면 흙에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생명들도 위험한 상태에 빠진다.
침식을 많이 일으키는 것은 바람과 빗물이다. 산의 수풀을 없애면 빠르게 침식이 일어나서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처럼 농사를 짓는 밭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
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는 바람에 의해서, 여름에는 장마철에 집중된 호우로 인해 침식이 빠르게 일어난다. 바람과 빗물로부터 침식을 막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풀을 키우면서 관리를 하거나, 흙 위에 유기물을 덮어주는 멀칭이 필요하다.
흙의 침식은 양분이 사라지는 것뿐 만 아니라, 흙속의 미생물을 비롯한 토양 생물들의 먹이그물도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토양 먹이그물이 사라지면 작물은 영양 장애와 병충해에 시달려야 한다.
흙의 침식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는 풀을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 바람을 막아주며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침식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풀이 없는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살아있는 풀을 대신하여 흙 위에 마른 풀이나, 들깨를 털고 남는 깻대와 같은 쓰지 않는 잔사(잎,줄기)로 흙을 덮어주면 다음 해 봄까지 바람에 의한 침식을 막을 수 있다.
침식을 막는 농사를 하게 되면 도움이 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양분이 축적되므로, 퇴비의 사용을 줄일 수 있다. 흙 위에 덮어준 유기물이 서서히 분해되면서 퇴비를 대신하게 된다.
겉흙은 햇볕을 직접 받지 않기 때문에 수분을 유지하는 보습 효과가 있다. 숲에서 떨어진 나뭇잎을 들춰보면 그 아래의 흙(부엽토)은 항상 촉촉하게 수분이 유지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밭에서도 겉흙은 수분을 유지하여 작물이 가뭄을 타지 않고 잘 자란다. 겉흙이 드러난 밭에서는 수분 증발로 작물이 쉽게 가뭄을 타는 것과 확연하게 비교가 된다.
수분이 유지되는 흙에서는 미생물의 증식과 활동이 늘어난다. 미생물은 흙으로 들어오는 각종 유기물을 분해하여 작물에게 필요한 양분을 공급한다. 그 자신도 사멸하게 되면 흙과 작물에 양분이 되어 건강한 흙을 만들어준다. 또한 흙 위의 먹이사슬과 같은 먹이그물이 만들어져 영양 장애와 병충해를 막아준다.
▲ 침식을 막아주면 양분 보존과 미생물의 증식으로 작물이 잘 자란다. ⓒ 오창균
겉흙 10cm가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 천 년
인류가 정착 농사를 시작한 이후로 지속가능한 농사가 가능했던 것은 자연생태계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유기 순환을 따르는 농사로 흙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농업은 불과 백년 만에 흙을 기계로 갈아 엎고, 화학 물질을 끊임없이 투입하는 산업 농사가 되었다. 흙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을 죽이는 농사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것이 지금의 농업이다.
지형(地形)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 교수는 '흙'이 사라지면 인류도 사라진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겉흙이 사라지면서 농업의 종말로 멸망한 고대문명이 그랬고, 지금도 지구의 흙은 사라지고 있다.
"유기물이 활발하게 움직여 겉흙 10센티미터가 만들어지는 데는 백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천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 현상이나 인간의 생산과 파괴 활동으로 침식되고 유실되는 흙은 그보다 훨씬 많다.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는 흙이 사라지는 속도를 앞지를 수 없다. 흙의 고갈은 화석연료인 석유나 석탄이 고갈되는 원리와 다를 바 없다."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흙>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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