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학살... 20세기의 민낯을 보자
[서평] <르몽드 20세기사>... 전쟁과 학살이 빈번한 시대
▲ <르몽드 20세기사> 표지 ⓒ 휴머니스트
2001년에 역사적인 9·11 테러가 있었으니, 미국에서는 테러의 시대 비슷하게 규정할지도 모른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비약적인 기술의 발달로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생활 패턴을 바꿨으니 스마트폰의 시대라 명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것은 사실 이 시대를 포괄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경제 위기의 시기는 어떨까?
그나마 가장 이 시기를 포괄할 수 있는 설명인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초반의 시기는, 20세기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위에서 말한 테러, 과학 기술의 발달, 경제 위기까지 모두 지난 20세기에 이미 거쳤던 바 있다.
20세기를 통틀어 전쟁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전쟁(테러를 포함한)이 있었고, 과학 기술 전반에서 너무나 급격한 변화가 있었으며,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경제 위기는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런 것들이 21세기 초반에 다시금 일어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21세기 초반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명제가 떠오르는데, '변화'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볼 수 있다. 점점 더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 말이다.
20세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태어난 책
<르몽드 20세기사>는 우연하게도 필자의 생각을 공유하며 그 생각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즉, 21세기의 한복판인 지금 우리는 20세기와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많은 것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20세기를 살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20세기의 연장선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점에서 우리는 20세기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태어났다.
이 책은 20세기를 4개의 시기로 나눈다. 광기의 시대(1910년대~1929년), 암흑의 시대(1930년~1945년), 적색의 시대(1945년~1970년대), 회색의 시대(1980, 90년대). 알기 쉽게 굳이 년도를 구분해 놓았지만 정확하지도 않고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 이 시기들은 서로 칼 같이 구분되지 않고 연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라는 언론관으로 유명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획 하에 만들어진 만큼 4개의 시대에 속한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을 한 개씩만 간략히 소개해본다. 먼저 광기의 시대에서는 '아르메니아인 대량 학살'이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두 차례의 학살이 있었고, 희생자는 20만 명과 100만 명이었다. 그 중 20세기 초 오스만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주범국에 속해 있었다. 오스만제국은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그 패배의 책임을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돌린다. 그리하여 아르메니아 주민을 시리아 사막으로 이주 시켜 약 100만 명 가량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사에 기록된 첫 대량 학살이다. 터키 정부는 이 범죄를 부정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공개적인 토론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알면 까무러칠 사건들
"대량 학살은 없었다. 다만 폭력 행위로 인해 30만 명이 희생되었다. 설혹 대량 학살이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잘못에 대한 책임은 바로 터키를 배반한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있다." (본문 중에서)
암흑의 시대에는 단연 제2차 세계대전이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생각지도 못한 후원자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파시스트 정권은 반자본주의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지금에 와서 보면, 당시 승전국들인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이 모두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돈의 힘(지주, 기업가, 은행가 등)을 빌려 힘을 키워나갔고 이후 이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후하게 보상 받았다고 한다.
적색의 시대에는 어떤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있을까? 역시 냉전 체제와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946년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영어권 세계의 공동유산인 자유와 인권의 위대한 원칙'을 내세워 소련의 '독재'를 규탄했다. 이어 1947년 미국의 해리 트루먼은 '미국이 전 세계 민주주의와 자유 수호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의 대외 정책 노선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와 '독재'는 엄연히 정반대의 성질의 것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보호 아래 구축된 자유 세계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독재 정권에 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그 면면을 열거하자면 포르투갈, 도미니카공화국, 니카라과, 쿠바, 베네수엘라, 과테말라, 에콰도르, 온두라스,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 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 세력을 옹호했다.
우리가 치러야 할 전쟁, '기억과의 전쟁'
마지막으로 회색의 시대는? 사실 이 시대의 많은 부분들이 21세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알릴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자, 질문 하나 해본다. 나치즘이 더 나쁜가? 스탈린주의가 더 나쁜가? 딱히 누가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겠는가? 그러면 그냥 둘 다 똑같다고 해두자.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가 똑같다는 생각.
미국과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즘에 대항한 '같은 편'이었다. 하지만 승전 후 곧바로 백색과 적색으로 갈라진다. 이후 이들이 한 짓은 정말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지만 백색이 승리했고, 적색은 과거의 나치즘과 다를 바 없는 족속이 된다. 와중에 전쟁 당시 소련의 적군에 맞서 싸우거나 학살 당한(또는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줄을 이어 나타났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당시 나치스 독일과 손을 잡았던 이들이다. 이들은 '애국'이라는 명제 아래서 나치스와 동맹을 맺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회색의 시대에서 물타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소련이 단순히 미국에게 졌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소련의 수많은 잘못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이용해 '기억'을 전복 시키고, '역사'를 수정하려는 행위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 아닌가?
초중고 시절에 자주 보곤 했던 '사회과부도'를 생각나게 하는 이 책은, 단순히 한눈에 살펴보기 쉽게 그려 놓은 그림, 지도, 그래프만이 전부는 아니다. 아니, 전혀 아니다. 글을 먼저 읽어보면 그런 그림 따위는 솔직히 전혀 눈에 들어 오지 않을 것이다. 글이 너무나 충격적이기 때문에.
그 충격의 이유는 일종의 두려움이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전부가 아니구나',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수정되어 있을 수 있구나', '시간이 흐르면 나라는 사람의 역사도 손쉽게 바뀔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들. 그래도 알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은 천지 차이가 아닌가.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이 꼭 봐야 한다. 꼭 보고 20세기 역사의 민낯을 알아야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르몽드 20세기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음, 이상빈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2014년 10월, 136쪽, 2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