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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국정원 탈법행위 제동 "국가 형사사법 기능 방해"

위조 가능성 제기 10개월 만에 증거조작사건 전원 유죄

등록|2014.10.28 21:20 수정|2014.10.29 15:18

▲ 국정원 현관에 국정원 직원 둘이 서 있는 모습. 사진은 지난 2013년 11월 4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 국정감사 당시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관련자 모두에 유죄 및 징역형을 선고한 법원은 증거조작의 주범이 중국 내 협조자들이 아니라 국정원 직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정보기관이 수집하는 증거도 적법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 국정원의 탈법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김우수)의 28일 선고의 대상은 국정원 직원들이 관련된 문서위조 5건과 허위공문서 작성 2건이다. 이 중 문서위조 1건은 무죄, 나머지는 모두 유죄로 판단받았다.

이 문서들은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에서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위조 또는 허위작성됐다. 검찰 측이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한 문서들에 대해 지난해 12월 유씨와 변호인이 위조 가능성을 지적하고 나선 지 약 10개월 만에 법원이 증거조작 관련자들을 처벌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 선고에 앞서 "피고인들은 국가안전보장의 임무를 수행하는 국가정보원 직원으로서 대공수사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더욱 엄격한 준법의식으로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 및 증거수집 업무를 행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그럼에도 피고인들의 범행은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하였을 뿐 아니라 국정원에게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훼손시키고, 국정원의 임무 수행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했다"고 꾸짖었다.

문서위조의 주범은 협조자들이 아니라 '국정원 직원'

재판부는 중국통으로 통하던 국정원 대공수사팀 김보현 과장이 4건의 문서위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하고 징역 2월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사문서위조 및 행사, 모해증거위조 및 사용). 김 과장은 중국 내 협조자 찐밍시(한국명 김명석)를 시켜 <허룽시공안국 출입경기록>, <허룽시공안국 회신공문>을 위조했다. 유우성 측이 정식으로 발급받은 증거 문서를 반박하기 위해 또다른 협조자 김원하씨를 시켜 <싼허변방검사참 일사적답복>을 위조해 검찰에 제출하도록 했다.

김보현 과장이 김원하씨를 시켜 위조했지만 결국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던 '새로운 <옌볜주 출입경기록>' 관련 범행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지만 모해할 목적으로 증거를 위조한 데에 죄를 인정한 것이다.

반면, 협조자 김원하씨는 징역 1년 2월, 찐밍시는 징역 8월을 선고받아 상대적으로 김 과장보다 덜한 형량을 받았다. 실제 이들이 증거를 위조하긴 했지만 김 과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 김원하씨의 경우 잘못을 반성하고 수사와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데에 크게 협조한 점이 반영됐다. 재판부는, 증거는 협조자들이 위조했다 해도 그 위조를 지시한 쪽의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상부 지시 불법성 알면서 복종한 점 '유죄'

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해외공관에서 이뤄진 국정원의 허위 공문서 작성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인철 선양총영사관 영사는 증거문서 위조에는 관련되지 않았다. 대신 위조문서가 검찰에 제출되는 중간에서 '이 문서의 내용을 영사가 사실로 확인했다'는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했다.

국정원에서 외교부로 파견된 정보관인 이 영사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실제 확인과정 없이 그 같은 영사 확인서를 작성했음을 시인하면서, 그런 일이 국정원 지시에 의해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했다.

재판부도 이 영사가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긴 힘든 상황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영사가 자신의 확인서가 법원에 제출돼 유우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알았고, 스스로도 확인서 발급이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했던 점을 들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모해증거위조 및 사용 등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재윤 국정원 대공수사팀 처장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인철 영사의 영사확인서 허위작성, 김보현이 협조자를 통해 위조한 <허룽시공안국 회신공문>, 김보현·김원하가 공모한 <싼허변방검사참 일사적답복> 관련 범행에 이 처장이 적극 공모했고 기능적으로 부하들의 행위를 지배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대공수사팀의 책임자로서 직원들의 수사 등 업무가 적법하게 이뤄지도록 지휘·감독하여야 함에도 오히려 이 사건 범행에 가담해 그 죄책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이 처장을 구속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처장의 경우엔 범죄사실에 대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어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고, 또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반박용 허위 <설명서> 작성 부분은 무죄 판단

이 사건에서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부분은 권 과장 등이 임○○의 <설명서>를 허위 내용으로 작성해 증거로 제출한 부분이다. 임씨는 중국 지안변방검사참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유씨의 변호인이 '유우성이 가진 통행증으로는 북한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설명서>를 권세영 국정원 과장에게 써줬다. 그러나 임씨는 증거조작 사건 재판과정에서 '<설명서>내용은 사실과 다르며, 국정원 직원들이 써 온 내용대로 써줬다'고 진술했다.

이 <설명서>는 유우성을 모해할 목적이 분명했지만 재판부는 증거위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설명서>에 대해 "임○○이 타인의 형사사건 등에 관하여 수사기관에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반하여 허위진술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무죄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수사 때 허위진술한 걸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권세영 과장은 <허룽시공안국 회신공문>을 받는 과정에 대해서도 개입 정도가 낮다고 판단돼 무죄를 받았다. 권 과장은 이인철 영사의 허위공문서 작성 과정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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