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게임중에 의자놀이(Musical chair)라는 것이 있다. 음악에 맞춰 의자 주변을 돌다가 음악이 멈추면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보다 적은 수의 의자에 남들보다 먼저 앉아야 생존하는 게임이 바로 의자놀이다. 행동이 민첩하지 못한 사람은 탈락을 하게 되고 다음 라운드에는 탈락한 사람이 생긴 만큼 의자도 줄어든다. 그리고 마지막 의자에 앉는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게임은 계속된다.
문득 우리 사회가 이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리의 아이들에게 만들어 놓은 교육이라는 시스템이 의자놀이를 벤치마킹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경쟁이라는 프레임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게임에서 지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아이들은 의자놀이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음악이 멈춤과 동시에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의자에 앉을 수 있을까를 끈임 없이 생각하고 눈치를 보면서 삶을 배워가게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의자에 앉게 되면 앉지 못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게임에서 배제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회는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만으로 굴러갈 수가 없다. 개별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모두에게 득(得)이되는 사회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것은 경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어져야 하는 것이고 상호간에 협력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이 경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오로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만이 목표가 되어버린다면 그 사회는 결국 패배자만 양성할 뿐이고 그들은 패배에 의해 자신에게 의무적으로 지워진 일을 하는 사람들로 규정되어져 버린다. 그런 사회가 잘 기능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김범진 작자의 책 <1,250℃ 최고의 나를 만나라>에 보면 좋은 도자기가 만들어 지는 과정이 담겨 있다.
"훌륭한 도자기가 아닌 그저 그런 질그릇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가마의 온도는 800℃ 정도이기 때문에 가마가 없는 노천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도자기를 만들려면 반드시 1250℃이상으로 불을 지펴야 한다고 한다. 1250℃가 넘으면 장인들이 이야기하는 자화(磁化)라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흙의 밀도가 놀랄 만큼 높아지고 단단해 지며, 흙 속에 있던 유리질들이 녹아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즉, 흙이 가지고 있던 최상의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을 세상에 제공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공부를 하는 목적은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서 그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끄집어 내어 최고의 나로 거듭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만들어진 파이를 내가 더 많이 먹겠다고 싸우는 사회가 아니라 그 파이 자체를 더 크게 키워서 모두가 먹고도 넘치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사회로 발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사기극>의 이원석 저자님은 "공부는 우리사회를 비춰주는 창문이다"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공부하는 모습과 교육 시스템은 곧 우리사회를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경쟁문화를 돌아보고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기존 세대가 후배 세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이다.
문득 우리 사회가 이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리의 아이들에게 만들어 놓은 교육이라는 시스템이 의자놀이를 벤치마킹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경쟁이라는 프레임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게임에서 지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아이들은 의자놀이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음악이 멈춤과 동시에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의자에 앉을 수 있을까를 끈임 없이 생각하고 눈치를 보면서 삶을 배워가게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의자에 앉게 되면 앉지 못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게임에서 배제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회는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만으로 굴러갈 수가 없다. 개별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모두에게 득(得)이되는 사회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것은 경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어져야 하는 것이고 상호간에 협력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이 경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오로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만이 목표가 되어버린다면 그 사회는 결국 패배자만 양성할 뿐이고 그들은 패배에 의해 자신에게 의무적으로 지워진 일을 하는 사람들로 규정되어져 버린다. 그런 사회가 잘 기능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김범진 작자의 책 <1,250℃ 최고의 나를 만나라>에 보면 좋은 도자기가 만들어 지는 과정이 담겨 있다.
"훌륭한 도자기가 아닌 그저 그런 질그릇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가마의 온도는 800℃ 정도이기 때문에 가마가 없는 노천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도자기를 만들려면 반드시 1250℃이상으로 불을 지펴야 한다고 한다. 1250℃가 넘으면 장인들이 이야기하는 자화(磁化)라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흙의 밀도가 놀랄 만큼 높아지고 단단해 지며, 흙 속에 있던 유리질들이 녹아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즉, 흙이 가지고 있던 최상의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을 세상에 제공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공부를 하는 목적은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서 그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끄집어 내어 최고의 나로 거듭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만들어진 파이를 내가 더 많이 먹겠다고 싸우는 사회가 아니라 그 파이 자체를 더 크게 키워서 모두가 먹고도 넘치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사회로 발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사기극>의 이원석 저자님은 "공부는 우리사회를 비춰주는 창문이다"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공부하는 모습과 교육 시스템은 곧 우리사회를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경쟁문화를 돌아보고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기존 세대가 후배 세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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