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신고 접수 시작 "진상규명 빨리 됐으면"
[현장] 부산시청-경남도청 접수... 사망자 유치준씨 유가족 신고
"말을 하려면 끝이 없다. 진상규명이 빨리 되기를 바랄 뿐이다."
3일 오전 경남도청 행정과를 찾아 '부마민주항쟁 피해자 신고접수'를 한 천순옥(80)씨가 한 말이다. 천씨는 남편인 고 유치준(1928년생)씨가 부마항쟁 때 사망했다고 신고했다.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아래 부마항쟁위)는 이날부터 경남도청·부산시청(행정과)에서 '부마민주항쟁 신고접수'를 시작했다.
고 유치준씨는 부마항쟁 사망자 가운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신원이 확인된 사람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부마민주항쟁으로 사망자가 없다고 했지만, 당시 시민들 사이에서는 부산·마산에서 시민 3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한사람이라도 억울함 풀어줘야"
유치준씨는 1979년 10월 18일 마산 건설현장에 일하러 났다가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경찰은 보름 뒤 사망 통보를 했으며, 서원곡에 가매장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회장 우무석)는 증언과 자료 등에 근거해 유씨가 부마민주항쟁 때 사망했다고 밝혔다.
천순옥씨는 "남편은 남의 집에서 음식도 안 먹고 잡도 자지 않았고, 내 나이 45살에 남편을 잃었으며, 혼자서 4남매를 키워 시집장가 보냈다"며 "남편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눈물이 날 정도이고, 할 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고인의 큰아들은 "진상규명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서 한 사람이라도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씨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부마항쟁 때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면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 말도 못하고 지내왔다"고 말했다. 천씨는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통해 2011년 9월 남편이 부마항쟁 때 사망했다고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우무석 회장은 "심의위는 예산 부족을 핑계로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데, 거리에 현수막 하나 발견할 수 없다"며 "신고접수를 받는다고 방송광고도 해야 하고, 반상회 회보나 경남도보에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 회장은 "지금은 많이 홍보가 되지 않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원 중심으로 신고접수를 하고 있는데, 더 많은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 최갑순씨는 "아직도 부마항쟁 피해자라고 하면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정부는 더 적극적인 홍보를 해서 신고가 많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고, 신고를 하는 것이 진상규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들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지역 피해자는 15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부마항쟁위는 1차는 3일부터 2015년 1월 30일까지, 2차는 2015년 3월 2일부터 5월 29일까지 신고를 받는다. 접수는 서울 부마민주항쟁위원회와 부산시청·경남도청·창원시청 행정과, 부산경남지역 각 시·군·구청에 하면 된다.
신고자격은 1979년 10월 16~20일 사이, 부산·마산·창원 등 경남 일원에서 유신체제에 대항하여 발생한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한 자', '행방불명된 자', '상이를 입은 자', '질병을 앓거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자', '수배·연행·구금된 자', '공소기각·유죄판결·면소판결․·해직·학사징계를 받은 자' 등이다.
3일 오전 경남도청 행정과를 찾아 '부마민주항쟁 피해자 신고접수'를 한 천순옥(80)씨가 한 말이다. 천씨는 남편인 고 유치준(1928년생)씨가 부마항쟁 때 사망했다고 신고했다.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아래 부마항쟁위)는 이날부터 경남도청·부산시청(행정과)에서 '부마민주항쟁 신고접수'를 시작했다.
고 유치준씨는 부마항쟁 사망자 가운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신원이 확인된 사람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부마민주항쟁으로 사망자가 없다고 했지만, 당시 시민들 사이에서는 부산·마산에서 시민 3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망했던 고 유치준(1928년생)씨의 유족인 큰아들과 부인이 3일 오전 경남도청 행정과를 찾아 "부마민주항쟁 신고접수"를 하고 있다. ⓒ 윤성효
"한사람이라도 억울함 풀어줘야"
유치준씨는 1979년 10월 18일 마산 건설현장에 일하러 났다가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경찰은 보름 뒤 사망 통보를 했으며, 서원곡에 가매장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회장 우무석)는 증언과 자료 등에 근거해 유씨가 부마민주항쟁 때 사망했다고 밝혔다.
천순옥씨는 "남편은 남의 집에서 음식도 안 먹고 잡도 자지 않았고, 내 나이 45살에 남편을 잃었으며, 혼자서 4남매를 키워 시집장가 보냈다"며 "남편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눈물이 날 정도이고, 할 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고인의 큰아들은 "진상규명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서 한 사람이라도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씨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부마항쟁 때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면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 말도 못하고 지내왔다"고 말했다. 천씨는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통해 2011년 9월 남편이 부마항쟁 때 사망했다고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우무석 회장은 "심의위는 예산 부족을 핑계로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데, 거리에 현수막 하나 발견할 수 없다"며 "신고접수를 받는다고 방송광고도 해야 하고, 반상회 회보나 경남도보에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 회장은 "지금은 많이 홍보가 되지 않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원 중심으로 신고접수를 하고 있는데, 더 많은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 최갑순씨는 "아직도 부마항쟁 피해자라고 하면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정부는 더 적극적인 홍보를 해서 신고가 많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고, 신고를 하는 것이 진상규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망했던 고 유치준(1928년생)씨의 유족인 큰아들과 부인 등 부마민주항쟁 피해자들이 3일 경남도청 행정과에 "부마민주항쟁 신고접수"를 하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 윤성효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들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지역 피해자는 15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부마항쟁위는 1차는 3일부터 2015년 1월 30일까지, 2차는 2015년 3월 2일부터 5월 29일까지 신고를 받는다. 접수는 서울 부마민주항쟁위원회와 부산시청·경남도청·창원시청 행정과, 부산경남지역 각 시·군·구청에 하면 된다.
신고자격은 1979년 10월 16~20일 사이, 부산·마산·창원 등 경남 일원에서 유신체제에 대항하여 발생한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한 자', '행방불명된 자', '상이를 입은 자', '질병을 앓거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자', '수배·연행·구금된 자', '공소기각·유죄판결·면소판결․·해직·학사징계를 받은 자' 등이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망했던 고 유치준(1928년생)씨의 유족인 큰아들과 부인이 우무석 부마민주한쟁기념사업회 회장와 함께 3일 오전 경남도청 행정과를 찾아 "부마민주항쟁 신고접수"를 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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