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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되고 영준이는 안 돼? 두 얼굴의 경찰

고 신해철씨의 죽음이 보여준, 한국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현실

등록|2014.11.10 14:13 수정|2014.11.10 14:13
'마왕' 신해철의 죽음이 세간을 흔들었다. 3040세대에게는 허탈감마저 안겼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가 너무 갑자기 세상과 이별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사망원인은 의료사고로 추정되고 있다. 유족측과 병원측의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고 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 비추어볼 때 유족측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모양새다.

▲ 고 신해철씨의 장례식이 열린 지난 5일 오후 고인이 영면할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매형 김형렬씨, 소속사 김재형 이사, 서상수 변호사(앞줄 죈쪽부터)가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 환자들이 의료사고나 의료소송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신해철씨의 경우 비교적 수월하게 유족측 주장이 입증되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는 의무기록을 빠르게 확보했기 때문이다.

환자가 병원에 내원해서 진료만 받아도 의무기록은 작성된다. 수술인 경우, 모든 절차가 기록된다. 중요한 것은 빠른 시일 내에 의무기록을 확보하지 않으면 위조되거나 변조된다는 점이다. 신해철씨 경우에도 의무기록지가 처음과 달랐다. 유족측이 빠진 것이 너무 많다며 항의를 하자, 병원측이 그제야 수기로 적어 넣기도 했단다. 그래도 신씨의 경우는 양호한 편이다.

의무기록 확보와 부검, 의료사고 증명에 중요 요소

지난 2007년 교통사고로 다리 골절 수술 중에 심정지가 와서 반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손영준(당시 고3)군. 영준군의 경우, 마취부터 문제였다. 지정된 선택진료 의사가 아닌 전문의 수련과정에 있던 레지던트(전공의)가 마취를 했던 것. 나중에 영준군의 마취기록을 보니 세 장 중에서 둘째 장의 필체가 확연히 달랐다.

확인한 결과, 수술에 참여하지도 않은 마취과 다른 레지던트가 사고가 난 후 임의로 마취기록 원본을 폐기하고 재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유는 글씨가 엉망이라서 알아볼 수 없어서였다. 상식적으로 원본을 두고서 재작성한 기록을 첨부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그들의 변명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법원은 병원의 주장을 인정해줬다. 

2008년, 1차 병원에서 "일반 결핵이 아닌 것 같으니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라는 말을 듣고 대형병원으로 옮겨 치료 받던 중 사망한 양평모씨도 의무기록 위·변조 의혹 사례이다. 부인 서향순씨가 남편 사망 직후 확인했던 기록엔 '폐렴과 결핵 소견이 보인다"고 적혀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1년 뒤엔 "폐렴처럼 보이는 결핵"이라고 바뀌어 있었다.

달라진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배양균 검사결과 일자도 교묘하게 변경되어 있었다. 병원측은 증거물이 될 수 있는, 1차 병원에서 찍었던 엑스레이(X-ray) 사진도 삭제했다. 서씨는 소송에서 이겼지만, 병원측의 의무기록 위·변조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1차 병원의 소견을 바탕으로 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대한 판결이었다. 언급한 두 건만 살펴봐도 의료사고 발생 초기 의무기록 확보는 중요하다.

서씨는 "저는 간호사여서 의무기록에 대한 위·변조를 알 수 있었지만 일반인들이라면 몰랐을 것"이라며 "그나마 의료관계자여서 진료기록과 처방, 투약, 심전도 등 각종 의료기록 40여 종을 확보해 재판에 임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고 신해철 부검 브리핑최영식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진행된 고 신해철씨 부검 직후 브리핑을 통해 '복막염 및 심낭염에 따른 합병된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우선 판단한다'고 밝혔다. ⓒ 권우성


법무법인 우성의 이인재 변호사는 "병원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소송에 대비해 가급적 자신에게 유리하게 의무기록을 기재한다"며 "문제는 의무기록을 조직적으로 위·변조, 삭제할 뿐 아니라 다른 환자의 것으로 바꿔치기해도, 의학적 문외한인 환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둘째는 부검이다. 죽은 이후 우리 몸에는 '왜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들이 대다수 남아있기 마련이다. 신해철씨도 부검 전에는 사망 원인에 대한 다양한 추측들이 난무했다. 특히 '소장 천공에 의해 염증이 생겼는데, 이 염증이 심장까지 번지면서 죽게 된 것은 아닌가?'라는 주장이 그럴듯해 많은 사람들이 동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부검을 해 보니 직접적 사인은 심낭 천공이었다.

특히 위 축소수술에 대해선 병원측과 유족측 주장이 지금까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부검결과 국과수에서 "위장에 커브가 큰 외벽 부위를 15cm 가량 서로 봉합한 소견을 보인다"고 밝히면서, 유족측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태다. 부검결과가 이렇게 나왔음에도 9일 경찰 조사를 받은 S병원 원장은 "위 축소수술은 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은영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은 "부검하지 않았다면 '의무기록에 누락된 내용과 치료'에 대해서는 시비를 가릴 수도 없었고, 엇갈린 양측 주장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도 힘들었을 것"이라며 "부검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아직 유교적 전통이 남아있는 한국 사회에서 시신을 훼손하는 행위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행위로 간주되는 탓에 (부검이) 쉽지는 않다"면서 "(부검은) 의료사고가 생겼을 때, 명명백백히 밝힐 수 있는 방법이고 의료사고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인은 의료사고 때 경찰도움 받기 어려워

독설 속에 철학이 있었던 마왕 신해철. 그런데 그의 죽음조차 우리 사회에 '독설'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자들이 얼마나 불리한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형사고소를 하지 말라'는 말이 돈다. 그만큼 그 과정이 어렵고, 소송에 지게 되면 민사소송에도 불리하기 때문이다.

신해철씨 경우는 어떨까. 언론보도 상으로는 S병원의 처벌은 피해가기 어려워 보이지만 확신을 하기에는 이르다. 명확한 것은 의무기록을 확보하고 부검을 한 일반인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 보통 일반인들이 의료사고를 당해 형사고소를 하면 경찰은 몇 차례 관계자 소환 질문과 단순한 의사협회 자문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사진은 고 김유비군의 아버지 김기후씨의 모습.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지난 2013년 8월 열감기로 전북 익산의 한 병원에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김유비(당시 8세)군의 아버지 김기후씨는 형사고소 후 조사 과정에서 더 절망했다고 한다. 의무기록을 확보하고 부검을 하는 등 6개월 반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지만, 경찰은 관계자를 소환해 질문만 한두 번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의사협회 자문을 얻는 수준에서 조사가 마무리 됐다. 결론 역시 '내사 종결'. 문제는 김씨의 사례가 특별하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해철씨 경우, 송파경찰서에 유족측의 고소장이 접수되자마자, 경찰이 이례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압수수색을 했다. 의무기록과 증거물 확보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국과수의 부검 기간도 짧았다.

2차로 옮겨진 아산병원의 자료도 확보되어 종합적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병원 측이 발뺌한 사진도 확보했다. 이 사진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S병원이 존재 여부를 부정했던 자료다. 뿐만 아니라 수술 동영상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관련 데이터를 관리하는 업체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동영상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유명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손영준군의 아버지도 마취과와 정형외과 의무기록에 적힌 수술 시간이 달라 이를 확인하고자 했다. 우선 어떤 기록이 맞는지 알려면 아들의 심전도 기록과 수술실 폐쇄회로(CCTV) 영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심전도 기록이 없다"면서 주지 않았다. 손군 아버지는 CCTV 영상도 받아낼 수 없었다. 경찰과 검찰도 압수수색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고소사건에서 병원 측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의사진술이 담긴 형사기록지에 담긴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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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수사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의료사고 수사전담반 설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법무법인 제현의 구영신 변호사는 "형사고소를 하게 되면 경찰이 육하원칙에 따라 의사진술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며 "아무리 의학지식이 없더라도 이것만이라도 성실하게 지켜주기만 한다면 진료기록과 환자 진술로만 진행되는 민사소송에서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하며 경찰 수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화를 소개했다.

구 변호사가 말한 사례는, 잦은 기침 때문에 병원을 찾았던 20대 여성이 조직 검사를 하러 들어갔다가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병원 수술 기록에는 조직검사 도중 폐동맥고혈압이 높아 출혈쇼크가 와서 어쩔 수 없이 개흉을 했다고 적혀있었다. 당연히 감정결과도 좋지 않아 민사소송 승소는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의사진술이 담긴 형사기록지에 반전이 담겨있었다. 형사기록지엔 '몇 시에 어떤 수술을 왜 했는지'가 상세히 담겨 있었는데, 그 결과 조직검사를 하지 않은 채 바로 수술에 들어갔음이 밝혀졌다. 결국 형사기록지가 증거로 채택되면서 소송 방향은 '환자가 동의하지 않은 수술'로 잡혔고, 환자측은 재판에서 유리한 지점에 설 수 있게 됐다.

구 변호사는 "환자의 말은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못하지만 수사기록은 인정된다"며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들이 의료인의 과실여부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사고 가해자의 진술조서를 받을 수 있는 경찰 조사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나 유족이 병원에서 쉽게 진료기록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진실규명의 중요한 증거인 CCTV 등은 임의로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 법원에 증거보존 신청을 해야 한다"라며 "문제는 법원을 통해 증거보전 절차를 거쳐 증거를 확보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병원이 그 사이 (자신들에게)불리한 증거자료를 없애버릴 확률이 높다"라고 우려했다.

안 대표는 이어 "만약 경찰이 신해철씨 사건처럼 신속히 압수수색을 진행하면 그만큼 신속하게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 진실 규명이나 공정한 의료소송 판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라며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중장애를 입었고 의료사고 개연성이 있는 형사고소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신속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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