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이용해 4층까지 오르라니... 수강 포기했다
여전히 갈길 먼 '장애인 접근권'... "'모두의 문제'로 생각해야"
변재원(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씨는 지난 9월 학점 교류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철학' 수업을 들으려 했다. 하지만 수업 거부서를 교수에게 제출하고 수강을 포기해야만 했다.
수업이 배정된 곳은 외대 인문과학관 4층. 인문과학관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지체 3급 장애인인 변씨는 수업 첫날 목발을 이용해 강의실로 가야 했다. 전공 서적을 들고 목발로 4층까지 오르는 일이 변씨에겐 벅찰 수밖에 없었다.
변씨는 지난 5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학기 교재를 들고 다니며 수업을 듣기엔 너무 힘들다"며 수강 포기 이유를 설명했다.
"교재까지 들고... 너무 힘들다"
우리나라 대학은 불과 10여년 전부터 장애 학생의 접근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01년 지체장애 1급 박지주씨는 모교인 숭실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998년 숭실대에 입학한 박씨는 학교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를 요구, 교육권의 평등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박씨가 자주 수업을 들었던 인문관은 당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수업이 3층과 4층에 열리는 날이면 같은 학과 학생들이 휠체어를 들고 올라가야 했다. 승소 판결로 박씨는 위자료 25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큰 결실은 장애학생이 동등한 권리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대학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지난 2007년 지체장애 1급 김예솔씨가 서울대에 입학했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김씨가 총장에게 편의시설 설치를 요청하자, 학교는 그제야 문제를 인식하고 장애인의 이동을 도울 엘리베이터 41개와 경사로 53곳을 설치했다. 2012년 경희대는 지체장애 2급 한수인씨가 수업을 들을 정경대학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건립된 지 30년이 지난 정경대학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었다.
오늘날에도 여러 대학이 장애 학생의 '접근권'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 한국외대엔 변씨가 수강을 포기한 인문과학관 이외에 사회과학관(5층), 국제관(6층)과 대학원(5층) 건물에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없다. 한국외대만의 일은 아니다. 건국대 서울캠퍼스는 건물 29동 중 8동(약 28%)이, 이화여대는 38동 중 10동(26%)이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됐지만...
'장애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은 어떨까. 40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장영준씨는 선천적 뇌병변 장애를 겪고 있다. 장씨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과 결혼도 했지만 선진국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한다.
산타모니카 컬리지(Santa Monica College)에서 대학을 다니는 장씨는 지난 8일 "대략 스무개 남짓 건물이 캠퍼스에 있는데, 대부분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며 "여기는 학교 건물뿐 아니라 2층 상가건물 조차도 법에 따라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대통령령 제8조'에 의거, 장애인이 교육 기관 내에서 이동, 접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설과 이동 수단 등을 마련해놓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반해도 사실상 단속은 없고, 차별받은 당사자가 직접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에 대해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8일 "많은 장애인들이 차별을 당해도 싸우기가 어려워 문제 제기를 포기한다"며 "진정서를 내는 것도 그렇고, 말싸움 등 밀고 당기기가 힘겨우니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 받은 당사자가 국가인권위원회나 사법기관에 진정해야 사건이 성립한다"며 "차별을 받은 당사자가 강력히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많은 장애인이 그 단계까지 안 간다"고 지적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 행위를 시정할 수 있는 명령 제도를 담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어느덧 7년이 됐지만 법원이 판결로 접근권 관련 시정 명령을 내린 경우는 없다. 이런 현실 또한 대학에서의 장애인 접근권 확보를 어렵게 한다.
"접근권 문제, 대학-장애인 간 싸움 아냐"
접근권에 대한 사람들의 낮은 인식도 문제다. 변재원씨는 "인문과학관 경비원에게 엘리베이터가 왜 없는지 물었더니 '15년 근무하면서 이런 문제 제기는 처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캠퍼스의 접근권 문제는 장애인만이 체감하고 인식해야 하는 문제로 봐선 곤란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조문순 센터장은 7일 "장애 학생이 있든 없든,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학생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며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로 장애인뿐 아니라, 유모차 끄는 어머니도 함께 이용이 가능해졌다"고 접근권은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장영준씨는 "아무리 시설이 좋고, 차별금지법이 강력하다고 해도 사람들의 인식이 올바르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라며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는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미국에선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때 장애인이 버스에 오르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탑승하지 않고, 상황을 모르는 누군가 버스를 타려고 하면 운전기사가 저지한다고 한다.
장씨는 "기사는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고 손수 안전벨트와 고정장치를 채워준다"며 "이러는 동안 1~2분이 소요되지만 승객 어느 누구도 불평하거나, 짜증스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어딜 가나 장애인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또 엘리베이터를 탈 때, 긴 줄을 설 때도 맞은편에서 오는 휠체어를 발견한 행인은 한쪽으로 비켜서 장애인을 먼저 보낸 다음에 갈 길을 간다고 했다. 장씨는 "전동 휠체어에 부딪히거나 바퀴에 발이라도 끼면 위험한데도 우리나라에선 휠체어에 들이대듯이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수업 접근권은 비단 '강의실을 갈 수 있느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학생활은 학술 자료를 얻고, 담당 교수의 조언을 받고 기숙 생활하는 것 등을 포괄한다. 대학에 같은 등록금을 낸 장애인이 강의실뿐 아니라 도서관과 식당, 기숙 시설 등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는지,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피가 가능한지 등도 접근권 범주 안에 들어간다.
변재원씨는 "장애인이 단순히 강의실에 접근할 수 있는지 따질 게 아니라 대학 생활을 동등하게 할 수 있느냐를 바라봐야 한다"며 "대학은 엘리베이터 설치 등 시설 보충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장애인과 연대도 희망했다. 변씨는 "접근권 문제를 대학법인과 장애인 개인의 싸움으로 볼 건 아니다"며 "비장애인도 관심을 가지면 장애인 혼자 극렬한 저항과 법적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걸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업이 배정된 곳은 외대 인문과학관 4층. 인문과학관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지체 3급 장애인인 변씨는 수업 첫날 목발을 이용해 강의실로 가야 했다. 전공 서적을 들고 목발로 4층까지 오르는 일이 변씨에겐 벅찰 수밖에 없었다.
변씨는 지난 5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학기 교재를 들고 다니며 수업을 듣기엔 너무 힘들다"며 수강 포기 이유를 설명했다.
"교재까지 들고... 너무 힘들다"
▲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 건물에서 장애인은 계단이라는 벽과 마주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설치가 안 된 한국외대 사회과학관의 계단이다. ⓒ 고동완
우리나라 대학은 불과 10여년 전부터 장애 학생의 접근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01년 지체장애 1급 박지주씨는 모교인 숭실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998년 숭실대에 입학한 박씨는 학교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를 요구, 교육권의 평등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박씨가 자주 수업을 들었던 인문관은 당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수업이 3층과 4층에 열리는 날이면 같은 학과 학생들이 휠체어를 들고 올라가야 했다. 승소 판결로 박씨는 위자료 25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큰 결실은 장애학생이 동등한 권리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대학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지난 2007년 지체장애 1급 김예솔씨가 서울대에 입학했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김씨가 총장에게 편의시설 설치를 요청하자, 학교는 그제야 문제를 인식하고 장애인의 이동을 도울 엘리베이터 41개와 경사로 53곳을 설치했다. 2012년 경희대는 지체장애 2급 한수인씨가 수업을 들을 정경대학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건립된 지 30년이 지난 정경대학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었다.
오늘날에도 여러 대학이 장애 학생의 '접근권'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 한국외대엔 변씨가 수강을 포기한 인문과학관 이외에 사회과학관(5층), 국제관(6층)과 대학원(5층) 건물에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없다. 한국외대만의 일은 아니다. 건국대 서울캠퍼스는 건물 29동 중 8동(약 28%)이, 이화여대는 38동 중 10동(26%)이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됐지만...
▲ 지상 5층 규모의 경희대 문과대학 건물이다. 이 건물은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철학과 등 전공 수업을 들을 강의 공간이 밀집돼 있으나 장애인의 이동을 도울 엘리베이터는 설치가 안 돼 있다. ⓒ 고동완
'장애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은 어떨까. 40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장영준씨는 선천적 뇌병변 장애를 겪고 있다. 장씨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과 결혼도 했지만 선진국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한다.
산타모니카 컬리지(Santa Monica College)에서 대학을 다니는 장씨는 지난 8일 "대략 스무개 남짓 건물이 캠퍼스에 있는데, 대부분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며 "여기는 학교 건물뿐 아니라 2층 상가건물 조차도 법에 따라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대통령령 제8조'에 의거, 장애인이 교육 기관 내에서 이동, 접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설과 이동 수단 등을 마련해놓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반해도 사실상 단속은 없고, 차별받은 당사자가 직접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에 대해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8일 "많은 장애인들이 차별을 당해도 싸우기가 어려워 문제 제기를 포기한다"며 "진정서를 내는 것도 그렇고, 말싸움 등 밀고 당기기가 힘겨우니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 받은 당사자가 국가인권위원회나 사법기관에 진정해야 사건이 성립한다"며 "차별을 받은 당사자가 강력히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많은 장애인이 그 단계까지 안 간다"고 지적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 행위를 시정할 수 있는 명령 제도를 담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어느덧 7년이 됐지만 법원이 판결로 접근권 관련 시정 명령을 내린 경우는 없다. 이런 현실 또한 대학에서의 장애인 접근권 확보를 어렵게 한다.
"접근권 문제, 대학-장애인 간 싸움 아냐"
▲ 미국의 한 대학에선 장애인의 이동을 도울 엘리베이터 설치는 물론, 휠체어 사용자가 발로 엘리베이터 조작이 가능하도록 해놓았다. (장애인을 위한 통합교육시설 공간계획 가이드 40페이지) ⓒ 지식경제부
접근권에 대한 사람들의 낮은 인식도 문제다. 변재원씨는 "인문과학관 경비원에게 엘리베이터가 왜 없는지 물었더니 '15년 근무하면서 이런 문제 제기는 처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캠퍼스의 접근권 문제는 장애인만이 체감하고 인식해야 하는 문제로 봐선 곤란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조문순 센터장은 7일 "장애 학생이 있든 없든,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학생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며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로 장애인뿐 아니라, 유모차 끄는 어머니도 함께 이용이 가능해졌다"고 접근권은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장영준씨는 "아무리 시설이 좋고, 차별금지법이 강력하다고 해도 사람들의 인식이 올바르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라며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는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미국에선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때 장애인이 버스에 오르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탑승하지 않고, 상황을 모르는 누군가 버스를 타려고 하면 운전기사가 저지한다고 한다.
장씨는 "기사는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고 손수 안전벨트와 고정장치를 채워준다"며 "이러는 동안 1~2분이 소요되지만 승객 어느 누구도 불평하거나, 짜증스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어딜 가나 장애인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또 엘리베이터를 탈 때, 긴 줄을 설 때도 맞은편에서 오는 휠체어를 발견한 행인은 한쪽으로 비켜서 장애인을 먼저 보낸 다음에 갈 길을 간다고 했다. 장씨는 "전동 휠체어에 부딪히거나 바퀴에 발이라도 끼면 위험한데도 우리나라에선 휠체어에 들이대듯이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수업 접근권은 비단 '강의실을 갈 수 있느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학생활은 학술 자료를 얻고, 담당 교수의 조언을 받고 기숙 생활하는 것 등을 포괄한다. 대학에 같은 등록금을 낸 장애인이 강의실뿐 아니라 도서관과 식당, 기숙 시설 등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는지,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피가 가능한지 등도 접근권 범주 안에 들어간다.
변재원씨는 "장애인이 단순히 강의실에 접근할 수 있는지 따질 게 아니라 대학 생활을 동등하게 할 수 있느냐를 바라봐야 한다"며 "대학은 엘리베이터 설치 등 시설 보충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장애인과 연대도 희망했다. 변씨는 "접근권 문제를 대학법인과 장애인 개인의 싸움으로 볼 건 아니다"며 "비장애인도 관심을 가지면 장애인 혼자 극렬한 저항과 법적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걸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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