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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맛 제대로...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꼭 가야할 누리길

[유혜준의 도보여행] 서삼릉누리길과 한북누리길을 걷다

등록|2014.11.11 10:23 수정|2014.11.11 10:23

▲ 한북누리길 ⓒ 유혜준


길 위에 쌓인 울긋불긋한 낙엽들은 가을 느낌을 제대로 풍기고 있었다. 사뿐히 낙엽을 즈려밟으며 걷는 느낌, 아주 좋다. 가을이 가기 전에 가을을 만나야지, 벼르다가 지난주에야 겨우 짬을 내 가을을 만나러 갔다. 가을은 아직 떠나지 않고 길 위에서 서성이고 있다가 반겨주었다.

지난 6일, 고양힐링누리길 '서삼릉누리길'과 '한북누리길'을 이어서 걸었다. 두 코스를 걷는 데 걸린 시간은 4시간 남짓. 불타는 단풍나무와 노란빛으로 잔뜩 물든 은행나무 덕분에 내 눈이 때로는 붉은색으로 때로는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길을 걸으면서 떠나가는 가을 풍경을 눈에만 담은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담고 왔다. 돌아오는 길,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는 묵지근해졌지만 마음이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다.

서삼릉누리길은 원당역에서 출발해 서삼릉을 거쳐 삼송역까지 이르는 길로 전체 길이는 8.28km이다. 한북누리길은 서삼릉누리길이 끝나는 삼송역부터 시작해 여석정과 중고개를 거쳐 북한산 입구까지 이르는 길이다. 전체길이는 6.5km.

▲ 한북누리길 ⓒ 유혜준


시간 여유가 있어서 한 코스만 걷는 게 너무 짧다 싶으면 두 코스를 이어서 걸으면 좋다. 특히 한북누리길은 가을 풍경이 아름다워서 가을이 가기 전에 꼭 걸으라고 권하고 싶은 길이다. 이날, 고양시 녹지과 정창식씨와 최한범씨가 같이 걸었다.

배다리 술박물관을 거쳐 수역이마을로 가는 길, 오가피나무 열매가 까맣게 익었다. 인삼보다 오가피열매가 더 몸에 좋다나. 길 위에 서면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 덕분에 잊고 지내던 것들이 새록새록 기억나고, 지난 추억들도 더불어 떠오른다. 걸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천천히 걸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한양컨트리클럽 옆을 지나고 있었다. 벌써 여기까지 왔나? 전날 밤 땅을 촉촉이 적시는 비가 내렸는데, 걷다보니 햇살이 눈부셨다. 걸으면서 골프장 안을 곁눈질하니 골프를 치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 서삼릉누리길 ⓒ 유혜준


한양컨트리클럽 옆을 지나면 '골프공이 날아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이따금 골프공이 날아와 맞아서 다치는 사람이 있었단다. 그걸 막기 위해 펜스를 쳐놨다. 지금도 가끔 길옆에서 골프공을 볼 수 있단다.

농협대학 앞을 지나는데 정문 뒤로 키가 큰 은행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이 보인다. 햇살을 받은 은행나무 잎은 샛노랗게 보였다. 그 옆으로 키 작은 붉은 단풍나무들이 잔뜩 모여 있다. 가을은 농협대학 정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구나.

서삼릉 옆을 지나는 인도는 울긋불긋한 낙엽들로 덮여 있었다. 낙엽이 지는 계절에는 쌓인 낙엽을 쓸어내지 않고 남겨두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일 것이다. 낙엽을 밟으며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 서삼릉누리길에 있는 거북바위 ⓒ 유혜준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예전에 가을이면 떠올리곤 했던 시인데, 이 대목만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낙엽 밟는 소리가 좋은데, 기대만큼 낙엽이 밟히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발을 살짝 굴러보지만, 쌓인 낙엽의 두께가 얇은 탓인지 소리는 커지지 않는다. 아쉽다.

어디선가 바람이 부는지, 은행나무 잎들이 비가 되어 날린다. 이맘때가 아니면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경이 길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어머나, 딱따구리다. 나무 기둥에 새 한 마리가 달라붙어 구멍을 파고 있었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구멍을 뚫은 새는 우리가 다가가도 경계하는 기색 없이 구멍 파기에 열중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너무 강렬했나? 우리를 힐끗거리면서 보던 새가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새가 파놓은 구멍 안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넓었다.

▲ 서삼릉누리길 ⓒ 유혜준


천일약수터를 지나 숲길로 접어들었다. 거북이 바위를 지나고, 한참을 걷다보니 서삼릉누리길 코스에서 벗어났다. 고양종합고등학교 안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숲길은 가을이 한창이었다.

벽화가 그려진 신도마을을 지나 한북누리길로 접어들었다. 표지판이 사라져 버린 한북누리길은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많이 걸은 사람이야 길을 알지만 처음 이 길을 걷는다면 자칫하면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수지 공사 때문에 가파른 오르막길이 된 구간이 있으니 조심해서 올라가자. 정말 가파르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위험하므로 배수지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걷자. 길 양옆으로 줄을 매어놨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 한북누리길에 있는 여석정 ⓒ 유혜준


여석정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걷는다. 한북누리길은 북한산을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한북정맥의 일부 구간이라서 그런지 숲길이 아주 좋다. 수북이 쌓인 나뭇잎은 발밑에서 소리를 내면서 부서진다. 누런빛으로 변한 참나무, 상수리나무 잎들이다. 제대로 잘 마른 것 같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곳에 흩어진 나뭇잎들은 가루가 되었고, 길옆으로 흩어진 나뭇잎들은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길인 줄 알았더니 이 길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모양이다.

▲ 한북누리길 ⓒ 유혜준


다섯 시가 가까워져 오자 숲길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할 때는 햇살 때문에 따듯했는데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에 느껴진다. 서늘한 한기가 공기 사이로 퍼져나가다가 피부에 닿아 멈칫하는 것 같다.

한 때 흥국사 등지로 스님들이 많이 지나가 중고개로 불렸다는 고개에서 잠시 멈췄다. 참나무 일색이던 숲에 불이 붙은 듯 붉은 단풍나무가 무리지어 서 있었다. 길도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붉은색은 마음을 뒤흔든다. 마음이 설레게 한다. 사진기에 붉은 풍경을 담아가지만 마음속에 담긴 빛깔이 더 붉다는 걸 안다.

올 가을 한북누리길의 빛깔은 핏빛을 연상케 하는 붉은빛이다. 가을이 가는 것이 서러워 붉은빛으로 물들었는가, 길이여. 일영로를 건너 다시 찾아들어간 숲길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날은 걸으면서 자연의 빛깔을 아주 제대로 마음에 품는구나, 싶었다.

매년 맞이하는 가을이지만 맞이할 때마다 마음이 설레고 보낼 때마다 안타까운 건 무슨 까닭일까? 가는 계절은 다시 오는 것 같지만 새롭게 오는 계절은 이전에 만났던 계절이 아니기 때문이련가.

▲ 낙엽이 수북이 쌓인 한북누리길은 걷는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길이었다. ⓒ 유혜준


북한산 입구까지 꼬박 4시간을 걸었다. 걷는 것에 익숙해진 덕분인지 걸으면서 쉰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데도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는 묵지근해졌다. 몇 번이나 거듭 걸었던 길이지만 걸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건, 길이 늘 같은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걷을 때마다 내 마음 역시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서삼릉누리길 8.28km
원당역 - 배다리 술박물관 - 수역이마을 - 서삼릉 - KRA 경마교육원 - 천일약수터 - 삼송역

한북누리길 6.5km
삼송역 - 여석정 - 옥녀봉 - 중고개 - 북한산 온천 - 북한산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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