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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선생님이 쟤랑 놀지 말래"

[엄마는 육아휴직중⑬] 유치원 선생님의 이유있는 생활 규칙

등록|2014.11.11 17:02 수정|2014.11.11 17:02
지난 2월 제 회사의 갑작스런 인사 결정에 따라 이사를 하고, 아이는 새로운 유치원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사하는 곳 인근 유치원들은 정원이 모두 꽉 차 조기 입학이라도 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병설유치원 대기자 2번이었는데 유치원 입학식 당일, 극적으로 병설유치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녀석은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하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첫 달은 묵언수행하듯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둘째 달과 셋째 달은 얼음공주가 되어 율동시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에도 발표를 하겠다고 손을 드는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제 육아휴직이 결정되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평소와는 조금 다른 편안한 방학을 보내고 2학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이의 '묵언수행과 얼음공주' 역할놀이는 2학기 때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들에게도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놀면 사소한 놀이도 재미있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도 '꺄르르 꺄르륵' 웃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얼음공주 둘째에게도 그런 친구가 생겼습니다. 유치원 끝나고 한두 번씩 서로의 집에서 놀기도 하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터라 시간을 맞춰 함께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습니다.

"엄마, △△는 내가 유치원에 처음 왔을 때 제일 먼저 말도 걸고 놀이하자고 했던 친구야."

둘째의 단짝친구는 새로운 곳에 이사 온 아이에게 재미를 찾아 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께서 새로운 규칙을 정하면서 어기면 벌칙스티커를 준다고 했다고 말하며 아이는 시무룩해졌습니다.

"○○는 △△랑 유치원에서 놀면 안돼. 선생님이 걔랑 놀지 말라고 하셨어."
"뭐라구? 선생님이 그러셨다구?  왜? 아니, 친한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놀아야지. 왜 갑자기 놀지 말라구 그러셨지?"

선생님이 친한 친구와 놀지 말라고 한 이후 둘째 아이는 다소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유치원 하원 시간이면 둘은 헤어지기가 싫어서 "△△네 집에서 같이 놀면 안돼?"를 외치며 아쉬워했습니다.

그렇게 두어달이 지나고 지난주 유치원 상담시간에 선생님과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관심은 아이의 개인적인 발달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내린 '친한 친구와 놀지 말라'는 규칙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슬쩍 돌려 물었습니다. 

"선생님, 근데 저희 아이가 △△랑 많이 친하죠? 근데 요즘은 같이 많이 못노나 봐요."
"호호, 예 맞아요. 제가 놀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어른들도 그렇지만 친한 친구하고만 놀려는 경향이 있어요. 놀이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일정기간 동안 친한 아이들이랑 놀면 벌칙스티커를 준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많이 못 놀았다고 했을 거예요."

'그래두 그건 좀 너무 한 거 아닌가? 강제로?'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선생님의 얘기가 이어졌습니다.

"혹시 요즘 유치원의 다른 친구 얘기 안 하나요? 그죠, 하죠?"

그러고보니 얼마전부터 다른 친구 이야기를 부쩍 많이 했습니다.

"엄마 누구는 그림을 잘 그리고 또 누구는 블럭을 잘해요. 고누놀이라구 알아요? 누구는 그걸 너무도 잘해요. 선생님도 이겨요."

유치원의 다른 친구 이름을 대며 그 친구들의 특징과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익숙한 것만 바라 보잖아요. 바로 옆에 있어도 안 보던 것은 보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벌칙스티커를 준다고 엄포를 논 건 좀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곁에 늘 있는 다른 친구들, 그리고 다른 놀이를 아이 눈에 들어오게 하고 싶었어요. 친하고 좋은 건 제가 억지로 못하게 해도 보이고 결국은 가까워지 거든요."

유치원 선생님과 마주하면 뭔가 하나하나 따져 물어야지 했던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도 어렸을 적에 저렇게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있었더라면'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면 좋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친한 사람들과 익숙한 생활을 해 나가면서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고 배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그런 것이 몸에 배여 새로운 것을 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단짝 간만에 뭉친 그녀들 ⓒ 김춘미


유치원 선생님과의 면담 이후 아이의 개성과 장점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찾고 기르도록 했던 이전의 어린이집과 비교하며 아쉬워만 하던 새 유치원에 대한 생각이 믿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참 늦게도 깨달았습니다. 2학기가 되고 아이가 얼마 후면 졸업한다고 졸업사진을 찍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생활규칙이 조금 완화된 것인지 요즘에는 놀이시간에 친한 친구와 같이 놀아도 된다고 했다네요. 그래서인지 2학기 공개수업에 간 날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신이 나서 놉니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는 이렇게 소리치며 유치원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엄마, 나 이따가 늦게 데리러 와요. 나 좀 많이 놀다 올 거야!"

몇 개월 전, 묵언수행과 얼음공주 놀이를 하던 그 애가 맞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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