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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자리 밀어내는 기계, 망치로 부숴야 할까

[서평] 인간과 기계의 공생... 장미빛 미래 가능할까 <제2의 기계 시대>

등록|2014.11.12 14:18 수정|2014.11.13 09:22
'무어의 법칙(Moore's law)'은 반도체 집적 회로의 성능이 18개월 마다 2배로 증가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인텔의 공동 설립자로 유명한 고든 무어가 1965년에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에 실은 한 논문에서 유래했다.

무어의 법칙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진보를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책 <제2의 기계 시대>는 컴퓨터 기술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놓았다. 이를 통해 무어의 법칙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 <제2의 기계시대> ⓒ 청림출판

1996년 미국 정부는 55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슈퍼 컴퓨터 '아스키레드(ASCI Red)'를 개발한다. 150제곱미터의 면적(테니스장의 80퍼센트에 해당하는 크기)을 채우는 캐비닛 100개 규모의 컴퓨터였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가 된 아스키레드는 시간당 800킬로와트의 전기를 썼는데, 이는 약 800가구의 평균 전력 소비량에 해당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9년 뒤, 1.8테라플롭스의 속도를 자랑하는 아스키레드에 맞먹는 컴퓨터가 개발되었다. 소니가 비디오 게임자를 위해 개발한 '플레이스테이션3'이었다. 아스키레드와 똑같은 성능을 지녔지만 가격은 500달러에 불과했다. 차지하는 면적 또한 10제곱센티미터가 안 됐으며, 사용 전력도 200와트에 지나지 않았다. 아스키레드는 2006년 가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3은 세계적으로 약 6400만 대가 판매되었다.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라는 부제가 붙은 <제2의 기계 시대>는 디지털 기술이 열고 있는 제2의 기계 시대를 분석하고 전망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제1의 기계 시대는 와트의 증기기관(1775년)이 열었다. 저자는 제1의 기계 시대가 인간의 근력을 강화함으로써 인류 사회 발전과 세계 인구 증가에 유례없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디지털에 의한 제2의 기계시대

이와 달리 저자는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제2의 기계 시대가 우리의 정신적 능력을 크게 강화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들 변화로 말미암은 문제는 없는가. 우리는 그와 같은 시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저자는 제2의 기계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글 머리에 소개한 컴퓨터 기술의 기하급수적 성장 외에 디지털 정보, 재조합 혁신 등을 든다. 저자는 이들 세 가지 특징이 최근의 예상과 이론을 초월하면서 과학 소설을 일상적인 현실로 바꾸는 돌파구를 열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율 주행 자동차나 인간형 로봇, 음성 인식 및 합성 시스템, 3D 프린터 등은 그 초보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저자는 기계(인공) 지능과 네트워크 지능의 힘이 본격화하면 인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제는 그런 세상이 우리에게 진정한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1주일 내내 24시간 일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가 공장에서 일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지치지도 않고 불평도 모르는 그들에게 밀려 원래 공장에 있던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밀려나게 되지 않을까. 저자는 미래의 기술이 풍요를 증대하는 것 못지않게 격차도 키울 것이라 예측했다.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기계가 더 발달할수록, 비슷한 기능을 지닌 인간의 임금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과 경영 전력이 주는 첫 번째 교훈은 가까운 대체물과 경쟁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이 비용 우위에 있다면 더욱더 말이다. (230쪽)

물론 저자에 의하면 기계와 직접 경쟁할 가능성이 적은 직업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요리사나 정원사, 수리공, 목수, 치과의사, 가정 간호사 등이 단기간에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적은 직업 목록의 예들이다. 이들 모두 많은 감각 운동 작업을 수반하며, 아이디어 떠올리기나 큰 틀의 패턴 인식, 복잡한 의사소통 기능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4대의 입체 카메라를 장착한 인간형 로봇이 수건 한 장을 개는 데 걸린 시간이 1천 478초, 즉 24분이 걸렸다는 사례를 보면 인간이 마냥 한가하게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기하급수적 기술 성장 덕분에 그 시간이 2.4분이나 24초 이내로 줄어들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기계 시대 도래를 위한 제언

어떻게 해야 하나. 19세기 초 제1차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자동 방직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한 한 무리의 영국 직물 노동자들이 레드 러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여 공장과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 운동 같은 것을 벌이기라도 해야 할까.

제2의 기계 시대를 유토피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자는 기술 발전에 따른 격차 증대나 실업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비록 원론적인 정책 권고 수준에 머무는 것처럼 보이지만, 풍요를 늘리고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꼼꼼하게 짚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강화와 기업가 정신에 따른 기업 혁신, 과학자 지원, 현명한 과세 제도 등이 그 대표적인 내용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제2의 기계 시대의 미래를 위한 제언 부분이다. 기본소득세제와 역소득세제에 관한 내용이 특히 그렇다. 기본소득세제는 모든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제도다. 정부가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주어야 하는지 조사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해마다 전국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액수의 돈을 나눠주는 식이다. 매달 우리 돈으로 1인당 300만 원가량의 기본 소득을 보장하는 내용의 안건에 대해 국민 투표가 진행될 예정인 스위스의 예를 떠올리면 좋겠다.

역소득세는 소득이 손익 분기점보다 낮을 때 그 중 일부를 정부로부터 지급받는 세금 제도다. 가령 소득 공제 기준이 3000달러이고 역소득세율이 50퍼센트인 경우, 2000달러를 버는 사람은 정부로부터 1000달러(역과세 대상 소득)에 0.5(역소득세율이 50퍼센트이므로)를 곱한 값인 500달러를 받으므로 연간 총소득이 2500달러가 된다. 소득이 0인 사람은 역과세 대상 소득이 3000달러이므로 정부로부터 1500달러를 받게 된다.

기본소득세제나 역소득세를 포함해 저자가 제시하는 방안과 미래를 위한 제언들은 제2의 기계 시대에서 풍요의 증대에 따라 함께 늘어나는 격차를 줄이기 위한 것들이다. 물론 문제는 이와 같은 경제적인 격차에만 있지 않다. 저자는 디지털 세계가 구조적으로 대단히 복잡하고 치밀하기 때문에 많은 위험과 약점을 안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사회학자 찰스 페로가 '정상 사고'라고 명명한 부정적인 연쇄 효과가 있다. 처음의 사소한 결함이 예측하지 못한 연쇄적인 사건들을 통해 확대되면서 훨씬 더 큰 규모의 피해를 일으키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한 해킹이나 범죄 표적의 문제도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제2의 기계 시대가 안고 있는 어두운 그늘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눈길은 제2의 기계 시대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에 더 크게 쏠려 있다. 이유가 뭘까. 저자는 기술이 운명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제1의 기계 시대가 화학 결합에 갇힌 에너지를 해방시켜 물질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제2의 기계 시대는 진정으로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힘을 해방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 세대는 역사상 그 어떤 세대보다도 세상을 바꿀 기회를 더 많이 물려받았다. 그것이 바로 낙관론을 펼치는 근거이지만, 그 낙관론은 우리가 사려 깊게 선택을 할 때만 가능하다. (323쪽)

인간이 똑똑한 기계에게 밀려나는 모습은 더는 공상과학영화만의 소재가 아니다. 기계와 함께 달리는 법을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인간과 기계의 공생을 고민하게 하는 이 책이 유용한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제2의 기계 시대>(에릭 브린욜프슨 외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14. 10. 14. / 382쪽 /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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