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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졌다고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 아름다운 양평 세미원의 늦가을 풍경

등록|2014.11.12 21:05 수정|2014.11.12 21:05
수능을 하루 앞 둔 12일, 시간을 내서 양평 세미원을 찾았다. 지난 여름에 연꽃을 구경하러 오고 싶었지만, 연꽃을 보고 즐길 만큼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러질 못했다. 마음의 정리가 거의 끝나니 연꽃은 지고, 그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연꽃의 변화, 쓸쓸하지만 운치 있다

여름 동안 연꽃이 만발할 때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가을 세미원은 한적하다. 평일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세미원에서 마주친 사람이 10여 명 남짓이었다. 조금 쓸쓸할 만도 하지만, 세미원의 가을 정취를 제대로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가끔 사람의 인기척에 놀란 새들이 느닷없이 날아올라 오히려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데, 이 녀석들이 보면 사람이 침입자일 것이다.

세미원이제 세미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이 새들이 아닐까요? ⓒ 이경운


국사원과 장독대분수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가을 숲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세미원을 물과 꽃의 정원이라고 하는데, 입구는 영락없이 아름다운 숲의 모습이다. 숲길을 따라 물과 함께 흐르면 나타나는 것이 장독대분수인데, 운이 좋으면 장독대들이 물을 뿜어 올리는 재미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세미원연꽃의 잔해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 이경운


돌다리를 가로질러 지나가다 멈춰서 가을의 기세에 풀이 죽은 연밭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연잎과 연줄기들이 진한 갈색으로 변색되었고, 줄기의 중간이 꺾여서 물 속에 머리를 박고 있기도 하지만, 이것도 세미원에서처럼 무리를 지어 있으면 그대로 아름다운 가을풍경이 된다. 연밭을 보면서 연꽃의 아름다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화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젊음과 아름다움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미원연꽃은 없지만 그대로 아름다운 풍경이 됩니다. ⓒ 이경운


세미원연꽃의 아름다움은 형태만 바뀔 뿐입니다. ⓒ 이경운


두물머리에는 이미 가을이 지나갔다

세미원에서 입장권을 끊으면 열수주교를 통해 두물머리까지 갈 수 있다. 사진가들이 어지간하면 한번씩 오는 곳이 두물머리인데,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세미원에서 두물머리로 이어지는 열수주교는 배 위에 만들어진 부교이다. 바람이 불거나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조금 출렁거리는데, 세미원에서 즐길 수 있는 작은 스릴이다.
 

두물머리두물머리 느티나무에는 이미 가을이 지나갔습니다. ⓒ 이경운


두물머리의 느티나무에는 이미 가을이 지나간 모양이다. 나뭇잎이 흔적도 없고, 앙상한 가지만 파란 하늘을 향해 뻗고 있는데, 느티나무의 아름다운 단풍을 기대하고 갔다면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물머리의 가을은 강바람이 불어서 더 춥고 쓸쓸한데, 그런 가을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가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세미원사람은 그저 아름다운 가을풍경의 일부일 뿐입니다. ⓒ 이경운


두물머리에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다가 다시 세미원으로 돌아오는데, 바람이 심상치 않다. 강 쪽으로 자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겨울의 전주곡 같았다. 멀리 '사랑의 연못' 쪽으로 몇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대로 가을 풍경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름답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말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세미원참새도 세미원의 가을을 즐기는 것일까요? ⓒ 이경운


세미원의 11월은 슬쓸하기도 하고, 쌀쌀하기도 하다. 그래서 조용히 세미원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이다. 가을에 세미원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지난 여름의 은은한 연꽃 향이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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