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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광화문광장에 책상 304개 놓입니다

[세월호 연장전] 노랑 양지꽃의 빛을 남긴 단원고 아이들을 위해

등록|2014.11.13 20:07 수정|2014.11.13 20:07

▲ 세월호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7일 국회 정문 앞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부러진 손톱, 부러진 날개 
  -팽목을 위한 ode 416

창문마다 창턱마다 분홍의 부러진 손톱이
부러진 날개가 놓여 있었다
봄 소풍 간다고 미용실에서 가다듬은
네 싱그러운 머리카락을 초여름 팽나무 잎사귀는 닮았다

이젠 바라보기에도 고통스러운 말, 팽목

씩씩한 척 지금껏 배워온 수학의 기울기 공식으로
기울어져 가는 배를 분석하고 있는 순간
슬리퍼를 벗어놓고 구명을 기다리는 순간
네 맨발은 불안을 울음을 참고 있었다 

지구의 가장자리를 장난스럽게 걷다가도
엄마가 기다리는 저녁으로
밥 냄새가 나는 식탁으로 무사하게 돌아오던 너
힙합을 추듯 아파트 계단을 두 칸 씩 세 칸 씩
건너 뛰어오르던 리드미컬한 발

낯선 항구에서 오지 않는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영원히 돌아올 것이다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살고 싶어 했던 
너를 그냥 보낼 순 없다
드라이기로 젖은 발을 말리자
너무 배고프니까 밥 먼저 먹고 머리카락 말리자  
또 감기 걸리겠다

그렇게 오래 물속에 바깥에 있지 말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
세상에서 가장 쓴 감기약을 먹이기 전에 
네가 삼키기 싫어하는 알약을 먹이기 전에

이대로 가면, 이대로 네가 가면
살아남은 자들의 손과 발과 심장은
이대로 꽝꽝 얼어붙어버릴 것이다
모든 계절은 추운 계절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대로 네가 가면, 살아남은 자들의 손과 발과 심장은...

마르지 않는 눈물세월호특별법 제정과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며 청와대 인근 청운ㆍ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해 온 세월호 유가족들이 농성 76일째인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이 자리를 떠나 안산으로 돌아간다"며 "시민들의 도움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으며 청운·효자동 주민과 국민께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피에타는 자식을 잃고 '이미 숨진' 어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를 안은 성모의 모습이 비탄을 넘어서 지극한 사랑의 숭고를 보여주는 이유다. 자식을 잃은 모성은 피가 빠져 나간 그림자처럼 목숨을 죄로 여기며 오직 자식에 대한 애도로 남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별아, 달아, 너 없으면 못사는 것 알지? 어서 엄마한테로 돌아와."
"엄마 사랑해요, 내가 살아서는 엄마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이 말을 남겨요."

팽목의 밤바다에서 침몰한 배 안에 있는 아이들을, 엄마들은 태명으로 불렀다. 잘랐던 탯줄을 되찾아서라도 물속의 아이와 자신의 배꼽을 잇고 싶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투로 심장이 터져 애간장이 녹아나는 절규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미개하다'고 평했다. 옛날 사람들은 자식이 아프면 혀로 핥아주었다고 한다. 엄마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그런 모성애를 본 적이 없는 냉혹한 시선으로 인간을 말하지 말라.

그토록 간절히 뼈라도 안아보고 싶어 하던 부모들은 천신만고 끝에 아이를 찾아 안고 돌아가 유골 상자를 집에 하룻밤 재우고서야 남은 장례 절차를 밟았다. 아이를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아이와 함께 죽은 몸으로 반년이 넘도록 거리에 나섰다. 이 땅의 남은 아이들이 제2, 제3의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진실을 규명하는 게 아이가 남긴 숙제라며, 그들은 생전 처음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치며 모진 콘크리트 바닥에서 숱한 밤을 지새웠다.  

2014년 4월 봄꽃 소식 대신 수백 명의 아이들이 뭉텅 사라진 소식이 들려왔다.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아이들이 18년 된 일본산 퇴물 배와 함께 침몰해 십여 개 전체 학급 중 한 반에 한 둘씩 생환하거나 아예 어떤 반은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배가 출항했던 4월 16일 아침의 안개처럼 사건의 본질이 은폐되거나 흐릿하게 감지되는 정황 속에서도 차츰 차츰 드러나는 진실은, 감추지 못하는 속의 말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본으로도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백 명의 존엄한 목숨을 이미 재앙의 전조로 가득 차 있던 배에 태운 부도덕성의 책임을 아무도 지려하지 않는다. 이번 참사를 통해 자본과 욕망의 증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영혼까지 팔아 없앨 의향과 의지로 이글거렸던 우리의 안과 밖을 다 읽어버렸다.

누가 가장 악인인가?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인간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자본의 축적과 재테크에 몰두해 왔다. 새로운 가치를 점검하고 실험해야 할 정치적 리더들은 자본과 권력과 욕망을 포식해 왔다. 선장과 선원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거듭 내보내고 자신들만 아는 통로로 빠져 나왔다. 철석같이 구조될 것을 믿고 배안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있던 아이들을 지나치며 골든타임을 놓친 채, 해경은 내내 가만히 있었다. 정부는 자신들이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부인까지 했다. 우리 국민은 어느 먼 행성의 컨트롤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가슴을 치고 싶은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신원을 숫자로 확인해야 할 때 그 심정은 얼마나 참혹할 것인가. 어떤 천문학적 숫자로도 헤아릴 수 없는 유가족의 슬픔과 절망을 정부와 책임자는 위로하지 못했다. 위로하지 않았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게도 깊은 상처가 남았다. 부모가 자신을 못 찾을까봐 목에 건 아이들의 학생증을 지표 삼아 우리는 여기까지 걸어 왔다. 마지막 순간의 두려움을 나누며 함께 묶은 아이들의 구명조끼의 끈을 잡고 더듬더듬 여기까지 왔다.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친구들의 탈출을 도운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빛을, 노랑 양지꽃 같은 빛을 귀하게 써야 한다.

[세월호, 연장전]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이런 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덮고, 잊고 넘어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에게 세월호는 무엇이었냐는 질문으로,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창작과 기억의 도구로 사용하는 각종 연장들은 어떠해야 하느냐는 물음으로, 11월 15일(토) 오후 1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으로 모이기로 했습니다. 304개의 빈 의자와 책상이 놓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무엇을 잃어버렸고, 잃어가고 있는지 함께 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 <세월호, 연장전> 문화예술인 선언 소셜펀치 페이지(바로 클릭!)
덧붙이는 글 약력: 권현형 1995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중독성 슬픔』『밥이나 먹자, 꽃아』『포옹의 방식』등 출간.『김영태시선집』엮음.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하반기 우수도서.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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