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수능날 만난 아이들

수능의 숨은 일꾼 방송부 1학년 4인방

등록|2014.11.14 11:33 수정|2014.11.14 11:33
입시 한파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추운 날씨였다. 지난 12일 저녁 퇴근길, 수능 시험장 앞에서 몸을 웅크린 채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 학생들은 13일 출근길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올해도 세번 째 수능 감독관을 하게 됐다. 지난 13일 제 23지구 13 시험장(아래 시험장)으로 향하기 위해 새벽 5시 40분에 나왔다. 다른 시험장도 함께 들러 보았다. 시험장 교문 앞에는 남고생들이 수능 응원을 위해 펼침막과 간식을 준비해 선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능 감독은 '잘해야 본전'이라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나는 제 1감독관 한 번, 제 2감독관 두 번을 무난히 끝냈다. 제 1감독관을 할 때는 떨리고 긴장해서 손에 땀이 가득했다. 시험장에서 눈에 띄지 않지만 새벽부터 나와 고생해 준 학생들이 있었다. 해당 학교 방송반 1학년들이다. 이 아이들은 정확한 시간에 예비령, 준비령, 본령, 그리고 종료령을 울리도록 준비했다. 기타 안내 방송을 위한 자질구레한 준비를 모두 챙긴 학생들이다.

본부 요원을 제외한 시험 감독관들이 모두 나간 후에도 방송실에서 마지막 뒷정리를 해준 방송반 학생들을 만났다. 그 중 한 친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성헌(고1)학생에게 방송반으로서 수능 준비를 치룬 소감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정성헌군과 나눈 대화다.

▲ 13일 전날 저녁부터 웅크리고 있었던 학생들이 새벽 6시에도 그 모습 그대로 였다. 수능응원을 위해 시험장 교문앞에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맨 아래쪽 두장의 사진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을 한 학생들이다. 내가 기간제 교사를 할때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다. ⓒ 송태원


- 먼저 자신과 중앙고 방송반을 소개하면?
"열정이 있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 우리 방송반입니다. 1학년 친구들의 열의는 대단합니다. 방송반에 들어와서 배우면서 실수도 하고 방송사고가 날 뻔 한 적도 있지만, 열정 하나만은 내 세울만 합니다. 저는 방송국 PD가 꿈인데, 그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방송반 학생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 그러면 방송반 활동이 할만 하겠네요?
"좋아서, 원해서 하지만, 정말 힘들 때 많았어요. 그래도 선생님들이 응원해 주시고 한 번씩 챙겨준다는 느낌을 받을 땐 어떤 기분과도 비교되지 않는 뭔가가 있어요. 책임감도 생기고... 칭찬해 줄 때는 '내가 대단한가?' 하는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영어 듣기에서 1분 1초가 한 시간 같이 느껴졌습니다. 혹시 실수할까 봐 모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 선배들은 안 보이던데...
"2학년 형들이 우리를 믿어주고, 한 번해 보라고 했어요. 2학년 방송부장 형이 "너네끼리 큰 일 한 번 해보는 게 평소 때 활동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배우는 게 정말 많다"며 "너무 긴장하지 말고 잘해보라"고 맡겨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끼리 할 수 있을까'하면서 못 하겠다고 한 친구도 있었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끝나고 나니 한 편의 스릴러 영화 속에 출연한 느낌입니다."

- 오늘 제일 기억나는 일이 있었다면?
"영어 듣기 할 때 5초간 소리가 안 났습니다. 방송사고라고 생각하고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는데 원래 앞 부분에 소리가 없는 구간이 5초이라는 것을 잠시 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다리가 풀리고 주저 앉아 기절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소리가 났습니다. 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5초였습니다."

▲ 내가 수능 시험 감독관을 했던 제23지구 13시험장의 모습들이다. 제일위 사진은 교문앞이다. 수능응원을 하려고 각 학교 후배들과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나와 있었다. 중간사진은 수험생들이 수험표와 대조하며 고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있다. 맨 아래쪽 사진은 문제지와 답안지 배부처에서 수능 감독관들의 모습이다. ⓒ 송태원


-내년에도 수능 날 나올 생각이 있나요?
내년에도 나오고 싶어요. 종일 이런 긴장감과 짜릿함을 느껴 볼 때가 없어요. 후배들이 나오지 말라고 해도 나갈 겁니다. 저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죠. 성실하고 착한 후배들이 들어오면 저의 이런 경험을 나누고, 제가 알고 있는 걸 가르쳐주며 잊지 못할 추억의 방송반 만들고 싶어요. 힘들었던 만큼 제가 좀 더 큰 것 같았어요.

학생이 꿈인 방송사 피디가 되기를 기대한다. 십여 년 후 정성헌 피디의 멋진 작품들을 볼 날을 기다려 본다.

▲ 시험장의 숨은 일꾼이었던 방송반 4인방이다. 아래쪽 사진은 인터뷰에 응해준 정성헌(고1)의 모습이다. ⓒ 송태원


덧붙이는 글 부산시교육청 블로그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