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마을 허씨 고가 앞, 콘크리트 건물 신축공사로 물의
[디카詩로 여는 세상 39] <하모니>
▲ 테라스 풍경 ⓒ 이상옥
태양이 가로등처럼 붉다
처마 밑 대봉들도
붉은 얼굴을 내민다
-이상옥의 디카시 <하모니>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태양은 떠올라서 세상을 환히 밝힌다. 오늘 아침은 태양이 전선줄에 걸린 것처럼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테라스에 걸어 놓은 대봉감과 함께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어떤 화가 저렇게 정교한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싶다.
내 고향 장산마을이 얼마나 아름답고 전통이 깃든 곳인지 나이가 들어서야 새삼 깨닫는다. 내가 가을 아침 한때를 이렇게 경이롭게 바라보고, 감탄할 있는 것, 그것이 나의 심미안에 기인한다면, 순전히 우리 장산마을의 선물일 것이다.
장산에는 허씨 고가가 있다. 고려말 충신 정절공 호은 허기(貞節公 湖隱 許麒) 선생이 신돈을 탄핵하는 상소 때문에 고성 대섬(현 고성읍 수남리)에 유배를 왔다. 그 후 왕이 신돈을 벌하고 허기 선생을 다시 조정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지금 장산마을에 터를 잡고 살은 것이 허씨 고가의 시발이다. 허씨 고가는 경남도 문화재자료 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허씨 고가 앞에 콘크리트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되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원래 신축 건물 대지는 허씨 고가의 소유였는데, 현 건축주에게 양도한 거였다. 현 건축주는 원래의 건물을 허물고 신축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 장산마을 허씨 고가 앞에 콘크리트 신축건물 공사로 물의를 빚고 있다. ⓒ 이상옥
만약 콘크리트 신축 건물이 허씨 고가 앞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생뚱맞게 된다. 수 백년 이어온 풍경, 하모니가 한 순간 무너져버린다. 제아무리 이리저리 시선을 바꾸어 봐도 이건 아니다.
허씨 고가 소유주 개인이 지키기는 무리... 지자체의 도움 절실
안타깝게도 허씨 고가 소유주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건축 중지할 것을 건축주에게 부탁하고, 고성군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건축주가 법적 절차를 밟아 건축을 하는 입장이어서, 행정적으로 막을 방법은 현재 없다. 어제도 허씨 고가 소유주와 건축주가 만나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는데, 이미, 건축 기초 골조가 올라간 상태라, 허씨 고가 소유주가 이제까지 건축한 비용을 물고, 또한 대토를 하는 형식으로 타협을 모색한다고 한다.
허씨 고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소유주 개인이 지켜내기에는 출혈이 너무 큰 것 같다. 얼마나 많고 많은 시간들이 모여서 오늘, 하나의 정신이 되고, 하모니가 되고 풍경이 된 허씨 고가,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2004년부터 '디카시'라는 새로운 시 장르 운동을 해오고 있는바, 오마이뉴스를 통해 디카시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저는 시인으로 반년간 '디카시' 주간이며 창신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