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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 주부의 지극한 모친사랑, 감동적이었다

[인터뷰] 두 자녀와 중풍 89세 모친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주부 조명숙씨

등록|2014.11.15 14:31 수정|2014.11.15 14:31

조명숙씨그는 중풍으로 쓰러진 모친과 자식들에게 잘해 주위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김철관


피치 못할 일신상의 이유로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자녀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자녀의 뒷바라지와 지극 정성으로 모친께 효도를 하고 있는 주부 조명숙(49, 서울 노원구 월계동)씨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아들 이태초(24, 전 NC야구단선수)와 딸 이혜림(29, 회사원) 그리고 모친 박세순(89)씨와 생활을 하며 따뜻한 정을 나누고 사는 가족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인의 소개로 지난 13일 오후 1시 서울 성북구 1호선 전철 석계역 부근 한 카페에서 주부 조명숙씨를 만나 삶과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며칠 전(지난 10일) 모친이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며 6남매 중 막내인 그가 모친을 모시고 산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집 가까이에서 모친이 살았는데 직접 모친을 모시게 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이다. 6남매 중 큰아들, 작은 아들, 큰언니도 암으로 사망했고, 언니가 둘이 있는데 모친을 모실 형편이 안됐다. 그래서 자연스레 모시게 됐다."

그는 "젊었을 때 미용실을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했다"며 "형제들이 사망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전했다.

"헤어숍을 운영할 때 큰오빠와 작은 오빠가 죽고 큰오빠 부인도 스트레스를 받아 당뇨가 심해져 실명위기에 놓였을 때 가장 힘들었다. 현재 6남매 중 딸 세 명만 남았는데 막내인 내가 모친을 비롯해 가족의 모든 일을 처리해 왔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었고, 이제 모친도 중풍으로 쓰러져 너무 힘들다."

그는 "그동안 모친을 편하게 모시었던 것이 보람이었다"라며 "중환자실에 있는 모친이 설령 병원에서 완쾌되지 않아도 의식만이 있으면 요양원이나 병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편히 모시고 살 것"이라고 피력했다.

조명숙씨인터뷰 도중 조명숙씨가 자식의 얘기를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 김철관


"병원에서 조금 기력을 차리면 간병인이라도 두고 집에서 편안하게 모시겠다. 요양원 비용과 집 간병인 비가 그리 차이도 나지 않는데, 집에서 손녀와 손자를 보면서 생활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모친이 돌아가실 때까지 재미있게 살다가 돌아가시게 해야 후회가 없다."

조씨는 "두 자녀를 키우고 모친을 모시며 지금까지 즐겁게 살았다"며 "모친께 장고도 가르쳐주고, 밸리댄스도 가르쳐 줬는데, 갑자기 쓰러졌다"고 우울해 했다.

"제가 장고도 배우고, 밸리댄스도 배워 모친께 가르칠 때가 너무 행복했다. 올해 89세이지만 모친은 얼마 전까지 정말 건강했다. 하지만 지난 월요일(10일) 모친이 중풍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임원한 후, 충격으로 허전에 집을 못 들어갈 정도이다. 모친의 빈자리가 크고, 항상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온통 집에 모친의 흔적이 남아 너무 슬프다. 그래서 사우나를 하러가 퇴근하는 딸을 기다렸다가 함께 집을 간다."

이어 그는 "목욕탕 사우나를 가서도 모친과 함께 왔던 흔적이 남아 있어 힘들었다"며 "가는 곳마다 엄마의 그림자가 존재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혼자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두 자녀에게 할머니가 만약 반쪽을 못 써도, 살아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워하자고 말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듯 모친이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몸이 완쾌되지 않아도 막내딸 이름을 불러주고, 손자들의 이름을 불러주면 정말 행복하겠다."

조씨는 "지금까지 두 자식들이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너무 잘해 행복했다"며 "자식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아이들한테도 모범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 20~30대는 일만하면서 살았다. 97년 IMF가 터지고 힘들 때 어린 자식들이 무릎을 꿇고 내 손을 잡으면서 '엄마 감사해요'라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여행도 가고, 식당도 가고 여가도 많이 보내는데 엄마는 일 만했다는 의미였다. 커서 많이 돈을 벌어 잘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 엄마의 뜻'이라고 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정말 잘 커 장성했고, 자기 할 일 하면서 지금까지 가족들에게 정말 잘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하고자하는 목표를 세우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며 "아들은 군대에 있지만 가기 전에 야구선수였고, 딸은 홈쇼핑 쇼 호스트를 꿈꾸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도 했다.

"아이들이 뭔가를 해보겠다고 신중히 생각해 선택했으니 자식을 믿고 밀어줄 수밖에 없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노력의 대가가 있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아들은 분명 프로야구 선수가 될 것이고, 딸도 꿈인 홈쇼핑 쇼 호스트가 될 것으로 믿는다."

실제 아들 태초는 정규시즌 프로야구단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NC야구단에 뛰다가 군대에 입대했고, 딸 혜림이는 홈쇼핑 게스트로 일하며 열심히 공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명숙씨는 "한 달 전에 밸리댄스 자격증을 땄다"며 "소외된 노인들의 건강을 위해 무료로 밸리댄스를 가르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업병으로 어깨를 쓰지 못해 밸리댄스를 시작했다. 허리와 몸이 분리가 되는 운동이 밸리댄스이다. 몇 개월을 하다 보니 몸이 완전히 치료가 됐다. 그래서 모친께도 가르쳐 줬다. 더 나아가 밸리댄스를 나만이 위해서가 아니라 소외된 노인들에게도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해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했다. 그래서인지 한 달 전 자격증을 획득했다. 건강하지 못한 노인들을 위해 양로원이나 복지관 등에서 무료 밸리댄스 건강교실을 열고 싶다."

그는 현재 군복무 중인 아들 태초가 지난 2013년초 야구선수시절 밝힌 감동적인 얘기도 들려줬다.

"아들은 대학야구선수로 뛸 때 MVP상을 받고 2012년 NC야구단에 입단해 선수로 뛰었다. 지금은 군대를 갔지만 당시 KBS 다큐멘터리3 '신인왕을 꿈꾸다'에 아들이 나와 기자가 야구글러브에 여자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여자 친구 이름이냐'고 물었다. 아들 태초가 '아니다, 제 어머님 이름'이라고 했다. 기자가 다시 '어떻게 여자 친구 이름도 아니고 어머니 이름을 새기냐'고 묻자, 아들이 '어머니가 뒷바라지하느라 너무 고생을 해, 자기가 훌륭한 선수가 돼 꼭 어머니에게 보답하겠다'고 했다. 정말 텔레비전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프로그램을 보고 태초를 아는 지인들이 나에게 아들이 평소 착실했으니 성공하겠다는 말도 했다. 언젠간 아들이 훌륭한 선수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발언을 보면서 나도 모친에게 더욱 잘해야 되겠구나하는 마음을 먹었다."

그는 "모친에게 잘하니 자식들이 그대로 보고 따라와 좋았다"며 "딸도 정말 효녀"라고 자랑했다.

"딸 혜림이가 고등학교 시절 내가 스트레스 받고 과로로 쓰러질 때가 있었다. 화양동 미용실에서 일할 때였다. 의식을 잃어 건국대 민중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깨보니 딸이 내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딸이 '아무래도 좋으니 엄마가 살아 내 옆에만 있어 달라'고 호소했다. 바로 일어나 링거를 빼고 집으로 가 더 강하게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이때 내가 자식들에게 본보기가 돼야 되겠구나하는 많이 생각을 했다."

인터뷰기자와 이너뷰를 하고 있는 주부 조명숙씨이다. ⓒ 김철관


조씨는 "과거나 현재나 죽고 난 후 후회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함께 재미있게 살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이 나의 철칙"이라며 "후회하지 않고, 마음 아파하지 않으려고 모친과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모친과 나 그리고 자식들은 여행이나 외식을 해도 함께 한다. 지금까지 따로 해본 적이 없다. 지금이나 과거나 어디를 가든 무조건 모친을 모시고 갔다. 자식이 40~50대가 됐어도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부려 모친을 웃게 해주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는 "자식들이 일찍 철이 들어 너무 좋았다"며 "모친이 건강을 빨리 회복해, 이전의 행복한 가정생활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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