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출판사가 '반값 할인' 못하는 이유
[주장] 쏟아져 나오는 '반값 할인' 책들... 도서정가제는 '단통법'이 아니다
▲ 도서정가제 전 온라인서점의 파격할인 11월21일 시작되는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각 온라인 서점마다 파격 할인이 계속되고 있다. ⓒ
출판사의 아침은 서점에서 주문 들어온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요즘은 주문을 확인하러 서점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자꾸만 딴 짓에 빠지고 만다.
'인기도서 최대 90% 할인'
'초특가 도서정가제 전 마지막 할인'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벌어지는, 이런 자극적인 할인 문구에 흔들리지 않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나 아무래도 이 서점에서 파는 책보다 사는 책이 더 많은 것 같아.'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방앗간을 그날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장바구니가 찢어질 듯 담고 또 담는다. 이런 상황이니 최근 한두 달 사이 도서 할인에 지갑이 털렸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출판사는 그 대열에 끼지 못했다. 대폭 할인을 하는 이유가, 안 팔리는 책 재고를 털려고 하는 거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할 것 없이 죄다 시장에 나와 있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책을 팔고 있는데 왜 우리 책은 거기에 없을까.
반값 할인을 '안' 한 게 아니고 '못'한 이유
1인출판으로 출판 일을 시작한 지 8년이 되었지만 반값 할인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다. 근근이, 이제 겨우 22권의 책을 내는 동안 남들이 다 하는 반값 할인이 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할인을 하면 판매량이 금방 오르고 분야 베스트에 오르는데 왜 부럽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출판사 깜냥으로는 도대체 할 수가 없는 거다. 우리 출판사도 반값 할인을 해볼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언제나 결론은 '못한다'였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손익을 맞출 재간이 없다. 서점에서 반값 할인을 한다면, 출판사는 더 낮은 가격으로 서점에 공급을 할 텐데 그렇게 공급을 해서 어떻게 수익을 내는지 모르겠다. 수익이 아니라 유지라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내 계산으로는 적자가 불을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 서점도서 할인률을 15%로 제한한 도서정가제는 고사 직전의 동네서점 등 오프라인 매장을 살릴 수 있일까? ⓒ 김보경
둘째는 우리가 그리 여유 있는 출판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간을 내고 난 후 매출이 생겨야 또 다음 책을 낼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그런데 현행법상 출간 후 18개월이 되면 마음껏 할인을 해서 팔 수 있는데 그렇게 출간된 지 오래된 책들을 반값 할인해서 팔아 버리면 이후 독자들이 신간이 나와도 사지 않고 가격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도 오래된 책을 반값 할인해서 자주 판매하는 출판사의 책은 신간이 나와도 잘 사지 않는다. 조금만 기다리면 반값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왠지 제 돈 주고 사는 게 바보같이 느껴지니까. 과거 우리 출판사도 오프라인 행사 때 온라인 서점보다 10% 정도 싸게 판매한 적이 있는데, 한 독자가 출판사 블로그에 바로 이런 댓글을 남겼다.
'저는 제값에 사서 책장에 곱게 있는데 뭔가 서운한 느낌이네요.'
그래서 셋째 이유는 독자들에 대한 의리다. 우리 같은 구멍가게 출판사가 망하지 않는 건 늘 지켜보고 있다가 신간이 나오면 구매해 주는 독자들 덕분인데 그 독자들을 배신할 수 없다. 그래서 반값 할인을 못한다.
이 정도가 우리 출판사가 반값 할인을 못하는 이유다. 그야말로 출판사가 생존하기 위한 실질적인 이유다. 물론 이외에도 중요한 이유는 많다. 온라인 서점에서의 파격 할인이 오프라인 매장과 동네 서점을 죽게 하는 것도 찬성할 수 없다.
온라인 서점의 메인 화면에 보여 지는 책은 고작 20~30권이고 그 자리에 노출되기 위한 광고비용은 엄청나다. 하지만 매장에 가면 새로 나온 책들 수백 권이 진열되어 있다. 생각지도 않은 책을 만나는 기쁨이 있는, 그래서 출판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서점은 살아남아야 되니까. 또한 우리 출판사의 책을 가격이 아니라 내용을 보고 선택한 독자들에게 보내고 싶은 욕심도 버릴 수 없다.
속도 쓰리고 약도 오르지만...
▲ 동물 전문 출판사의 영업부장 고양이다양한 내용이 책을 내는 작은 출판사가 살려면 제대로 된 도서정가제의 정착은 시급하다. ⓒ 김보경
그래서 종종 대폭 할인을 권하는 서점 MD도 있었다. 그럴 때면 반값 할인의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 출판사의 책은 대중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책은 아니고 그저 동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라도 팔리면 좋으니, 그 분야에서만이라도 상위에 랭크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특히 반값 할인을 한 다른 출판사의 책들이 분야 베스트에 올라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 속이 쓰리다기보다 약이 오른다고 할까? 그런데도 못했다.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반값 할인을 하는 출판사들을 질타하는 것은 아니다. 각 출판사마다 마케팅 방법이 다르고 반값 할인을 하는 대형 출판사는 나는 모르는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을 테니 말이다. 특히 작은 출판사들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온라인 서점에서 노출될 방법이 없으니, 이해는 한다. 법과 제도가 반값 할인을 제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출판사들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서정가제는 어떻게 정착될까?
그런데 오는 11월 21일 새로운 도서법이 시행된다. 그 법에 따르면 신간이든 구간이든, 실용분야든 어떤 분야든 할인율은 총 15%를 넘지 못한다. 그러니 '반값 할인'이라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 이게 최근 몇몇 출판사들이 막판 폭탄 세일이라며 책을 팔고 독자들은 마구 사들이는 이유이다.
물론 새로운 도서법도 구멍은 있을 테고, 분명 어떤 식으로든 편법이 생길 거라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보면 알 것이고 좋은 취지로 시작되는 법이 제대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새롭게 시행되는 도서정가제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단통법과 비교하며 책값만 올린다는 기사에는 사실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반값 할인을 염두에 두고 올라갔던 책값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 가격 인하는 할인율이 문제가 아니다. 출판사와 서점 간의 공급률 협상이 우선인데, 거대 유통망인 온라인 서점 앞에서 철저하게 '을'인 출판사가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새로운 도서법은 코앞에 다가왔고 어떤 식으로 출판 생태계가 변화될지 궁금하다. 결국 우리 출판사는 반값 할인 한 번을 못했구나. 통 크게 할인 한 번 하지 않는 '쪼잔한' 출판사의 책을 기다려주는 독자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출판사 블로그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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