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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흰 벌레가 둥둥... 고급 테킬라의 진실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71] 멕시코시티의 술과 음악

등록|2014.11.24 21:24 수정|2014.12.11 21:16
멕시코의 술과 음악, 메스칼과 마리아치

결국 내가 메스칼(Mezcal)을 맛볼 수 있었던 건 멕시코 시티를 떠나기 전 날이었다. 단돈 9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멕시코산 맥주와 저렴한 테킬라에 취해 굳이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다. 테킬라의 나라에 와서 메스칼을 먹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반 강제로 가리발디 광장(Plaza Garibaldi)을 찾았다.

메스칼 박물관 - 가리발디 광장에 있는 메스칼 박물관에서 멕시코의 전통주 메스칼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 김동주


가리발디 광장에 있는 메스칼 박물관은 그야말로 술의 향연이다. 2층에 위치한 역사관에서는 테킬라가 사실은 메스칼의 한 종류임을 알려준다. 메스칼은 용설란 수액을 이용해 만든 증류주를 뜻하는데 테킬라는 특정 주에서 생산되는 용설란 수액을 이용한 증류주다.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술을 만들어 내는 방식도 공업화되면서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 된 테킬라와 달리 메스칼은 여전히 수공으로 만들어지는 전통주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됐다. 획일적인 테킬라와 달리 그 병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특히 '벌레가 들어간 고급 술'이라는 소문을 뒷받침하듯, 유충의 모습을 딴 병이 인상적이었다. 용설란의 뿌리에는 붉고 하얀 벌레가 사는데, 증류하는 과정에 섞여 들어간 벌레의 모습이 외국인들의 눈길을 끌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일부 고급 브랜드의 메스칼은 일부러 벌레가 들어간 채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 메스칼 박물관 1층에 있는 바에서는 실제 메스칼을 판매하며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들어서면 술보다는 병에 눈이 갈 정도로 전시된 병들의 모습은 각양각생으로 재미있다. ⓒ 김동주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그 맛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1층 바에는 사방이 메스칼로 가득 채워진 방이 있다. 이곳에서는 약간의 돈을 내면 여러 가지 메스칼을 샘플로 마실 수 있다.

그 환상적인 풍경에 잠시 넋을 뺏겼다가 냉큼 바에 앉아 세 가지 종류를 주문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이킨 첫 잔은 말 그대로 찌릿했다. 알코올에 불을 붙인 것처럼 화악 타오르는 강렬하고 거친 맛이 목을 자극한다.

살짝 이마가 찌푸려졌지만 그대로 두 번째, 세 번째 잔을 삼켰다. 그제서야 정제되지 않은 거친 알코올 속에 깃든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에 걱정은 접어둔 채, 나는 푸른 빛을 머금어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예쁜 병에 담긴 메스칼 한 병을 집어 들었다.

멕시코시티의 마리아치들 - 스페인을 중심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민족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이들은 돈을 받고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 연주가들이다. 가리발디 광장의 역사적인 인물 사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리아치 동상이, 이들이 얼마나 사랑 받는지를 증명해준다. ⓒ 김동주


그렇게 벌개진 얼굴로 한낮의 태양이 뜨거운 가리발디 광장을 걸었다. 거리 좌우로는 역사적인 인물들의 동상이 줄을 지었는데 판초를 입고 얼굴이 파묻힐 만큼 커다란 챙 모자를 쓴 한 동상이 눈길을 끌었다. 다름 아닌 거리의 악사, 마리아치( Mariachi)의 모습이다.

아직 술집 문을 열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하얗고 검게 차려 입은 몇몇 악사들은 벌써부터 거리에 모여 들었다. 커다란 모자에 쫙 달라붙은 흰 옷과 부츠를 갖춰 입은 마리아치 밴드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때때로 악기를 조율하며 멕시코 특유의 흥을 거리에 퍼뜨렸다. 그 곁을 기웃기웃 거리다 눈이 마주친 한 악사는 벌개진 내 얼굴에 윙크로 화답한다.

시계와 닫힌 문을 번갈아 보기를 여러 번, 나는 고개를 떨군 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기에는 너무 이르기도 했지만 혼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의 세월이 지나야만, 다시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 타워, 멕시코시티와 이별하기 좋은 곳

라틴아메리카타워 - 총 45개층으로 된 높이 183m의 타워로, 높은 건물이 없는 멕시코시티 어디에서든 보인다. 지리적으로 북미에 속하지만 '라틴' 이라는 이름을 넣은 것이 멕시코의 정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잘 나타내어 준다. ⓒ 김동주


가슴 한 가득 아쉬움을 안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라틴아메리카 타워(Torre Latino Americana)였다. 멕시코시티의 어디에서든 보이는 이 높은 건물은 중세의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은 이 고대 도시에서 거의 유일한 현대식 고층건물이다. 예술궁전 너머로 보이는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유달리 이질적인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생각까지 했으나 결론적으로 멕시코시티와 이별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멕시코시티의 전경 - 라틴아메리카타워의 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멕시코 시티의 모습은 그림을 그려놓은 듯 아름답다. ⓒ 김동주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42층부터 시작되는 전망대에 도착하니 멕시코시티의 동서남북이 태평양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 자로 잰 듯이 네모지게 나열된 오랜 건물들이 고대제국에 물들은 유럽의 향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비록 고대의 많은 것이 파괴되고 순수 혈통의 인디오들은 사라져갔지만 그 영혼은 아직도 고스란히 멕시코시티의 곳곳에 잠들어 있다. 수천 년을 이어온 고대인들의 지혜는 이 새로운 문명 안의 사람들에게 열정과 낭만을 선사한다.

아아. 나는 과연 이 도시를 잊을 수 있을까. 난데없이 나타난 마리아치의 풍요로운 음악에 강렬한 메스칼 한 잔을 곁들이는, 코르테스의 황금보다 아름답고 흥미로운 이 삶의 흔적들을.

간략여행정보
소칼로 광장에서 도보거리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타워는 멕시코 시티에서 가장 높은 건물임과 동시에 이 대도시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이는 유일한 장소이다. 총 43층으로 된 이 높은 타워는 42층부터 실내전망대가 시작되고 최고 층에서 계단을 통해 옥외 옥상으로 갈 수 있다.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뷰는 몇 번을 봐도 지겹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멋있다.

멕시코의 풍류를 즐기고 싶다면 저녁에 문을 여는 가리발디 광장의 펍이나 식당을 방문해보자. 알싸한 메스칼에 마리아치의 흥겨운 음악이라면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가리발디 광장 한 켠에 있는 메스칼 박물관은 보너스.
입장료는 아래와 같다.

라틴아메리카타워 전망대 : 70페소(한화 약 8천원, 2013년 1월 기준)
메스칼 박물관 : 25페소(한화 약 2천원, 2013년 1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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