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는, 식당 아줌마입니다
이제 회사 식당에 가면 밝게 웃어드리려 합니다
누구에게나 오래된 친구가 하나쯤은 있습니다. 물론 제게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형님, 동생하며 친하게 지낸 엄마들 덕분에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러니까 엄마 뱃속에서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와는 자라면서 대학에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면서 각자 다른 생활을 하면서 일년에 한두 번 겨우 볼까 말까한 사이지만 가끔 하는 전화통화로도 대번에 상대방의 기분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한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던 그 친구가 이번에는 전에 없이 마냥 설레고 있습니다.
전 어려서 내 친구는 분명 '작가'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골학교에서 무식하게(?) 그저 공부만 하는 저와는 달리 초등학교 때부터 원고지를 들고다니며 문예반에 들어가서 글을 쓸 정도로 감수성이 뛰어났고, 그 나이에 '시'가 좋다며 이런 저런 주제로 시를 지어 읽어주는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려서 일찍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함께 크면서 그 친구의 글쓰기는 현실의 삶 속에 묻혀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오히려 새엄마로 인해 새롭게 부여받은 집안 일이며 부엌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덕인지 그 친구는 요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는 작은 회사의 경리일을 하면서도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결혼 후에는 종합병원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육아 때문에 그 일을 그만두었고 아이가 조금 크자 다시 일을 해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리 식당 일이라도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할 수 있는 일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 가고 난 뒤 낮에는 집에서 기분이 축 처져 지내기를 몇달, 가끔 전화를 해도 그녀의 목소리는 '나 누워 있었어'라고 알려주듯 부스스했었습니다. 기대도 의욕도 그리고 용기도 없어 축처지는 그녀에게 슬그머니 찾아드는 건 몸과 마음의 감기뿐인 듯했습니다.
아가씨 때 목소리로 돌아간 친구
그런데, 엊그제 전화에서 친구의 목소리는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습니다. 걸으면서 통화하는 목소리가 예전에는 숨에 차 헐떡거리는 목소리였다면 이번에는 뭔가 흥분되고 신이나 떠드는 목소리였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어?"
"나, 얼마전부터 OO회사 식당에 출근하잖아. 아르바이트긴 하지만 그래도 좋네."
바닥에 착 달라붙었다가 이제는 방 구들장을 뚫고 들어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되었던 친구의 목소리가 예전,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고 첫 월급을 받던 그때. 맞습니다. 아가씨 때의 목소리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찾다보니 재취업이 좀 늦어졌다고 말하면서 친구는 흥분된 기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요즘, 식당 아줌마인 친구는 일하는 구내식당의 밥값이 4천 원에서 5천 원으로 오르면서 만들어야 할 반찬 가짓수가 두어개 늘어나 조금 더 힘이 든다고 합니다.
"그럼, 바빠진 만큼 월급도 조금 더 주는 건가?"
라고 농담 삼아 묻자, 친구는
"하하하, 그런 적은 없더라구. 식재료값이 올라가서 밥값을 올렸다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구. 암튼 구내식당 밥값이 올라가면 우린 힘만 두 배로 더 든다."
라고 대답하며 유쾌하게 웃습니다. 회사 식당 밥값이 올라갈 때, 그저 '비싸진 만큼 어디 잘 나오나 보자'라는 생각은 했어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고생만 더 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존재는 잘 몰랐습니다. 무거운 식판과 그릇, 식재료를 나르고 그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아주머니들. 그 분들 중에 내 친구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그 분들의 고생이 내게도 와 닿습니다.
회사 식당에 가면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식당 아주머니들을 만납니다. 점심 시간, 짧게 스치지만, 좀 더 밝게 웃어드리려 합니다. 고생하신다고.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맘이 전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 친구와는 자라면서 대학에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면서 각자 다른 생활을 하면서 일년에 한두 번 겨우 볼까 말까한 사이지만 가끔 하는 전화통화로도 대번에 상대방의 기분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한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던 그 친구가 이번에는 전에 없이 마냥 설레고 있습니다.
전 어려서 내 친구는 분명 '작가'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골학교에서 무식하게(?) 그저 공부만 하는 저와는 달리 초등학교 때부터 원고지를 들고다니며 문예반에 들어가서 글을 쓸 정도로 감수성이 뛰어났고, 그 나이에 '시'가 좋다며 이런 저런 주제로 시를 지어 읽어주는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려서 일찍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함께 크면서 그 친구의 글쓰기는 현실의 삶 속에 묻혀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오히려 새엄마로 인해 새롭게 부여받은 집안 일이며 부엌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덕인지 그 친구는 요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는 작은 회사의 경리일을 하면서도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결혼 후에는 종합병원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육아 때문에 그 일을 그만두었고 아이가 조금 크자 다시 일을 해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리 식당 일이라도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할 수 있는 일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 가고 난 뒤 낮에는 집에서 기분이 축 처져 지내기를 몇달, 가끔 전화를 해도 그녀의 목소리는 '나 누워 있었어'라고 알려주듯 부스스했었습니다. 기대도 의욕도 그리고 용기도 없어 축처지는 그녀에게 슬그머니 찾아드는 건 몸과 마음의 감기뿐인 듯했습니다.
아가씨 때 목소리로 돌아간 친구
▲ 제 친구가 식당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 스폰지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엊그제 전화에서 친구의 목소리는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습니다. 걸으면서 통화하는 목소리가 예전에는 숨에 차 헐떡거리는 목소리였다면 이번에는 뭔가 흥분되고 신이나 떠드는 목소리였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어?"
"나, 얼마전부터 OO회사 식당에 출근하잖아. 아르바이트긴 하지만 그래도 좋네."
바닥에 착 달라붙었다가 이제는 방 구들장을 뚫고 들어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되었던 친구의 목소리가 예전,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고 첫 월급을 받던 그때. 맞습니다. 아가씨 때의 목소리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찾다보니 재취업이 좀 늦어졌다고 말하면서 친구는 흥분된 기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요즘, 식당 아줌마인 친구는 일하는 구내식당의 밥값이 4천 원에서 5천 원으로 오르면서 만들어야 할 반찬 가짓수가 두어개 늘어나 조금 더 힘이 든다고 합니다.
"그럼, 바빠진 만큼 월급도 조금 더 주는 건가?"
라고 농담 삼아 묻자, 친구는
"하하하, 그런 적은 없더라구. 식재료값이 올라가서 밥값을 올렸다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구. 암튼 구내식당 밥값이 올라가면 우린 힘만 두 배로 더 든다."
라고 대답하며 유쾌하게 웃습니다. 회사 식당 밥값이 올라갈 때, 그저 '비싸진 만큼 어디 잘 나오나 보자'라는 생각은 했어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고생만 더 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존재는 잘 몰랐습니다. 무거운 식판과 그릇, 식재료를 나르고 그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아주머니들. 그 분들 중에 내 친구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그 분들의 고생이 내게도 와 닿습니다.
회사 식당에 가면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식당 아주머니들을 만납니다. 점심 시간, 짧게 스치지만, 좀 더 밝게 웃어드리려 합니다. 고생하신다고.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맘이 전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