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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는, 식당 아줌마입니다

이제 회사 식당에 가면 밝게 웃어드리려 합니다

등록|2015.03.13 17:29 수정|2015.03.13 17:29
누구에게나 오래된 친구가 하나쯤은 있습니다. 물론 제게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형님, 동생하며 친하게 지낸 엄마들 덕분에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러니까 엄마 뱃속에서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와는 자라면서 대학에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면서 각자 다른 생활을 하면서 일년에 한두 번 겨우 볼까 말까한 사이지만 가끔 하는 전화통화로도 대번에 상대방의 기분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한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던 그 친구가 이번에는 전에 없이 마냥 설레고 있습니다.

전 어려서 내 친구는 분명 '작가'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골학교에서 무식하게(?) 그저 공부만 하는 저와는 달리 초등학교 때부터 원고지를 들고다니며 문예반에 들어가서 글을 쓸 정도로 감수성이 뛰어났고, 그 나이에 '시'가 좋다며 이런 저런 주제로 시를 지어 읽어주는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려서 일찍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함께 크면서 그 친구의 글쓰기는 현실의 삶 속에 묻혀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오히려 새엄마로 인해 새롭게 부여받은 집안 일이며 부엌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덕인지 그 친구는 요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는 작은 회사의 경리일을 하면서도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결혼 후에는 종합병원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육아 때문에 그 일을 그만두었고 아이가 조금 크자 다시 일을 해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리 식당 일이라도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할 수 있는 일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 가고 난 뒤 낮에는 집에서 기분이 축 처져 지내기를 몇달, 가끔 전화를 해도 그녀의 목소리는 '나 누워 있었어'라고 알려주듯 부스스했었습니다. 기대도 의욕도 그리고 용기도 없어 축처지는 그녀에게 슬그머니 찾아드는 건 몸과 마음의 감기뿐인 듯했습니다.

아가씨 때 목소리로 돌아간 친구

▲ 제 친구가 식당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 스폰지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엊그제 전화에서 친구의 목소리는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습니다. 걸으면서 통화하는 목소리가 예전에는 숨에 차 헐떡거리는 목소리였다면 이번에는 뭔가 흥분되고 신이나 떠드는 목소리였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어?"
"나, 얼마전부터 OO회사 식당에 출근하잖아. 아르바이트긴 하지만 그래도 좋네."

바닥에 착 달라붙었다가 이제는 방 구들장을 뚫고 들어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되었던 친구의 목소리가 예전,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고 첫 월급을 받던 그때. 맞습니다. 아가씨 때의 목소리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찾다보니 재취업이 좀 늦어졌다고 말하면서 친구는 흥분된 기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요즘, 식당 아줌마인 친구는 일하는 구내식당의 밥값이 4천 원에서 5천 원으로 오르면서 만들어야 할 반찬 가짓수가 두어개 늘어나 조금 더 힘이 든다고 합니다.

"그럼, 바빠진 만큼 월급도 조금 더 주는 건가?"

라고 농담 삼아 묻자, 친구는

"하하하, 그런 적은 없더라구. 식재료값이 올라가서 밥값을 올렸다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구. 암튼 구내식당 밥값이 올라가면 우린 힘만 두 배로 더 든다."

라고 대답하며 유쾌하게 웃습니다. 회사 식당 밥값이 올라갈 때, 그저 '비싸진 만큼 어디 잘 나오나 보자'라는 생각은 했어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고생만 더 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존재는 잘 몰랐습니다. 무거운 식판과 그릇, 식재료를 나르고 그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아주머니들. 그 분들 중에 내 친구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그 분들의 고생이 내게도 와 닿습니다.

회사 식당에 가면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식당 아주머니들을 만납니다. 점심 시간, 짧게 스치지만, 좀 더 밝게 웃어드리려 합니다. 고생하신다고.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맘이 전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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