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면 죽음'... 나는 인민군에서 탈영했다
[전쟁포로 ④] 산속에서 도망병이 도망병을 만나다
이 글은 현재 86세인 장인어른(송관호)이 옛날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수기를 사위인 제(김종운)가 정리한 후 문장을 다듬어 썼습니다. 앞으로 게재할 내용은 인민군으로 북으로 후퇴하던 기록, 그리고 탈영해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겪은 고초, 그 후 뜻하지 않게 미군 포로가 된 이야기, 부산과 거제도 수용소에서의 반공 포로 생활 이야기, 이승만의 반공 포로 석방 조치로 전남 해남까지 피신한 이야기 그리고 다시 한국군으로 입영해 양구군 원당리 비무장지대 전초소(DMZ GP)에서 군 생활을 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미군 군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생활에 정착하기까지의 삶의 여정을 25여화 정도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기자말
강계 방면으로 후퇴하던 날 밤은 어둡고 흐려서 10m 앞도 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짐이 무거워 행군 도중 자꾸 옆으로 기울어져 몹시 애를 먹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짐이 점점 더 기울어졌다. 소대장에게 짐을 다시 꾸려 가지고 가겠다고 말했지만 소대장은 "그럴 시간이 없으니 그대로 가"라고 독촉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신작로 둑에 잠시 멈춰 서서 짐을 내려놓았다.
나는 서둘러서 짐을 꾸리고 나서 다시 걸쳐 맸다. 몸을 곧추 세우고 앞을 보니 우리 부대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오는 부대와도 사이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때는 바로 이 때다'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어차피 국군이 우리 고향까지 들어와 대한민국으로 통일이 되어 버렸는데 강계로, 만주로 가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이 틈을 타서 도망을 가자.'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마자 나는 재빨리 숲을 향해 내달렸다.
'도망 가자' 나는 재빨리 숲을 향해 내달렸다
금방 도로를 벗어나 얼른 나무 숲 사이로 뛰어 들었다. 숲은 제법 무성한 아카시아 나무 군락이었는데 나무 사이로는 어른 키만큼 자란 가시덤불들로 뒤엉켜 있어 가시에 걸려 쉽게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숨기느라 가시에 찔리면서도 땅에 납작 엎드렸다. 동료들이 나를 찾으러 온 것이다. 나는 등짐에 맨 하얀 가닥가루 자루가 눈에 띌까 겁이나 자루를 얼른 낚아채 배로 덮었다.
'들키면 죽는다.'
나는 겁에 질려서 이판사판으로 눈을 꼭 감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떠 동정을 살피니 멀리 소대장과 분대장의 얼굴, 그리고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신작로 부근을 오르내리며 "도망간 자리가 아마 여기 어디쯤 될 걸" 하고 소리를 치며 나를 찾느라 애를 쓰다가 잠시 후 그냥 떠나 버렸다.
'만일 잡혔으면 어찌 되었을까?'
간밤에 탈영하다 붙잡혀 처형 당한 도망병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그 길로 인민군을 피해 무작정 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밤새 산을 이리저리 헤맸다. 날이 새어 '얼마나 걸었을까'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간밤에 도망친 자리에서 불과 400여m 정도 밖에 벗어나지 못하였다. 내 딴에는 멀리 간다고 밤새도록 애를 썼지만 결국은 길을 잃고 주위만 빙빙 돈 셈이었다.
'아~'
탄식이 절로 났다. 인민군에게 들키면 탈영병으로 잡힐까봐 주위를 사주경계하며 조심조심 산으로 올라 큰 나무 밑에 앉아 기도를 했다. 난리 통에 그간 오랫동안 예배 한번 올리지 못하였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고향의 가족을 떠올리며 살고 싶은 바람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산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주변이 모두 매우 높고 큰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멀리 낭림산맥 주봉들이 까맣게 보이고 그 곳에서 뻗어 내려 온 산줄기는 매우 험하고 나무가 빽빽하고 울창하였다. 살기 위해 남으로 가야만 했다.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숲은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로 솟아올라 주변이 어둡고 하늘도 잘 보이지 않았다. 무릎까지 쌓인 나뭇잎 더미로 제대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어려운 숲은 그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울창한 원시림이었다.
사방이 인민군... 어떻게 하면 집으로 갈 수 있을까
나는 실탄 5발을 총에다 끼우고 걷기 시작했다. 만일 나를 잡으러 오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지 사정없이 발사할 각오였다. '만일 죽게 된다면 혼자만 당하지는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산등성이를 향해 두어 시간 걸어 올라가면서 지형을 살폈다.
서쪽 멀리로는 묘향산이 치솟아 있고 산세가 웅장하고 험하였으나 경치는 참으로 수려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의 맑은 물, 아름다운 숲들, 묘한 바위들이 눈앞에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만 같아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탄복도 잠깐, 나는 그 중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 사방의 산과 맥을 살피며 '어떻게 하면 집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사방이 인민군 천지인 현실에서 아무리 궁리해 봐도 묘수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큰 나무 기둥을 의지하고 두 손을 모아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집으로 가는 길을 보호하여 주시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앞으로는 예수님을 잘 믿고 좋은 사람 되겠습니다'하고 절실한 마음을 담아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나는 주님이 인도하여 주시고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방향을 택해 산길을 걸었다.
나의 목표는 단순 명료했다. '여기는 평안남도 영원군, 영원군 남쪽에는 맹산군, 맹산군 남쪽에는 양덕군, 양덕군 남쪽에는 곡산군, 곡산군 남쪽이 바로 내가 사는 이천군이다. 여기서 하루 50리씩 걸으면 10일이면 고향에 갈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멀리 산 아래로 비행기 3대가 나무 위를 스치듯 날아 인민군 행렬을 폭격했다. 신작로 주변에 연기가 오르며 퇴주하던 트럭과 병사들이 박살나는 광경이 보였다.
'나도 저 곳에 있었으면 죽었을지 모른다.' 죽음의 대열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의 한숨도 잠시였다. 이윽고 나는 '저 높고 높은 계곡, 저 고개를 넘어서 어떻게 집으로 가야 하나, 도중에 탈영병으로 잡히면 총살을 당할 텐데…'하는 근심뿐이었다.
나는 아시보 장총과 무거운 짐을 지고 남쪽을 향해 무작정 다시 길을 떠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배가 고팠다. 나는 허기를 면하려고 등에 지고 가던 음식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데 인민군 병사들이 산으로 올라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우리 부대원들이 날 잡으러 다시 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자세히 살펴보니 후퇴하는 다른 부대 행렬이었다. 그래도 들키면 큰일이었다.
나는 재빨리 숲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앞에 인민군들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름드리 낙엽송으로 꽉 찬 숲속에 인민군 5명이 웅크린 채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들이 벌떡 일어나 날 잡으려고 달려 들 것만 같았다. 나는 재빨리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꼼짝마!"
만약 조금이라도 위협이 느껴지면 총을 발사할 결심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 핏값은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황급히 손을 높이 든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오? 사살해 버리겠소"
나는 그들의 모습에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총을 겨눈 채 "동무들은 뭐하는 사람이요?"라고 물었다. 그들은 총구를 보고는 겁먹은 얼굴로 서로 얼굴만 바라 본 채 무어라 말은 하려고 하나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또 다시 대답을 재촉했다. "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오? 사살해 버리겠소"하고 외쳤다.
그 때 그 중 한 사람이 두 손을 든 채 손짓을 하며 날보고 좀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러나 너무 접근하면 내가 비록 총을 가지고는 있지만 5명이 일시에 달려든다면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리를 두고 다시 물었다. "동무들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요?" 그들은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의논을 하더니 체념하듯 대답했다.
"동무, 우리는 서울 영등포에서 의용군으로 끌려왔소. 후퇴 중 도망했는데 들키면 죽을까봐 숲속에서 사흘간 굶었습니다. 서울서 여기까지 오다 탈출을 했으나 길을 알 수가 없고 들키면 죽을 것 같아 옴짝달싹 못하고 사흘을 굶었더니 이젠 아무런 힘도 없어요. 우리를 관대히 용서해 주시고 인민군 대열에 넣어주시면 그대로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통사정을 하였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안심이 되어 뛸 듯이 기뻤다. 나는 그래도 믿기지 않아 그 말이 정말이냐고 재차 물었다. 그들이 진짜 도망병임을 확인한 나는 "나도 당신들과 같은 도망병이오" 하고 달려들어 서로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산속에서 도망병이 도망병을 만난 것이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을 만큼 참으로 반가웠다. 나는 그들이 사흘을 굶었다는 말에 등에 지고 있던 밥과 고기를 꺼내주며 먹으라고 권했다. 그들은 음식을 보고 반색을 하며 밥과 고기를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물도 반찬도 없이 마치 걸신들린 듯 먹어 치우는데 나는 사람이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보았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폭식을 한 다섯 명 모두 갑자기 비실비실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사단이 벌어졌나 싶어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들은 극도의 긴장감 끝에 살았다는 안도감과 포만감을 못 이겨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것이었다.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아무리 몸을 잡아 흔들어도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큰 탈이 난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에 그들이 잠에서 깨어나기만 기다리면서 주위를 열심히 경계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잠에 취한 것이 아침 열시쯤 되었는데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하나 둘 깨어났다. 나는 그들과 남쪽으로 가는 길을 의논을 했다. 유엔군이나 국군을 만날 때까지 어떻게 하면 인민군에게 들키지 않을까하는 궁리를 했다. 그들은 무기도 하나 없고 가진 것은 오로지 담배뿐이었다. 그들이 살려줘서 고맙다며 내게 담배를 주었지만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에 사양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탈출 방안을 그들에게 제안했다.
"서울로 가려면 황해도 땅이나 강원도 땅을 밟지 않고는 갈 수 없으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합시다. 동무들은 계급도 없고 무장도 안 했으니 이제부터 나보고 어디서나 분대장 동무라고 부르시오. 우린 언제나 분대 행동을 해서 누가 보더라도 탈영병이라는 표시가 안 나게 합시다. 탈영병인 것이 드러나면 우리는 모두 총살을 당할 것이요. 난 강원도 이천군에 사는데 우리 군 남쪽은 경기도 연천군이 가까워요. 그리고 연천군 남쪽은 양주군, 양주군 남쪽은 서울이요. 그러니 강원도 우리 집으로 가서 며칠 푹 쉬고 서울로 가도록 하시오. 이제부터 우리는 생사를 같이 하는 행동을 합시다."
그들은 내 말을 듣더니 참으로 고맙다며 모두 눈물을 흘렸다.
강계 방면으로 후퇴하던 날 밤은 어둡고 흐려서 10m 앞도 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짐이 무거워 행군 도중 자꾸 옆으로 기울어져 몹시 애를 먹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짐이 점점 더 기울어졌다. 소대장에게 짐을 다시 꾸려 가지고 가겠다고 말했지만 소대장은 "그럴 시간이 없으니 그대로 가"라고 독촉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신작로 둑에 잠시 멈춰 서서 짐을 내려놓았다.
나는 서둘러서 짐을 꾸리고 나서 다시 걸쳐 맸다. 몸을 곧추 세우고 앞을 보니 우리 부대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오는 부대와도 사이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때는 바로 이 때다'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어차피 국군이 우리 고향까지 들어와 대한민국으로 통일이 되어 버렸는데 강계로, 만주로 가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이 틈을 타서 도망을 가자.'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마자 나는 재빨리 숲을 향해 내달렸다.
'도망 가자' 나는 재빨리 숲을 향해 내달렸다
금방 도로를 벗어나 얼른 나무 숲 사이로 뛰어 들었다. 숲은 제법 무성한 아카시아 나무 군락이었는데 나무 사이로는 어른 키만큼 자란 가시덤불들로 뒤엉켜 있어 가시에 걸려 쉽게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숨기느라 가시에 찔리면서도 땅에 납작 엎드렸다. 동료들이 나를 찾으러 온 것이다. 나는 등짐에 맨 하얀 가닥가루 자루가 눈에 띌까 겁이나 자루를 얼른 낚아채 배로 덮었다.
'들키면 죽는다.'
나는 겁에 질려서 이판사판으로 눈을 꼭 감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떠 동정을 살피니 멀리 소대장과 분대장의 얼굴, 그리고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신작로 부근을 오르내리며 "도망간 자리가 아마 여기 어디쯤 될 걸" 하고 소리를 치며 나를 찾느라 애를 쓰다가 잠시 후 그냥 떠나 버렸다.
'만일 잡혔으면 어찌 되었을까?'
간밤에 탈영하다 붙잡혀 처형 당한 도망병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그 길로 인민군을 피해 무작정 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밤새 산을 이리저리 헤맸다. 날이 새어 '얼마나 걸었을까'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간밤에 도망친 자리에서 불과 400여m 정도 밖에 벗어나지 못하였다. 내 딴에는 멀리 간다고 밤새도록 애를 썼지만 결국은 길을 잃고 주위만 빙빙 돈 셈이었다.
'아~'
탄식이 절로 났다. 인민군에게 들키면 탈영병으로 잡힐까봐 주위를 사주경계하며 조심조심 산으로 올라 큰 나무 밑에 앉아 기도를 했다. 난리 통에 그간 오랫동안 예배 한번 올리지 못하였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고향의 가족을 떠올리며 살고 싶은 바람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산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주변이 모두 매우 높고 큰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멀리 낭림산맥 주봉들이 까맣게 보이고 그 곳에서 뻗어 내려 온 산줄기는 매우 험하고 나무가 빽빽하고 울창하였다. 살기 위해 남으로 가야만 했다.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숲은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로 솟아올라 주변이 어둡고 하늘도 잘 보이지 않았다. 무릎까지 쌓인 나뭇잎 더미로 제대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어려운 숲은 그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울창한 원시림이었다.
사방이 인민군... 어떻게 하면 집으로 갈 수 있을까
▲ 나는 실탄 5발을 총에다 끼우고 걷기 시작했다. 만일 나를 잡으러 오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지 사정없이 발사할 각오였다 ⓒ 티피에스 컴퍼니
나는 실탄 5발을 총에다 끼우고 걷기 시작했다. 만일 나를 잡으러 오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지 사정없이 발사할 각오였다. '만일 죽게 된다면 혼자만 당하지는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산등성이를 향해 두어 시간 걸어 올라가면서 지형을 살폈다.
서쪽 멀리로는 묘향산이 치솟아 있고 산세가 웅장하고 험하였으나 경치는 참으로 수려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의 맑은 물, 아름다운 숲들, 묘한 바위들이 눈앞에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만 같아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탄복도 잠깐, 나는 그 중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 사방의 산과 맥을 살피며 '어떻게 하면 집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사방이 인민군 천지인 현실에서 아무리 궁리해 봐도 묘수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큰 나무 기둥을 의지하고 두 손을 모아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집으로 가는 길을 보호하여 주시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앞으로는 예수님을 잘 믿고 좋은 사람 되겠습니다'하고 절실한 마음을 담아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나는 주님이 인도하여 주시고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방향을 택해 산길을 걸었다.
나의 목표는 단순 명료했다. '여기는 평안남도 영원군, 영원군 남쪽에는 맹산군, 맹산군 남쪽에는 양덕군, 양덕군 남쪽에는 곡산군, 곡산군 남쪽이 바로 내가 사는 이천군이다. 여기서 하루 50리씩 걸으면 10일이면 고향에 갈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멀리 산 아래로 비행기 3대가 나무 위를 스치듯 날아 인민군 행렬을 폭격했다. 신작로 주변에 연기가 오르며 퇴주하던 트럭과 병사들이 박살나는 광경이 보였다.
'나도 저 곳에 있었으면 죽었을지 모른다.' 죽음의 대열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의 한숨도 잠시였다. 이윽고 나는 '저 높고 높은 계곡, 저 고개를 넘어서 어떻게 집으로 가야 하나, 도중에 탈영병으로 잡히면 총살을 당할 텐데…'하는 근심뿐이었다.
나는 아시보 장총과 무거운 짐을 지고 남쪽을 향해 무작정 다시 길을 떠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배가 고팠다. 나는 허기를 면하려고 등에 지고 가던 음식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데 인민군 병사들이 산으로 올라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우리 부대원들이 날 잡으러 다시 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자세히 살펴보니 후퇴하는 다른 부대 행렬이었다. 그래도 들키면 큰일이었다.
나는 재빨리 숲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앞에 인민군들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름드리 낙엽송으로 꽉 찬 숲속에 인민군 5명이 웅크린 채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들이 벌떡 일어나 날 잡으려고 달려 들 것만 같았다. 나는 재빨리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꼼짝마!"
만약 조금이라도 위협이 느껴지면 총을 발사할 결심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 핏값은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황급히 손을 높이 든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오? 사살해 버리겠소"
나는 그들의 모습에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총을 겨눈 채 "동무들은 뭐하는 사람이요?"라고 물었다. 그들은 총구를 보고는 겁먹은 얼굴로 서로 얼굴만 바라 본 채 무어라 말은 하려고 하나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또 다시 대답을 재촉했다. "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오? 사살해 버리겠소"하고 외쳤다.
그 때 그 중 한 사람이 두 손을 든 채 손짓을 하며 날보고 좀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러나 너무 접근하면 내가 비록 총을 가지고는 있지만 5명이 일시에 달려든다면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리를 두고 다시 물었다. "동무들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요?" 그들은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의논을 하더니 체념하듯 대답했다.
"동무, 우리는 서울 영등포에서 의용군으로 끌려왔소. 후퇴 중 도망했는데 들키면 죽을까봐 숲속에서 사흘간 굶었습니다. 서울서 여기까지 오다 탈출을 했으나 길을 알 수가 없고 들키면 죽을 것 같아 옴짝달싹 못하고 사흘을 굶었더니 이젠 아무런 힘도 없어요. 우리를 관대히 용서해 주시고 인민군 대열에 넣어주시면 그대로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통사정을 하였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안심이 되어 뛸 듯이 기뻤다. 나는 그래도 믿기지 않아 그 말이 정말이냐고 재차 물었다. 그들이 진짜 도망병임을 확인한 나는 "나도 당신들과 같은 도망병이오" 하고 달려들어 서로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산속에서 도망병이 도망병을 만난 것이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을 만큼 참으로 반가웠다. 나는 그들이 사흘을 굶었다는 말에 등에 지고 있던 밥과 고기를 꺼내주며 먹으라고 권했다. 그들은 음식을 보고 반색을 하며 밥과 고기를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물도 반찬도 없이 마치 걸신들린 듯 먹어 치우는데 나는 사람이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보았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폭식을 한 다섯 명 모두 갑자기 비실비실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사단이 벌어졌나 싶어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들은 극도의 긴장감 끝에 살았다는 안도감과 포만감을 못 이겨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것이었다.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아무리 몸을 잡아 흔들어도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큰 탈이 난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에 그들이 잠에서 깨어나기만 기다리면서 주위를 열심히 경계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잠에 취한 것이 아침 열시쯤 되었는데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하나 둘 깨어났다. 나는 그들과 남쪽으로 가는 길을 의논을 했다. 유엔군이나 국군을 만날 때까지 어떻게 하면 인민군에게 들키지 않을까하는 궁리를 했다. 그들은 무기도 하나 없고 가진 것은 오로지 담배뿐이었다. 그들이 살려줘서 고맙다며 내게 담배를 주었지만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에 사양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탈출 방안을 그들에게 제안했다.
"서울로 가려면 황해도 땅이나 강원도 땅을 밟지 않고는 갈 수 없으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합시다. 동무들은 계급도 없고 무장도 안 했으니 이제부터 나보고 어디서나 분대장 동무라고 부르시오. 우린 언제나 분대 행동을 해서 누가 보더라도 탈영병이라는 표시가 안 나게 합시다. 탈영병인 것이 드러나면 우리는 모두 총살을 당할 것이요. 난 강원도 이천군에 사는데 우리 군 남쪽은 경기도 연천군이 가까워요. 그리고 연천군 남쪽은 양주군, 양주군 남쪽은 서울이요. 그러니 강원도 우리 집으로 가서 며칠 푹 쉬고 서울로 가도록 하시오. 이제부터 우리는 생사를 같이 하는 행동을 합시다."
그들은 내 말을 듣더니 참으로 고맙다며 모두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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