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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노조 가입... 우리나라가 아직 이렇다

[리뷰] 마트 노동자와 함께 본 심야영화 <카트>... 영화보다 더 잔인한 현실

등록|2014.12.01 21:40 수정|2014.12.01 21:40

영화 <카트>의 한 장면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회사에게 해고에 대해 묻는 순진한 '선희'씨 ⓒ 명필름


홈에버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영화 <카트>가 극장에 걸렸다. <카트>가 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나도 빨리 봐야지'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문득, 마트를 다니는 노동자와 함께 영화를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평소 영화를 보고 품평회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참 적절한 시기로 느껴졌다. 지금의 마트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영화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시작하는 게 좋다. 마침 아는 후배가 홈플러스에서 일하고 있기에 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카트> 영화 함께 보지 않을래?"
"형님, 저 이미 봤는데요?"
"그래도 한 번 더 보자. 두 번 볼 정도의 작품은 되잖아. 그리고 몇 명 더 같이 보면서 품평회도 하면 좋을 것 같아."

후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시간은요? 제가 자정에 (일을) 마쳐서 평일에는 도저히 시간이 안 나요. 주말에는 일정이 꽉 차 있고…."

심야영화마저도 시작부터 볼 수 없는 마트노동자

<카트> 품평회에 초청한 노동자이 날 영화를 보기 위해 일부러 홈플러스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왔단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포부도 잊지 않았다. ⓒ 이원규

야간 업무를 뛰는 마트 노동자와 저녁 일정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어쩐다. 결국 우리는 새벽 미팅을 각오하고 심야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지난 11월 21일, 오후 11시 45분 영화를 선택했다.

"너 마치고 바로 뛰어오면 그리 늦지 않게 볼 수 있겠지?"
"좋습니다. 어차피 전 한 번 봤으니까 먼저 보고들 계세요. 휙 날아갈게요."

모두들 '불금'을 즐길 시각, 우리는 영화관으로 모였다. 우리라고 해봐야 내 페이스북을 보고 찾아온 아르바이트 근로자와 나, 둘뿐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소위 '자영업자'는 조금 늦는다고 먼저 들어가라고 연락이 왔다. 마트에서 일하는 후배도 자정이 훌쩍 넘어서 올 테니 어쩔 수 없이 우리 표만 끊고 먼저 입장했다.

심야영화인데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영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잠시 후 자영업자가 맥주와 팝콘을 잔뜩 품고 어두운 영화관에 물의를 일으키며 등장했다. 아, 민망하여라. 하지만 심야영화의 맥주는 꽤 괜찮은 조합이라 생각됐다.

그리고 또 얼마 후 방금 일을 마친 마트 노동자가 찬바람을 품고 도착했다. 우리는 쪼르르 앉아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극이 중반쯤 다다랐을 때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눈물샘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다. 40대에 접어들면서 눈물이 많아졌다고 내 스스로 생각했는데 의외다.

카트를 함께 밀며 물대포를 맞받아 나아가는 인상적인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났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통상 나가는 길에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평을 하기 마련인데 다들 조용하다. 아마도 저 영화 속의 장면들이 현실이기 때문에 쉽게 내뱉지 못하는 것이리라.

영화 <카트> 엔딩크레딧여기 계산원 역으로 나오는 무수한 분들 역시 또 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테다. ⓒ 이원규


화장실에서 노조 가입서를 써야 하는 나라

우리도 별 말 없이 새벽까지 하는 술집을 찾아 이동했다. 새벽 2시가 다 되었지만 대학가 앞이라 그런지 여전히 불야성이다. 소란스런 한복판에 자리 잡고 술을 시켰다. 그렇게 품평회를 시작했다. 먼저 후배에게 물었다.

"요즘은 어때? 영화에서처럼 진상부리는 손님들에게 저렇게 당해?"
"형님, 요새는 저렇게까지는 아니에요. 저분들이 열심히 싸워주신 덕분에 지금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게 된 거예요."

"영화에서 보면 사람들이 먼저 노조를 만들고 싸우잖아. 너네 마트도 얼마 전에 파업까지 하면서 싸웠던데 다들 노조 가입을 하신 거야?"
"아니요. 아직 멀었어요. 지금 부산의 홈플러스의 경우 일하는 사람이 1600명을 넘는데 노동조합에 300명 정도 가입했으니까 여전히 가입률이 20%가 안돼요. 심지어 노조가입서 한 장 받으려면 007작전을 벌여야 한다니까요?"

"아니, 어떻게?"
"우리는 여전히 화장실 칸에서 노조 가입서를 써야 해요. 가입서를 쪽지로 접어서 몰래 건네 드리면 그걸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서 화장실로 달려가세요. 거기서 작성하고 다시 몰래 돌려주시죠. 그래서 회사에서는 아직 누가 노조원인지 잘 몰라요. 그저 몇 명 정도 가입했다더라는 소문만 듣고 있죠. 저도 회사에서 알게 된 지가 얼마 안됐어요."

충격적이었다. 21세기에 노조 가입서를 몰래 써야 하는 나라, 이게 제대로 된 나라가 맞을까? 이런 현실 앞에서 노동조합에서 권익을 찾아가는 후배가 갑작스레 위대해 보였다. 눈앞의 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명의 노조원을 가입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헸을까?

심야영화를 함께 보러 온 자영업자그는 시종일관 진중한 모습으로 대한민국을 성토했다. 대한민국은 비정규직을 천시하고 공안통치를 일삼는다고 비판했다. ⓒ 이원규

이때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며 한마디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게 무슨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다니 나라가 거꾸로 가는 건 확실히 맞는 것 같아요. 왜 중·고등학교 때 노동권과 노동조합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 거죠? 결국 다들 노동자가 될 거면서 말이에요. 어떤 나라에는 교섭 전략을 짜는 게 과목수업에 들어있다던데…."

자영업자도 술 한 잔 털며 말을 보탠다.

"정권이 '빨갱이 사냥'으로 재미를 좀 보니까 천대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혹시나 빨갱이로 몰릴까봐 노조가입 못하는 거야. 요새 빨갱이가 뭐야? 정권이 싫어하는 거 하면 다 빨갱이 아닌가? 이런 분위기 안 바뀌면 노동자들 기 펴고 살기 어려울 걸?"

순간 주변 공기가 '촥'하고 가라앉는다. 최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판결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종북몰이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영화에 대한 평을 들어보자는 말을 꺼냈다.

여전히 잔인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

<카트> 품평회에 함께 한 대학생꽃다운 나이에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에 대한 분노가 상당히 강했던 청년 노동자. ⓒ 이원규

"글쎄요. 저는 솔직히 영화의 흐름이 너무나 평범해 보였어요. 다큐멘터리인데 유명 배우가 나온다고나 할까?"

대학생은 솔직히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에게 재미란 건 뭘까?

"이야기 전개가 흡인력이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라야 되는데 영화가 그렇게 저를 빨아들이지 못했어요. 제 나이가 아직 스물셋 밖에 안 되서 그런지는 몰라도... 공권력의 폭력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몸서리치게 분노했지만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크게 감동적이지 않았어요."

그 부분에서는 나도 동의를 했다. 입소문으로 듣기로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삶이 비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그 비중이 약했다. 공감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투쟁의 과정에 집중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삶에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자영업자는 투쟁을 진압하는 장면이 잔인해 보였지만 더 잔인한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했다고 평했다.

"사실 마지막 장면 이후가 중요한 거야. 저렇게 투쟁하고 나면 손해배상, 가압류 등으로 집안을 거덜 내려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야. 불법 파업했다고 잡혀가서 몇 달, 몇 년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야. 결국 노조는 깨지고 남는 건 뭐야. 굴종이야."

이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마트 노동자가 어렵게 한 마디를 꺼냈다.

"맞습니다. 이 정부 하에서 노조를 지키면서 권리를 찾는다는 게 참 쉽지 않아요. 우리 노조도 그냥 한판 뜨고 싶죠. 하지만 지금은 때를 기다리면서 힘을 기르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이 정권이 영원히 가진 않을 거잖아요? 꼭 그렇게 만들어야 하구요."

동의를 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분위기라면 다음 총선과 대선 때 백전백패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술잔이 넘실대고 빈 병이 쌓여갈수록 푸념은 늘어가고 분노도 쌓여갔다.

새벽 4시가 훌쩍 지나서야 품평회는 마무리됐다. 술에 반쯤 취한 마트 노동자는 '까데기'라는 말이 참 '지랄 맞다'고 되뇌었다. 영화 초입에 물건을 부리는 일을 일컫는 '까데기'라는 말이 나온다. 그게 마트노동자의 가슴을 그렇게 찔렀나 보다. "까데고 까데도 결국 그 자리인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임금도 10년째 100만 원 남짓. 이제 노동조합이 생기고 처우가 많이 개선됐다고 자랑 섞인 듯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멀었다고 했다. 이제 시작이라고….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황당한 뉴스가 흘러나오는 지금이다. 여전히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카트를 밀고 돌진하는 두 명의 주인공이 엔딩이 아니라 스타팅이라는 걸 우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밝아오는 새벽녘,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지금도 야간을 뛰고 퇴근하는 무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겠지. 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힘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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