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여러분, '유기농'을 확인해주세요
[주장] FTA 시대... 가격이 싼 농산물만 구매해서는 안 된다
▲ 유기농 농사는 힘들고 어렵다.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 픽사베이
11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 김장 배추만 뽑아내면 숙지원의 금년 농사는 마무리된다.
병충해를 덜 받는다기에 다른 집에 비해 일주일쯤 늦게 심었고 화학비료를 하지 않은 탓인지 배추는 아직 속이 차지 않았다. 농약 없이 키웠음에도 100포기 중 70% 이상이 생존했으니 실패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내는 금년에 김장은 20포기만 하고 남은 배추는 눈밭에 두었다가 내년 봄까지 먹자고 한다. 솔직히 연금생활자인 우리에게 텃밭 농사는 소득 사업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무가 조금 덜 자라고 배추 속이 덜 차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와 배추 외에도 많은 종류를 키우고 있다. 자두·매실·감 등 과일과 고추·마늘·양파 여기에 상추·비트·시금치 등 채소류까지 가꾼다. 자급자족을 목표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실천하고 있다. 유기농법으로 키워 깨끗하고 안전한 무와 배추를 먹을 수 있다면 그뿐, 더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현재 숙지원에서 가꾸는 모든 농작물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는 물론 성장촉진제 같은 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비닐 멀칭을 하고 농협을 통해 구입한 퇴비를 사용하는 점을 제외한다면 거의 자연농법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우리 밭에서 수확한 과일은 벌레 먹은 것이 많고, 채소는 구멍이 숭숭하고, 알뿌리는 크기가 들쑥날쑥 고르지 못해 시장에 내놓기 어렵다. 즉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산물이 대부분이다.
사실 유기농법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름철 들끓는 해충 그리고 각종 질병에 쓰러지는 작물을 보는 일이 결코 마음 편하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 역시 고민 끝에 친환경 농약을 골라 한두 번 뿌린 적이 있다. 그러나 친환경 농약도 농약이라는 점이 찜찜했다. 지속적인 효과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이조차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농약에 의해 내성이 길러진 요즘의 해충들은 거의 죽지 않는다. 약을 치면 잠시 도망갔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 다시 밀물처럼 달려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경우 다시 농약을 쳐야만 한다.
처음에는 시골 농부들이 사나흘마다 약통을 짊어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 경험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신 발효액·목초액·난황유·식초·소주 등을 조합해 갖가지 약을 스스로 만들어 시험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효과는 별로였다.
농약이란 해충을 향한 순간의 분노만으로 아무 때나 뿌리는 것이 아닌데 그 점을 몰랐던 결과였다. 어린아이들이 병에 약하듯 식물들도 어린 시기에 해충들의 표적이 되고 어린 시기에 병에 잘 걸렸다.
그런데 작물이 어느 정도 자라서 해충과 병에 대한 자체 방어력을 갖게 되기까지의 시기를 읽지 못한 채 혼자 바빴던 셈이다. 이제 작물을 보면 그런 시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약을 뿌리는 방법이나 횟수도 조절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게 되었다.
아직도 고추 탄저병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는 속수무책인 경우도 많다. 그래도 단위면적당 최소한 절반 이상 수확하여 자급하고 있으니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시장에 팔 것도 아닌데 모양과 때깔이 조금 떨어지면 어떤가. 출하를 앞두고 화학 비료나 성장촉진제를 뿌린 농산물에 비해 우선 맛이 깔끔하고 안심할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소득이 높아지고 식품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많은 소비자들이 더 깨끗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찾는다고 들었다.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관심, 이를 요구하는 태도는 아무리 극성스러워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생존권 차원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친환경 농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마디하고 싶다. 소비자들도 이제 과일과 채소를 모양과 크기나 빛깔만으로 판단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고, 먹거리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농민들도 알고 있다. 농약을 많이 사용하면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농약이나 성장촉진제를 뿌리는 까닭이 있다. 크기가 크고 빛깔이 고운 농산물만을 최상품으로 인식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내년부터 유기농산물에 대한 규제와 심사가 강화된다고 한다. 소비자들도 원산지를 파악하고, 유기농 생산여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직거래 등 다른 거래 방안을 찾아보는 태도야말로 나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첩경이다.
밥 한 그릇에 필요한 쌀의 원가는 아직도 300원 정도다. 식당에서 밥 한공기의 가격은 1000원이다.
요즘 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가 1000원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끼니 배를 채울 음식 중 1000원짜리가 얼마나 있는가. 김치 한 포기를 담으면 4인 가족이 몇 끼니나 먹는가. 계산해보자. 농산물 가격이 비싸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정부와 언론이 나선다. 농민들이 물가 상승의 주범인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러니 우리 농민들이 생산하고 싶은 의욕이 날 것이며 농촌이 살아날 것인가.
최근 텔레비전을 켜면 채널마다 건강에 관한 강좌가 그치지 않는다. 그 덕분인지 모임에 나가면 이제는 저마다 식품의 영양, 식물의 약성이며 전문적인 의학 지식까지 줄줄 꿰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개인과 가족의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는 것이 많다고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을 찾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주말농장과 도시 텃밭 등 농사를 통해 가족들이 먹는 채소를 자급하려는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앞으로 중국, 뉴질랜드 등과의 FTA가 국회에서 비준되면 수입 농·축·수산물의 봇물이 터질 것이다. 서민들에게는 더 값싼 농산물이 수입되는 것이 다행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고 먹느냐하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병든 농산물로 인해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모두의 부담이 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정말로 유기농은 쉽지 않다. 유기농의 농사의 성공률이 낮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격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일반 농산물보다 높은 가격을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는데 그걸 알아주는 소비자들이 많지 않아 매우 불리한 처지이다.
소비자들의 응원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도 주변에는 땅도 살리고 국민들의 건강도 살리자는 취지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퇴비를 만드는 법, 약 없이 해충을 쫓는 법을 공동으로 배우면서 친환경 농법을 고수하는 농민들이 많다는 사실도 전하고 싶다.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식이 바뀌기를 바란다. 정부도 유기농에 대한 정교한 기준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건강한 농산물을 안심하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믿음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 블로그, <귀농사모>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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