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주변에 머문 진보... 세속화가 필요하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179 ]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
▲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 ⓒ 권우성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지 어느덧 14년이 지났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4월 15일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0석을 차지해 원내 진출 꿈을 이뤘다. 하지만 현재, 진보정당은 4개(통합진보당·정의당·노동당·녹색당)로 분열되었다. 존재감도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가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란 책을 출간했다.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가 1년 반 동안 노 전 대표를 만나 인터뷰한 대담집이다. 부제는 '노회찬, 작심하고 말하다'이다. 노 전 대표의 노동운동 이야기를 비롯해 진보정치 위기 진단과 대안 등이 담겼다.
책 출간 뒷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4일, 서울도서관에서 노 전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노 전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진보정당 예상보다 빨리 원내 진출했지만..."
- 7월 재·보궐 선거가 끝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선거 끝나고 동작구 주민에게 인사를 다녔어요. 석 달 동안 강연을 많이 했어요. 주제는 초청한 쪽에 따라 다양했습니다. 영국과 일본도 다녀왔어요. 영국에서는 교민들과 유학생을 대상으로 옥스퍼드, 캠브리지, 런던대학교에서 강연했고, 일본에서도 대학 초청으로 홋카이도 대학에서 일본 시민 200명을 대상으로 강연했어요. 강연하고 글 쓰고, 방송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바쁘게 지냈습니다."
▲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책 표지 ⓒ 비아북
"현안을 담고 있어서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 직접 집필할 수 있는데, 인터뷰로 엮었더군요.
"작년 3월부터 책 출간을 논의했어요. 제가 삼성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직후였죠. 진보가 나아갈 길과 역할에 대해서 책을 내자고 출판사에서 제안했어요. 대화를 통한 역동적인 구어체를 사용하면 전달력이 좋을 것 같아 인터뷰 형식을 선택한 거죠."
- 인터뷰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1년 반 동안 10차례 정도 인터뷰했어요. 한 번 하면 5~6시간씩 길게 이야기를 했어요. 인터뷰 할 당시엔 상당한 현안을 이야기했는데, 현 시점에선 다소 과도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현안 발생 당시의 정서나 감성이 (책에) 많이 남아 있어서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어요."
- 민주노동당은 2004년에 원내에 진출했잖아요. '예상보다 빠른 결과였다'고 책에서 회고했더군요.
"진보정당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어려웠어요. 10년 이상 걸렸고, 진보정당이 왜 필요한지 문제제기도 많았죠. 민주세력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 노동운동이 아직 진보정당을 하기에는 성숙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았어요. 저는 진보정당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어요. 특히, 의회 진출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 봤어요. 하지만 창당되고 4년 만에 의석 10개를 얻어 원내에 진출했어요. 제가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진출한 셈이죠.
어떤 분들은 진보정당이 만들어진 지 19년이 넘었는데, 의석수 5~10개에 머무르고 있으니 성장이 더딘 것 아니냐고 지적해요. 하지만 저는 이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결코 더딘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너무 빨리 원내에 진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요. 미숙하거나 부족했던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역사적으로도 준비가 부족한 건 아니었어요. 역량에 비해 빨리 (원내에) 들어간 것도 아니죠."
- 지금 진보정당은 4개지만, 지리멸렬해 보입니다.
"미미한 세력인데도 4개로 나눠져 있어 걱정이라는 의견이 많아요. 충분히 공감하고 이 상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4개로 갈라진 이유가 있거든요. 인위적으로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라기보다는, 왜 4개가 되었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어요. 형식적으로 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가는 방향이 같다면, 서로 경쟁하고 다투면서 현실적인 차이를 좁힐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의견 차이를 인정하고 가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생각이 99% 같아도 1% 다르면 원수"로 지낸다고 진보의 문제점을 지적했어요.
"진보는 이해관계로 뭉치는 집단이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지 따지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진보의 건강성을 위해 필요한 대목이죠. 다툼이 조직의 분열로 이어지는 게 문젭니다. 리더십의 문제이고,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장치와 훈련이 부족한 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보의 숙명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진보가 만들어진다고 봐요.
강 교수의 표현은 조금 과장되고 극단적이죠. 원수란 표현은 동의 못 해요.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는데, 진보세력은 대개 노선을 많이 따져요. 노선과 가치를 둘러싼 치열한 토론은 필요하지만, 진보는 소외된 세력을 대변하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세속화 주장, 부정적 의미 아니야"
▲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 ⓒ 이영광
- 오늘날 진보정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종속변수가 된 것 같은데요.
"한국의 선거제도에서는 (진보정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정당 투표(비례대표)로 당선하는데, 유권자들은 집권 경험이 없는 진보정당을 우선으로 지지하지 않는 듯해요. 야권지지 전반에 (진보정당 지지가)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야권 지지가 높을 때에는 진보정당에 오는 표도 많죠. 하지만 야권 지지가 적을 때 진보정당에 오는 표도 적은 게 문제라고 봐요."
- 대안 중 하나로 '진보의 세속화'를 주장했는데요.
"세속화는 대개 부정적으로 쓰이는데요. 제가 말하는 세속화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자'라는 뜻입니다. 진보가 세상 속이 아닌 주변에 있지 않았느냐는 성찰 속에서 '민생의 한복판에 뛰어들자' '국민의 상식 수준으로 달려가자'는 겁니다. '타락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진보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해요. 노동자, 서민에게 지지를 못 받아요. 더 노동자, 서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알고, 잘 대변하도록 노력해야죠."
- 강준만 교수의 책 <싸가지 없는 진보>가 화제입니다. 물론 거기서 말하는 진보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지만 진보정당도 일부 포함될 텐데요.
"맞아요. 진보정당에도 똑같은 지적을 할 수 있죠. 그 지적에 공감하고 개선도 필요해요. 필요하고 타당한 지적이지만, 그것만 고치면 될까라는 점에서 의문이 생겨요. 그 책의 부제가 '진보세력 최후의 집권전략'이라고 했는데 '싸가지'만 있다면 집권이 가능할까요? 그건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기들만 선이고, 나머지는 악인가.' 많은 국민은 진보정당을 이런 식으로 바라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다고 봐요. 왜냐하면 진보정당은 기성체제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걸 기본 임무로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에만 머물면 안 되죠. 문제를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 어려운 사람 편에 서는 따뜻한 정당 이미지를 가져야 합니다."
"재원 마련해 무상보육 공약 지켜야"
- 무상급식 논쟁이 불거졌습니다. 무상급식은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때부터 주장했잖아요.
"굉장히 잘못된 논쟁이에요. 무상급식은 많은 선거를 통해 국민 합의에 의해 추진된 겁니다.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2013년부터 전면 실시가 됐잖아요. 처음부터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알고 약속한 겁니다. 지금에 와서 돈이 많이 든다고 논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계획을 새롭게 세워야죠. 그렇게 하려면 증세를 해야 하는데, 하기 싫으니 잘 되는 무상급식 예산을 당겨 쓰려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무상보육 버스'로 잘 가고 있는 '무상급식 버스'에 고의 충돌시킨 겁니다. 과거 정권이 한 공약은 안 되고, 자기들 한 공약만 실현하겠다는 식으로 충돌시키는 건 대단히 잘못된 정치예요. 무상보육은 별도의 자원을 마련해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10개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평가하세요?
"지나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먼데, 매우 실망스러워요. 대통령이 한 일이 뭔지 기억이 안 나요. 박 대통령이 남은 기간 동안 제대로 일하길 바랍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은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었으니,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 공약을 지키는 데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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