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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때문에 두 발 뻗고 자긴 글렀네..."

[중국에서의 추억②] 야진의 공포

등록|2014.11.29 18:45 수정|2014.11.29 18:45

▲ 무사히 돌려받은 야진... 하지만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 최하나


중국은 야진押金(보증금)의 천국이다. 집을 구할 때 뿐 만 아니라 왕빠网吧 (PC방)를 갈 때도 필요하다. 왕빠의 야진은 가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20위안을 받았다. 한 시간 요금이 2위안이니 10시간 비용을 미리 받는 것이다. 20위안을 내고 입장한 후 갈 때 사용한 시간만큼 제하고 돈을 돌려준다. 그러니 한 시간만 컴퓨터를 쓰겠다고 딸랑 2위안만 챙겨가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물론 더 영세한 곳은 야진이 없는 곳도 있지만 자판조차 잘 눌러지지 않는 곳이니 갈 일이 거의 없다.

왕빠를 갈 때조차 필요하니 집을 구할 때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당시 계약이 끝나고 야진을 제대로 돌려받은 한국 학생은 거의 보지 못 했다. 방 하나에 주방이 딸린 원룸을 구하려면 당시 물가로 1000위안(당시 한화로 약 13만 원)이 필요했다. 야진은 한달 치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을 내는 게 관습이었으므로 처음 입주할 때 1000위안을 내게 된다. 문제는 한국으로 귀국할 때 벌어진다.

▲ 우리나라의 PC방에 해당하는 왕빠를 가려면 보증금이 필요하다. ⓒ 최하나


짐을 다 뺀 후 집주인에게 돈을 받으려면 미리 집을 보여줘야 하는데 말끔히 청소를 해놓아도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 야진을 깎는 경우가 다수다. 한 번은 아는 유학생이 돈을 제대로 받겠다고 친구 몇 명을 동원해 며칠을 대청소했지만 그 사람도 700위안을 깎이고 결국 300위안밖에 돌려받지 못 했다. 하지만 이건 그나마 나은 경우였다.

짐을 빼고 연락하면 그냥 잠적해버리는 집주인도 다수였다. 그러니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표를 이미 구입한 유학생은 꼼짝없이 돈을 받지 못하고 당할 수 있다. 중국 친구를 대동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니 애초에 집을 구할 때 이런저런 이유로 야진을 받지 못 할 거라는 건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기숙사에서 사는 것보다 집을 구해 밖에서 살려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가격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2인1실 기숙사는 밖에서 집을 구해 혼자 사는 것과 가격이 같았다. 게다가 훨씬 공간도 넓고 쾌적하다. 그러니 한화로 약 13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떼이더라도 이쪽이 이득이었다.

나 역시도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1000위안 짜리 원룸부터 1600위안 짜리 투룸까지. 하지만 나는 야진을 떼이는 걸 각오하면서까지 이사를 가고 싶지 않았다. 몇 푼 안 된다고 생각하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최대한 야진을 떼이지 않을 것 같은 집을 찾아 다녔다.

첫째, 목소리가 크고 빠른 집주인은 피할 것.
둘째, 가구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집은 피할 것.
셋째, 웬만하면 그 집에 살던 한국 학생에게 소개를 받을 것.

이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저렴한 집은 없었다. 그러다가 한 유학생의 소개로 원룸을 봤다.

"집주인이 할머니인데 괜찮아요. 집도 거실이랑 방이랑 분리되어 있어서 넓은 편이고요."

나에게 과일을 내주며 설명을 해주던 학생의 말에 신뢰가 갔다. 하지만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관리가 소홀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압이 낮아 볼 일을 볼 때마다 신경 써서 물을 잘 내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수리해 달라는 말을 오래 전에 했지만 아직이라는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집을 보고 난 후 고민이 됐지만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학생에게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주인 할머니가 계약기간을 바꾼대요. 들어올 사람을 구해도 중간에 나가면 야진을 못 주겠대요. 그리고 가격도 올린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하실래요?"

결국 계약을 못 했다. 그 후에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국 학생은 내게 계약하지 않길 잘했다며 사실은 자기도 뒷 사람을 구해줘야 야진을 다 준다고 해서 마음이 급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결국 기숙사에 남아야 했다.

'그래, 야진 때문에 마음 고생할 바에는 그냥 남는 게 낫지.'

그렇게 야진의 공포는 나를 비껴가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중국 여행을 오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기숙사에서 재워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호텔을 알아보기로 했다. 세 명이 잘 수 있는 비교적 깨끗한 호텔은 생각보다 가격이 꽤 나갔다. 하룻밤에 100위안에서 200위안 사이. 그나마도 성수기라 방이 없다는 곳이 많았다.

'어떡하지.'

고민 끝에 나에게 집을 몇 번 보여주었던 중국인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비어 있는 집이 있는데 하루에 100위안씩에 해줄게. 근데 가구가 있어서 야진은 있어."

그렇게 3박4일 동안 그 집을 사용하기로 했다. 방이 두 개 딸린 그 집은 깨끗하고 치안도 좋은 편이라고 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동행할 친구까지 함께 4명이 생활했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런데 여행 마지막 날, 짐을 빼는데 장롱 문 한쪽이 툭 떨어졌다.

"뭐지?"

보니까 부러진 건 아니고 나사가 풀린 듯했다. 그 순간 제일 먼저 머릿속에 든 생각은 야진이었다. 트집을 잡히지 않으려고 부모님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문을 조립하려고 애썼다. 30분 정도 걸렸을까. 그깟 야진이 뭐라고 괜히 여행 기분을 망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그만두자고 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문이 다시 맞춰졌다. 우리 세 사람은 바닥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열쇠를 주기 위해 부른 중개업자는 한 바퀴 돌아보더니 야진을 그 자리에서 돌려줬다.

야진을 가지고 실랑이 하기 싫어 집 구하기는 포기했지만 결국 완벽하게 피해 가지는 못 했다. 야진은 아직 중국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에게 또 다른 종류의 골칫거리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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