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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김선달이 알려주는 '돈 버는' 방법은?

[서평] 곽재식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등록|2014.12.02 14:32 수정|2014.12.02 14:50

▲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 알에이치코리아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봉이 김선달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는 조선 후기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일종의 사기행각을 벌였고, 대동강물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며 사람들을 속여서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이 김선달이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저 이야기 속에만 등장하는, 지어낸 사람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아무튼 김선달은 거짓말을 해서 돈을 버는 능력 이전에,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그것을 조종하는 법을 나름대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 안에서처럼 사람들이 그에게 넘어가서 지갑을 열지는 않았을 테니까.

김선달이 만일 현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어떤 수단으로 돈을 벌었을지 궁금하다. 평범한 직장생활이야 당연히 하지 않았을 테고 뭔가 크게 한 밑천 잡을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범죄가 되지 않으면서,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한탕 터뜨릴 적당한 방법은 무엇일까?

평양에서 만난 조선시대의 고서적

어쩌면 도박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사기도박이나 불법도박말고, 합법적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카지노에서 크게 한건 터뜨리는 것이다. 카지노에 가서 룰렛을 하건 슬롯머신을 돌리건 포커를 치건, 꾸준히 돈을 따낼 수 있다면 된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곽재식의 2014년 작품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로 이 일을 해낸다. 어떻게? 작품 속에서 주인공에게 그 비결을 알려준 사람은 바로 조선시대의 봉이 김선달이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어느날 평양으로 출장을 가게 된다. 밤에 평양의 암시장을 둘러보던 주인공의 눈에 들어온 고서적이 있었으니, 그 책의 제목은 바로 <봉이비결>이다. 국한문혼용체로 써진 그 책의 한 페이지에는 '언제나 노름에 이겨서 돈을 버는 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봉이비결>을 사지는 못하고 그 내용을 거의 외워서 다시 직장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그 비결을 룰렛에 적용하기로 한다. 룰렛이 돌아가는 속도를 알고나면, 간단한 계산을 통해서 구슬이 어느 곳에 멈출지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들뜬 마음으로 이 방법을 실전에 적용해보기로 한다. 잘 된다면 전국의 카지노, 나아가서 세계의 카지노에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것이다.

카지노 도박판에 뛰어든 주인공의 모습

다소 황당해 보이는 설정이지만 그만큼 흥미롭다. 속임수를 쓰는 것도 아니고 나름의 비결로 구슬이 멈출 곳을 계산해내서 베팅하는 것이니 불법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단지 자신이 이런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된다. 남들이 알게되면 피곤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봉이비결>은 실제로 존재하는 책이 아니다. 김선달이 실존인물이 아니었다면, 그가 써서 남긴 책도 존재할 수 없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위조를 했다면 모르겠지만.

카지노에 가서 한번이라도 기계를 돌려본 사람이라면 그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알거다. 그곳에는 담배연기와 알콜냄새가 마치 유령처럼 떠돌아 다니고, 만원짜리 다발을 손에 쥐고 기계적으로 슬롯머신 버튼을 누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자신만의 '봉이비결'이 생겨나길 원하고 있지 않을까.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평범하던 일상이 어떤 일을 계기로 변하게 될 때가 있다. 만일 그 계기가 도박이라면 그 이후로는 나쁘게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 '봉이비결'이 있어서 돈을 계속 따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방법을 쓰건 간에, 도박으로 큰 돈을 벌고나면 밤에 발뻗고 편히 자기 힘들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곽재식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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