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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도 '음주 치료'로 환자 사망...이래도 괜찮다?

[주장] 음주수술 자체를 처벌할 구체적인 법규가 필요하다

등록|2014.12.03 21:00 수정|2014.12.04 14:39
[기사 수정: 4일 오후 2시 38분]

▲ 타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무책임한 음주행위 ⓒ pixabay.com


1980년대는 음주운전에 대해 관대한 분위기였다. 주량껏 마시고 차를 몰아 귀가하는 일이 흔했다. 심지어 단속하던 교통경찰마저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한마디로 끝내기도 했다. 그 이후 음주운전에 대한 지속적인 주의환기가 이뤄지고 지금은 음주단속의 처벌강도는 상당히 강화된 상태다.

도로교통법에 의거해 심하게 술에 취해 운전을 한 사람은 운전면허가 박탈된다. 그리고 비단 운전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에 위해가 될 만한 상황이라면 음주에 대해서 엄격한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운전보다 더 어렵고 예민한 '의료행위'에 있어서 음주처벌은 어떨까? 놀랍게도 의료인에 대한 음주처벌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약하다. 음주 후 수술을 해도 그저 해당 자리에서 파면될 뿐 여전히 의사로서의 직함은 잃지 않는다. 환자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의사가 자신의 몸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술에 임하는데, 딱히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것은 현행 의료법의 큰 맹점이다.

'음주수술' 해도 처벌규정 없는 현행 의료법

지난달 28일 A군(4세)은 바닥에 쏟은 물 때문에 미끄러지며 턱 부위가 찢어졌다. A군의 부모는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인근 대학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다. 그런데 부모가 보기에 담당 의사는 정상적인 상태로 보이지 않았다. 걸음걸이는 비틀거렸고 수술하기 전에 당연히 껴야 할 수술 장갑도 끼지 않은 채로 수술에 임했다. 또 턱의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야 하는데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

결국 그러던 도중 봉합을 제대로 끝마치지도 못한 채 다른 의사로 담당자가 바뀌며 재수술이 이뤄졌다. A군의 부모는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들이 해당 의사를 음주측정한 결과, 술을 마신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사실 해당 의사는 그날 응급실 당직이 아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선배들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달려온 레지던트 1년차 의사였다. 아직 경험이 풍부한 의사라고 볼 수는 없지만 턱 봉합수술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실력이다. 문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수술을 했고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위다. 레지던트 의사들은 시도 때도 없이 병원에 불려가 수술하는 것이 일상이지만 이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당연히 거절해야 했다. 무엇이 이 의사로 하여금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게 한 것일까?

이번 A군 턱 수술 사건 외에도 환자들의 신뢰를 깨뜨리는 의사들의 음주수술은 이전에도 있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 접수된 사건이다. 지난 2006년 5월 온 국민은 독일월드컵 열기에 들떠 있었다. 대한민국 모든 의사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의 한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단체로 술자리와 함께 국가대표 평가전 경기를 관람 중이었다.

이 병원에는 패혈증 증세를 보인 백혈병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중이었다. 그런데 이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면서 응급처치로 기도삽관이 필요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담당의는 중환자실에 없었다. 축구 경기를 보러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주치의가 호출됐지만 그는 축구 경기 관람 중에 마신 술 때문에 치료행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기도삽관이 필요한 순간에 행해지지 못하고 환자는 다음 날 새벽 사망했다. 그 때 역시 환자 가족이 경찰을 불러 음주측정을 했고 음주 사실이 드러났다. 그 당시에 유가족은 1인 피켓시위도 벌이는 등 항의했지만 이 사건은 이슈가 되지도 못한 채 조용히 넘어갔다.

타인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수술에 있어서 술에 취한 상태로 임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행위로, 강력한 처벌 대상이 돼야 한다. 하지만 법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해야만 민형사상으로 처벌 및 손해배상이 발생할 뿐, 음주수술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다. 운전으로 치면 음주운전 자체는 처벌하지 않고 음주운전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발생해야만 처벌하는 격이다.

의료법 제66조의료인품위유지의무를 규정한 의료법 제66조 1항 ⓒ 국가법령정보센터


그나마 현행 의료법 제66조가 의사면허의 자격정지 요건으로 유사한 사항을 다루고 있다. 제66조 1항에서 규정한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면허를 정지할 수 있다.

하지만 품위유지의무에 대해 다루는 제66조 1항만으로는 음주수술을 한 의사를 실제로 처벌하기가 쉽지는 않다. 품위유지란 말 자체가 애매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번 음주수술의 경우도 해당 의사는 병원 측으로부터 무책임한 의료행위로 인해 파면 통보만 받았을 뿐 앞으로도 의사로 활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조사한 경찰 측 역시 명확한 처벌 규정을 찾지 못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음주수술 의사, 개업도 가능하다니...

법률사무소 '사람'의 정정훈 변호사는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A군 턱 수술 사건에 대해 "현행 의료법상 의사자격정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담당 의사가 치료행위 중에 보인 행동들에 대해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의사가 수술을 속행 못하고 시간이 지연됨으로 인해 흉터가 남게 된다면 손해배상 청구 및 형사상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고소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품위유지의무 위반에 해당해 자격정지 처분을 받는다고 해도 사실 제대로 된 처벌이라 보기는 어렵다. 의료법 상 자격정지 기간이 대부분 1년 이내로 짧을 뿐더러 해당 병원에서 나와 재취업 내지는 개업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그렇기에 그런 사건에서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는 명확한 법률 규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구체적인 법률 형태로 논의된 전례가 없었다.

핵심은 술을 마신 채로는 수술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은 '설마 의사가 술을 마시고 수술을 하겠어?'라는 전제 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또 술을 마시고 수술을 하는 것 자체가 아닌 사망 등의 업무상 과실이 명확해야 처벌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과실 여부는 피해자인 환자가 입증해야 한다. 의사협회는 처벌규정은 필요없고 의협 내 윤리위원회가 심사해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하물며 음주운전도 과거와 달리 이제는 엄격한 잣대로 처벌이 되는데 칼끝이 1cm만 빗나가도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의료행위에서 음주수술이 용납될 수 없다"며 "의료계의 자정노력이 우선 되어야 하겠지만 만일 그래도 안 된다면 의료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음주의료행위를 근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승태완 기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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