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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욕실'? 해도 너무한 중국의 한국어 안내판

[신선생의 좌충우돌 중국여행⑩] 구이린에서 본 국적불명의 우리말

등록|2014.12.06 19:59 수정|2014.12.06 19:59
제가 경기도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어 지난 세월호 사건 이후에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올 겨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 여행을 마무리 할 필요가 있어 다시 시작합니다. 2013년 12월 31일부터 1월 28일까지 중국을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기자 주

어젯밤부터 비가 내립니다. 낯선 중국 시골 마을에서 맞는 겨울비는 사람 마음을 을씨년스럽게 만듭니다. 아침인데도 모두 우울한 표정입니다. 무채색의 하늘 빛만큼이나 표정 없는 모습이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 같습니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제각기 삐걱대고 있습니다.

짐을 꾸려 터미널로 나왔습니다. 오늘은 구이린(桂林)으로 이동합니다. 구이린은 광시좡족자치구 북동부에 있는 도시로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계림'으로 알려진 구이린은 '천하제일의 산수'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비도 내리고

구이린에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버스 터미널에서 지도를 꺼내 숙소를 찾아봅니다. 초행이라 방향 감각이 없어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터미널 처마 아래 쭈그리고 앉아 물에 빠진 생쥐처럼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추위와 빗속에서도 끼니 때는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터미널 인근 식당을 찾았습니다. 노점을 연상시키는 식당은 문조차 달려 있지 않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안쪽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해 가까스로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아래 자리를 잡고 덮밥과 국수를 주문하였습니다. 국수 국물에 빗물이 더해져 양이 점점 불어나지만 더운 음식이 목줄을 타고 들어가니 추위가 가시는 것 같습니다.  

끼니비는 내리고, 춥고, 배는 고프고 ⓒ 신한범


비를 맞으며 숙소를 찾고 있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여행은 사서 하는 고생이라지만 낯선 도시에서 비를 맞으며 헤매는 모습은 처량합니다. 모두들 말없이 두리번거리며 숙소를 찾고 있습니다. 눈에 가장 먼저 띄는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가격도 객실도 만족스럽습니다.

난방을 최대로 켜고 샤워를 하고 나니 정신이 듭니다. 창밖을 보니 구이린의 경관이 눈에 들어옵니다. 구이린은 아름다운 이강(漓江)을 중심으로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침식된 석회질 평원에는 높고 뾰족한 산봉우리들이 널려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카르스트 지형이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구이린 전경숙소 침대에서 보는 구이린 시내 ⓒ 신한범


숙소에서 밀린 빨래와 휴식으로 오후를 보냅니다. 가끔은 휴식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행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동하기 위해 여행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쉼을 모르는 시대, 휴식을 죄악시 하는 우리의 현실은 여행에서도 적용됩니다. 오늘은 일정 없이 침대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몸만 쉬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생각도 심지의 감정의 흐름도 잠시 멈추었습니다. 저는 침대에 누워 창을 통해 비 내리는 구이린 이강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경상도 식당'

인터넷을 검색하던 지인이 '유레카'라고 외칩니다. 한국식당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울하던 분위기는 한 순간에 반전되었습니다. 모두 생기가 돌면서 먹고 싶은 음식과 소주에 대한 이야기로 활기를 찾았습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접하는 우리나라 음식입니다.

경상도 식당조선족이 운영하는 구이린의 '경상도 식당' ⓒ 신한범


'경상도'라는 상호를 가진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입니다. 패키지 관광객이 식당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칭다오에 입국한 후 거의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우리말이 낯설게 들립니다. 여행 기간과 관계없이 모두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며 떠들고 있습니다. 여행이란 "외국에서 낯선 문화와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다"라는 말보다는 "외국에서 우리 음식과 소주를 찾는 것이다"라가 진리겠지요.

배부르고 등 따스우니 빗속에서 헤맸던 낮 시간의 기억들도 추억이 됩니다. 내일 일정을 이야기하고 풋잠이 들 무렵 노크 소리가 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다른 방에 자고 있던 일행이 공안 몇 사람과 함께 서 있습니다. 공안의 불심검문입니다. 그들의 손에는 카운터에서 가져온 우리 여권과 비자 복사본이 있습니다.

공안의 불심검문

여권에 입국 날짜가 없다고 시비를 걸어옵니다. 단체비자는 여권에 입국 날짜 스탬프를 찍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구이린은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기에 단체비자 제도를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막무가내입니다. 다른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공안은 권력자입니다. 중국은 법보다 당이 우위에 있으며 공안은 법집행과 당의 명령까지 수행하기 권력의 핵심입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지만 기(?) 싸움에 들어갔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기에 끝까지 버텨봅니다. 여권을 펴 보이며 입국 날짜가 없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서툰 중국어보다 영어로 단체 비자에 대한 설명만 반복하였습니다. 구이린은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분명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분쯤 지나자 그들도 포기했는지 슬그머니 방에서 나갑니다.   

공안의 방문으로 잠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두고 온 세상이 눈에 아립니다. 한 번 심란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습니다. 거대한 제방이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지는 것 같이 거대한 쓰나미가 제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밤은 깊어 가는데 정신은 더 맑아옵니다. 억지로 잠을 청하는 것보다 밤을 즐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스마트폰에 담아온 음악을 감상하며 시를 읽습니다. 시집은 부피가 크지 않아 여행에서 좋은 동반자입니다. 더구나 반복해서 읽어도 늘 새로운 의미로 다가 옵니다.  

오늘은 도종환의 시에 눈길이 갑니다.

책꽂이를 치우며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안이 환하다
눈 앞에 막고 서 있는 지식들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하다 

어둔 길 헤쳐 간다고
천만근 등불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창 하나 제대로 열어 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 오는 것을

몇 번을 읽어도 생경했던 도종환의 마음이 시를 따라 제 마음에 전해옵니다.  

아침, 하늘을 보니 여전히 흐립니다. 숙소 앞 간이식당의 국수 한 그릇은 5위안입니다. 얼큰한 국수 국물과 쫄깃한 면발은 해장에 알맞습니다. 외국에서 음식의 가격과 맛은 상관이 없습니다. 입맛에 맞는지가 중요하겠지요. 여행의 성공 여부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라면 이번 중국여행은 성공적입니다.

구이린 관광

구이린의 대표 관광지 중 첩채산(疊菜山)과 이강의 풍경과 산세가 어우러진 칠성공원(七星公園)을 선택했습니다. 구이린은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으며 관광지를 연결하는 무료 셔틀 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첩채산으로 향했습니다.  

첩채산구이린의 절경 '첩채산' ⓒ 신한범


첩채산은 비단을 첩첩히 쌓아놓은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명월봉(明月峰)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중턱에는 풍동(風洞)이라는 동굴이 있는데 청나라 시대에 새겨진 한시 석각과 90여 개의 불상이 남아 있습니다. 명월봉에서는 동쪽의 이강(漓江)과 서쪽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으며 구이린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절경첩채산 명월봉에서 바라보는 구이린 ⓒ 신한범


첩채산을 내려온 우리는 이강을 따라 칠성공원까지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강을 따라 독수봉, 복파산 같은 관광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강 주변에는 공원이 발달되어 있어 걷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해방교를 건너 칠성공원 근처에 오자 호객꾼들이 붙습니다. 입장료를 매표소보다 싸게 팔겠다는 것입니다.  

이강구이린 도심을 흐르는 '이강' 모습 ⓒ 신한범


칠성공원을 말 그대로 일곱 개의 봉우리를 가진 공원입니다. 멀리서 보면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표를 구입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칠성공원 입장료는 75위안이고 칠성 동굴 입장료는 60위안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2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입니다.

낙타봉칠성 공원의 랜드마크 '낙타봉' ⓒ 신한범


입장과 동시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낙타암, 칠성동굴 등이 있지만 조악한 놀이시설과 인공 폭포 등 중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공원입니다.  더구나 사람을 당황 시킨 것은 중국의 우리말 표기입니다. 영어, 일본어 그리고 우리말 안내판이 있습니다. 한글 안내판을 보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검색결과', '접근성욕실'

위 말은 칠성 공원 안내판 문구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우리 말 안내판이 세계적 관광지인 구이린의 안내판에서 만날 줄이야!

검색결과국적불명의 칠성공원의 안내판 ⓒ 신한범


접근성욕실국적불명의 칠성공원의 안내판 ⓒ 신한범


'검색결과'는 '낙수폭포(樂水瀑布)', '접근성욕실'은 '장애인 화장실'입니다. 전자는 폭포의 이름이고 후자는 장애인 화장실에 대한 안내입니다. 웃고 넘어 가기에는 한심하다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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